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얼'의 한 장면
영화 '리얼'의 한 장면

“모두 다 이 안에 있어. 모두 다 내 거야!”

영화 ‘리얼’의 주인공 장태영(김수현)의 말입니다. 이 대사가 영화 ‘리얼’을 한 줄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영화는 김수현의, 김수현에 의한, 김수현을 위한 영화입니다.

지난 주말 영화 ‘리얼’을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보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김수현의 기자회견 후 이 영화는 넷플릭스 2위, 쿠팡플레이에서는 1위까지 올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봉한 지 8년 만에 역주행에 성공하며 가장 핫한 영화가 됐습니다.

이 영화는 카지노 ‘시에스타’의 오픈을 앞둔 조직의 보스 장태영(김수현) 앞에 중국 출신의 암흑가 대부 조원근(성동일)이 나타나 방해하고, 이를 막기 위해 장태영이 자신과 이름·외모 모두 똑 같은 의문의 투자자와 손을 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비만 115억원, 손익분기점은 320만명이었지만, 국내 총관객수가 47만명에 그치며 실패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세 개의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국내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제작사 ‘코브픽쳐스’, 중국 배급사 겸 투자자 ‘알리바바픽쳐스’입니다. 코브픽쳐스의 대표는 김수현의 가족이자 이 영화의 공동 감독인 이사랑(이로베), 알리바바픽쳐스는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계열사입니다. 한류스타인 김수현을 보고 알리바바그룹이 투자했고, 김수현의 가족이 제작과 감독하고, 김수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업계에서는 김수현이라는 1인에 의존하는 이 시스템이 영화 ‘리얼’을 망친 주범이자, 배우 김수현 사태, 이전으로 가면 배우 김새론 사건이 이렇게까지 커진 배경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돈이 되는 여기 힙해 마흔 여덟 번째 이야기입니다.

<1>리스크 관리 힘들어

영화 '리얼' 기자간담회에서 이사랑 감독.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7.06.26

연예기획사 업계에서 배우는 돈이 크게 되지 않는 사업입니다. 배우의 출연료나 광고료에서 수수료 정도를 챙길 수 있을 뿐, 가수들처럼 행사·콘서트 수익, IP(지식재산권) 등으로 큰 돈을 벌기 힘듭니다. 배우 팬덤은 가수 팬덤 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신곡이 크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앨범을 사고 콘서트를 가지만, 배우는 팬심만으로 재미없는 영화와 드라마를 봐주지 않습니다. 배우가 가수처럼 팬덤만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YG엔터테인먼트가 배우 매니지먼트를 종료하고, SM엔터테인먼트는 배우 자회사인 키이스트를 매각했습니다.

배우 입장에서도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유명해지고 나면 더합니다. 대본 들어오는 것도, 광고 들어오는 것도, 내 이름보고, 나를 믿고 들어오는 건데 기획사에 일부 주기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본 검토도 내가 직접할 건데, 전화 받는 것쯤은 우리 가족이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이런 판단으로 1인 기획사가 탄생합니다.

성공한 배우에게 1인 기획사는 안정적인 수익원입니다. 스스로 파멸하지 않는 한 대본과 광고는 계속 들어올 것이고, 그 때마다 수익을 100% 챙기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처럼 사건 사고가 생겼을 때입니다.

리스크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른 대응’입니다. 대형 기획사에서는 한 사건이 터지면, 이 사건을 진화하기 위해 많은 인원들이 뛰어듭니다. 상대적으로 진화 시간이 빠릅니다.

상황 판단의 차이도 있습니다. 큰 사건이 터지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융합할 것은 융합하는 냉철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1인 기획사에서는 사건을 일으킨 사람도, 이를 해결해야 할 사람도 1인입니다. 판단 실수가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법적 판단도 느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연예계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외부 변호사는 드뭅니다. 기획사 내 법무팀처럼 경험이 많지도 않습니다.

<2>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 없어

영화 '리얼' 스틸컷

1인에 의해 움직이는 회사인데, 그 1인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1인 기획사가 아니더라도, 배우나 가수가 성장해 인기가 많아지면 그를 키워준 소속사도 컨트롤 안 되기 마련입니다. 데뷔한 지 2년 된 그룹 ‘뉴진스’가 키워주고, 데뷔 시켜주고, 성공시켜준 후 수십억원대 정산까지 해준 소속사를 상대로 인사 안 받아주고 기분 상하게 했다고 법정 분쟁을 벌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룹 투애니원의 산다라박은 최근 연차가 쌓이고 가장 힘든 점으로 “아무도 혼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A&R팀이나 마케팅팀 전부 “어떤 걸 원하시나요?”라고 묻지, “이거 아니에요. 안 돼요”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빅뱅 대성도 공감하며 “그게 우리를 제일 내리막길로 가게 하는 길인데”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3>견제 장치 없는 권력 집중의 끝은?

영화 '리얼' 스틸컷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진 것이 영화 ‘리얼’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배우 기획사는 큰 수익을 내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으로 영향력을 넓힙니다. 작품을 기획해, 소속 배우들을 고용하면, 제작 수익과 배우 개런티를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김수현의 전 소속사였던 키이스트, 배우 류준열 등이 속한 씨제스 스튜디오 등이 이런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장착시켰습니다.

그러나 배우 소속사가 제작까지 하는 건 큰 리스크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완성도입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부딪힙니다. 감독과 배우는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고, 제작자는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편집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무대와 의상 감독 등은 완성도를 위해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고집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제작 현장에서는 이 모든 이해관계들이 부딪히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방향이 ‘제작사의 수익’을 향하고, 의사 결정을 1인이 하기 시작하면 작품이 이상해집니다.

과거 업계 권력자였던 A기획사의 대표 B씨는 이런 이해관계로 영화 제작에 나섰습니다. 주연 배우는 당대의 스타였던 소속 배우 C씨였지요. 절대 권력 B씨를 중심으로 A사가 제작하고, C씨가 주연인 만큼 영화 제작의 축은 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흥행에서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당시 이 영화의 홍보 마케팅도 C 배우의 인생 최초 전라 노출이라는 마케팅이었다는 것입니다. 업계에서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노출 마케팅이 나온다는 건 ‘망작’으로 인식합니다. 가장 눈길을 끌기 쉬운 요소니깐요. 영화 ‘리얼’과 조금 비슷하지 않나요?

과거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C배우는 결국 A소속사와 계약을 해지했고, 이 영화의 실패는 A소속사가 과거의 영광을 잃게 된 계기로 꼽힙니다. 어느 곳이나 견제 장치가 없는 1인 권력은 스스로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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