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5차전 경기. 세트스코어 3대2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흥국생명 김연경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21년 현역 생활을 우승으로 마무리한 ‘배구 여제’ 김연경(37)이 8일 “(배구 인생이)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시 태어나면 배구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연경의 흥국생명은 8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챔피언결정 5차전에서 정규리그 3위 정관장을 3대2(26-24 26-24 24-26 23-25 15-13)로 꺾고 2019년 이후 6년 만에 통합우승 위업을 달성했다. 김연경은 2020년 V리그에 복귀한 뒤 첫 챔프전 우승컵을 들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는 “오늘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제가 한국에 복귀한 뒤 챔프전만 4번을 치렀는데 이제 별 하나 달았다”며 “(챔프) 3차전 끝나고도 ‘별 하나 달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난 진짜 열심히 했는데 뭐가 문제지’ 이런 생각도 했는데 오히려 마지막 5차전에 오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드라마나 영화도 이런 시나리오는 짜지 못할 거다. 지금 너무 좋다”고 했다.

실제 올해 챔프전은 V리그 역사에 남을 명 시리즈였다. 한국 배구 상징과도 같은 김연경의 은퇴 시리즈이기도 했지만 내용도 극적이었다. 5경기 중 4경기가 풀세트 접전이었다. 역대 챔피언 결정전 사상 한 세트 최다 점수(70점)가 두 번이나 나오기도 했다. 마지막 5차전에서는 모든 승부가 최대 접전인 2점 차로 끝났다. 김연경은 “솔직히 3,4차전 지고 5차전 경기하면서 ‘이렇게 지면 평생 악몽을 꾸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수들 많이 윽박지르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했는데 잘 따라와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경기가 열렸다. 흥국생명이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경을 헹가래 치고 있는 흥국생명 선수들. /송정헌 스포츠조선 기자

평소 털털한 성격의 김연경은 이날 현역 마지막 경기를 마쳤음에도 여타 은퇴 선수들처럼 펑펑 울음을 터트리진 않았다. 그는 “마지막 포인트 때 솔직히 눈물이 살짝 났다”며 “(상대) 고희진 감독이 경기 끝나고 ‘연경아 너 수비가 우승시킨거다’라고 하셨다. 감사하다고 했고 사실 정관장도 부상 선수 많은데도 최선 다했는데 마지막엔 우리가 웃게 돼 아이러니하고 마음이 좀 그렇다”고 했다.

김연경은 V리그 여자부 역대 2호 만장일치 챔프전 MVP에도 선정됐다. 그는 “4차전 지고 2년 전 한국도로공사에 리버스 스윕당한 기사가 많이 나오더라”며 “기자 분들이 양심이 있으셔서 괜히 미안하셔서 뽑아주신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은퇴가 아직은 실감 안난다고 했다. 김연경은 “꿈 같다. 내일도 대전이나 인천에서 한 경기 더 뛸 것만 같고,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인터뷰하는 것도 꿈 같다”며 “며칠 지나야 실감 날 것 같다. 오늘이 배구인생에서 제일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또한 “몇몇 분들이 아직 은퇴하긴 이른 것 아니냐고 하시는데, 저는 우승하고 정상에서 은퇴하는 게 가장 바라던 거였다”며 “별 하나 달고 우승하며 떠날 수 있어서 기쁘다. 매 경기 경기장 꽉꽉 채워주신 팬들 덕분에 힘내서 뛸 수 있었다. 팬들도 이제 같이 나이 먹어가는데 참 감사하다”고 했다.

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정관장과의 5차전 경기에서 승리하며 통합우승을 차지한 흥국생명 김연경이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챔프전에서 치열한 승부를 벌였던 정관장의 메가왓티 퍼티위(26·인도네시아)를 두고는 “진짜 무서운 선수로 성장했고, 우리 배구 수준을 높여줬다”며 “한편으로는 인도네시아 국가대표 선수로 만나면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도 든다”고 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한국을 떠날 것으로 예상되는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과는 이미 작별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는 “배구적으로 물음표가 없는 분이다. 본받을만한 감독이셨고 감사했다”고 했다.

현역 이후 제2의 인생에도 배구는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김연경은 “김연경 재단이 있어서 올해 5월에 세게 배구 올스타전 등 많은 활동이 계획돼있는데, 일단 여행도 하면서 무엇이 내가 원하는 방향일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며 “한국 배구는 잠재력이 많은데 이를 터트리기 위해선 세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어린 선수들도 화려한 것 보다는 기본기을 연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지금 무엇보다도 회식 자리가 가장 가고 싶다고 했다. 김연경은 “이번 시즌 들어서 금주를 오래 했었는데, 사실 제가 술을 좀 좋아한다”며 “오늘 회식을 제대로 하면서 선수들과 이번 시즌 에피소드 이야기하고 싶고 그렇다. 빨리 가고 싶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