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1분기에 코로나 사태 초기 이후 2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벌어지는 가운데 실물 경기도 위축된 것이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을 덮친 고물가와 저성장은 세계경제에도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28일(현지 시각) 미국 상무부는 1분기 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전기 대비 연율로 -1.4%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작년 4분기에 6.9%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눈에 띄게 속도가 느려졌다. 코로나 사태가 강타한 2020년 2분기에 -31.2%를 기록한 이래 분기 성장률로는 첫 번째 마이너스다. 2020년 3분기부터 여섯 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하며 코로나 사태에서 벗어나는 흐름을 보이다가 주저앉은 모양새가 됐다.
1분기 성장률 발표를 앞두고 골드만삭스가 1.3%, 다우존스는 1%로 전망하는 등 대체로 1% 안팎의 성적표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월가 전망치를 훨씬 하회하는 충격적 결과가 나왔다. 1월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충격과 2월 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식자재 가격 급등이 야기한 물가 폭등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지난 3월 미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8.5%로 41년 만에 최고치였다.
1980년대의 초(超)인플레이션을 방불케 하는 물가 상승에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는 공포가 한층 커졌다. 미국의 ‘1분기 성장률 쇼크’는 다른 나라들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세계은행(WB)은 전날 “세계가 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소비·투자 증가했지만 수출 급감
미 상무부가 발표한 1분기 미국 경제 부문별 성장 기여도를 보면 민간 소비는 1.83%포인트로 크게 저조하지는 않았지만 순수출이 -3.2%포인트였다. 수출에 큰 타격이 생겼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와 인플레이션으로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가라앉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날에도 미국 정부가 발표한 3월 미국 상품 무역수지는 월간 적자 규모로는 사상 최대인 1253억달러(약 160조원)를 기록했다. 수출 저조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이유였다. 역시 전날 발표된 3월 미국 주택 판매도 1.2% 줄어 2월(-4%)보다는 감소 폭이 둔화되긴 했어도 감소세가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크게 못 미치게 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계획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연준은 코로나 사태 이후 사실상 제로(0~0.25%)로 유지하던 기준금리를 지난달 처음으로 0.25~0.5%로 올렸으며, 연말까지 2.5% 안팎까지는 올린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1분기 성장률이 충격적으로 낮게 나오면서 예상대로 거침없는 속도로 금리를 올리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가는 계속 높은 상태에 머물면서 경기 회복은 더뎌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는 길로 빠져들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이 이런 흐름으로 가면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속 고물가’가 확산될 수 있다. 미국의 내수 시장도 회복이 더뎌지면서 TV·반도체·가전 등 한국 기업들의 수출도 예상보다 저조할 가능성이 커진다.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독일 통계청은 4월 독일의 소비자 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7.4%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석유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1981년 이후 41년 만에 최고치다. 독일 통계청은 에너지 가격은 35.3%, 식품 가격은 8.5% 상승했다고 밝혔다.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유럽에서도 높은 나라라서 우크라이나 전쟁발 에너지난을 심하게 겪고 있다.
◇뉴욕증시는 상승세로 출발
미국의 1분기 성장률이 충격적으로 낮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날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전날보다 상승해 출발했다. 현지 시각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후 11시) 기준으로 나스닥이 1.37% 올랐다. S&P500과 다우평균은 각각 0.9%, 0.3% 안팎에서 움직였다. 1분기 성장률이 워낙 낮아 연준이 예상보다 강하게 통화 긴축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
블룸버그와 마켓워치 등은 “1분기 성장률만 놓고 미 경제가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며 “무역 적자가 늘고 정부 지출이 작아졌지만 소비나 기업 투자 면에선 선방했다”고 했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낮고 실업률, 가계부채 등의 지표가 양호한 수준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발 지정학적 위기가 잦아들면 다시 경제 회복 속도를 높일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7%로 독일(2.1%), 일본(2.4%), 한국(2.5%)보다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