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19일 인사 청문회에서 인플레이션을 꺾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기준 금리를 올리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 경기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미국이 급격한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우려 등 외부 여건의 불확실성도 높은 상태다. 그는 “미국처럼 물가가 크게 오른 뒤에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않고 선제적으로 움직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이 경기 회복과 성장의 발목을 잡는 상황도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가 상승 적어도 1~2년 계속”
이 후보자는 이날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이 향후 물가에 대한 전망을 묻자 “물가 상승 국면이 적어도 1~2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10년 만에 나타난 4%대 물가 고공 행진을 수개월 안에 잠재우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이 후보자는 ‘물가를 어떻게 해결할지 구체적 의견을 달라(주호영 국민의힘 의원)’는 질문에는 “인기는 없더라도 금리 인상 시그널(신호)을 줘서 물가가 더 크게 오르지 않도록 전념하겠다”고 대답했다. “선제적으로 시그널을 (시장에) 줘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필요한 경우 금리를 인상하고, 지속적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제시해 인플레이션 심리가 확산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리를 올리면 1862조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의 이자 부담이 불어나게 된다. 금리 상승은 기업 투자도 위축시키게 된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새 정부 출범 초기에는 경기 침체를 용인하고 물가와 싸우는 데만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후보자가)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자는 “경제 정책 전반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정부와 소통하고 조율할 것”이라고 했다.
새 정부가 공약대로 소상공인 코로나 손실 보상 등을 위한 5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추진한다면, 금리 인상을 통한 긴축에 나설 생각인 이 후보자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추경에 대해 이 후보자는 “만일 그 총량이 굉장히 커서 거시적으로 물가에 영향을 주게 되면, 당연히 정책 당국과 얘기해서 물가 영향을 어떻게 조절할지 한은도 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외부 여건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미 연방준비제도는 몇 차례 ‘빅 스텝’으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빅 스텝(big step)’은 통상적인 금리 조정 폭인 0.25%포인트의 2배인 0.5%포인트를 말한다. 빅 스텝을 밟으면 국제 금융시장에 상당한 충격이 올 수 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청년 실업, 노인 빈곤, 소득 양극화, 고령화 등으로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secular stagnation)’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만성적 수요 부족, 투자 축소, 고용 감소에 따른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불황을 가리킬 때 쓴다. 일시적인 요인에 의한 경기 후퇴를 넘어서는 ‘구조적 장기 침체’를 뜻한다. 이 후보자의 하버드대 시절 지도 교수였던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강조한 개념이다.
◇文 정부 경제 정책은 강하게 비판
이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서민 주택 가격 안정과 공급”이라며 “강남 지역의 안정화를 정책 목표로 삼으면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했다. 방만한 재정 확대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올라갔다면 오히려 이 기간(문 대통령 재임 기간) 최저임금이 더 올라갈 수 있었다”며 “처음에 너무 많이 올라 자영업자에게 부담을 줬기 때문에 그 부작용으로 최저임금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