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지난달 28일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끝나면서 대서양 동맹이 분열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오름세를 탔던 방산주들이 2차 폭등하고 있다. 유럽 각국이 각자도생을 위해 방위비 지출을 크게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 속에 유럽 주요 방위산업 종목들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가 하면, 유럽 군비 증강의 수혜가 예상되는 국내 방산·조선주들 주가도 크게 들썩이는 중이다.
◇유럽 ‘자주국방’의 길로… 방산주 2차 폭등
지난달 28일 트럼프·젤렌스키 정상회담 파국 후 3일 유럽 주식시장이 개장하자 투자자들은 주요 방산주로 대거 몰렸다. 유럽 최대 종합 방산 기업인 독일의 라인메탈이 이날 하루 13.71% 급등했고, 독일 방산 전자 기기 전문 기업 헨솔트는 22.25%, 영국 BAE시스템스(14.58%)와 이탈리아 레오나르도(16.13%) 등 유럽 주요 방산 기업들이 동반 급등세를 보였다. 라인메탈은 올 들어 89.5% 올랐다.
방산주 상승에 힘입어 독일 DAX 지수는 2.6% 급등하며 신고가 기록을 썼다. 프랑스 CAC40 지수도 지난해 5월 찍었던 사상 최고가 기록에 바짝 다가섰다.
유럽 방산 대장주 라인메탈의 주가 상승세는 괄목할 만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무렵인 2022년 2월 하순, 이 회사 주가는 주당 100유로가 채 안 됐다. 하지만 전쟁 발발 이후 뛰기 시작해 2년 만인 지난해 초 400유로를 넘었고, 최근 2차 점프를 하더니 지난달 말 1000유로마저 돌파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시장가치가 11배 뛰었다.
라인메탈은 지난해 3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40%, 영업이익은 52% 늘어나는 등 전쟁의 수혜를 온몸으로 받고 있다. 빈센트 주빈스 JP모건자산운용 글로벌 시장 전략가는 블룸버그에 “자주국방에 관한 유럽의 광범위한 합의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에 올해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오더라도 향후 몇 년간은 방위비 지출이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K방산도 수혜
한국 방산 기업들도 4일 국내 주식시장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유럽 시장에 K9 자주포, 천무 등을 수출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8.01% 급등한 70만1000원에 거래를 마치며 사상 최고가에 마감했다. K2 전차를 수출하는 현대로템도 10.87% 올랐다. 이 밖에 LIG넥스원(7.39%), 대성하이텍(29.97%) 등 주요 방산주들과 HJ중공업(30.0%), 한화오션(14.54%) 등 조선주들도 동반 급등했다. 이날 미국이 4일부터 중국,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기로 확정하면서 코스피가 0.15% 하락하고, 코스닥도 0.81% 떨어지는 등 국내 주식시장이 전반적인 약세를 보였지만 방산·조선주들만은 예외였다.
영국 런던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은 2023년 2조4600억달러(약 3593조원)로 전년 대비 7.4% 늘어나며 사상 최대였다. 특히 독일의 국방 예산이 23.2% 늘어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전문가들은 북유럽 국가들이 현재 GDP(국내총생산)의 2% 수준인 군비를 빠른 시일 내에 3% 수준까지 늘리고, 장기적으로는 5%까지도 증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DS투자증권은 “현실적으로 (국내 방산 기업의) 진출이 가능한 동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이 GDP의 5%까지 군비 증강을 한다면 작년 대비 약 563억달러(약 82조원)의 추가 지출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유럽이 원하는 빠른 납기에 가성비 있는 무기를 제공할 수 있는 한국도 유럽 방위비 증가 수혜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유럽의 자주국방 움직임이 유럽 경제 전반에는 도리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제 신용 평가사 피치는 지난달 25일 보고서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이 GDP 대비 3%대까지 늘어나면 여러 국가가 부채 한도를 상향하거나 세금도 인상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인 부채 증가가 국가신용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일각에선 방산주가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과열됐다는 시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