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저개발 국가와 저소득층에 훨씬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간격을 벌리고, 중산층과 빈곤층의 격차도 키워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를 심화하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마비가 쉽게 풀리지 않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 유가와 식량 가격 인상에 불을 지르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게다가 러시아·중국 대 미국·유럽이라는 신냉전 구도가 탈(脫)세계화를 가속화해 인플레이션을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대립 구도가 남기 때문에 전 세계적 비용 절감을 이끌었던 자유무역에 제약이 생겨 갖가지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코로나 첫해였던 2020년 전 세계 교역량은 전년보다 7.2%나 줄어들어 17조6451억달러에 그쳤는데, 이는 2011년(18조3391억달러)보다도 적은 수준이다. 2000년에서 2010년 사이 세계 교역량이 2.37배 늘어났던 것과 달리 2011년 이후 교역량은 정체 상태에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30년간 유지된 세계화가 끝났다”고 보도했다.
◇세계은행 “극빈층 올해 많으면 9500만명 증가”
아프리카·남미·아시아에서는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라는 반정부 시위가 잇따라 벌어져 사회 불안이 야기되고 있다. 지난달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수천 명이 “인플레를 해결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아르헨티나는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50%를 넘겼고, 올해도 1~4월에 23%였다. 지난 4월 국가 부도가 난 스리랑카도 최근 식량·의약품 부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페루에서는 연료·비료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트럭 기사들과 농부들이 고속도로 점거 시위를 벌였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은 소득의 절반을 식품 구입비로 사용하기 때문에 물가 상승기에 타격이 선진국보다 훨씬 크다”고 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2014~2016년 평균이 100)는 지난 3월 159.3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은행은 하루 1.9달러(약 2430원)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극빈층으로 분류한다. 이런 극빈층은 감소 추세였지만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적게는 7500만명, 많게는 9500만명 증가할 것으로 세계은행은 추산하고 있다. 국제구호위원회(IRC)는 아프리카 북동부에서만 1400만명 이상이 기아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자국 위주 금수 조치 늘어 글로벌 공급망 훼손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각 국가가 자구책으로 주요 원자재나 곡물 수출을 중단하거나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장기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달 초 말레이시아는 살아있는 닭부터 닭고기·너깃까지 모든 닭 관련 제품의 수출을 중단했다. 인도는 5월 밀 수출을 전격 금지하고 설탕 수출은 올해 1000만t으로 제한했다. 지난 4월에는 인도네시아가 팜유를, 이집트가 밀·콩 등 곡류 수출을 일시 금지했다.
물가 급등 완화와 식량 안보를 위한 조치들인데 발등의 불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 간 상품 유통을 끊어지게 만들 경우 결국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가중하게 된다. 이런 고통도 신흥국에서 더 크게 겪을 수밖에 없다. 공급망 차질을 겪은 선진국 기업들이 주로 신흥국에 만든 해외 저비용 생산 기지를 자국이나 우방국으로 이전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신흥국들의 경제적 고통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