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완규(64) 법제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비상 계엄을 선포한 것을 계기로 탄핵 소추되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더불어민주당 등 당시 야당들이 국회에서 선출한 마은혁·조한창·정계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가운데 조·정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이 처장은 이날 최 전 대행이 국무위원들과 상의하지 않고 두 후보자를 임명한 것을 비판하면서 “국무회의에 회의(懷疑)를 느낀다”고 했다. 국무회의는 국정을 상의해서 합리적으로 하라고 있는 자리인데, 대통령이 아닌 최 전 대행이 독단적으로 임명을 강행해 국무회의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처장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계엄을 하면서도 (국무위원들과) 상의 한 번 안 했다”고 비판했다. 이 처장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 계엄을 선포한 이래로 윤 전 대통령이 탄핵돼선 안 된다는 의견을 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일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계엄의 선포 및 계엄사령관의 임명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 사건 계엄 선포에 관한 심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1961년 인천에서 태어난 이 처장은 윤 전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사법연수원 23기 동기다. 사법고시 합격은 이 처장이 32회, 윤 전 대통령이 33회로 이 처장이 1년 빨랐다. 이 처장은 과거 윤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윤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하자 당시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이었던 이 처장은 “청와대 주도로 전례 없는 인사가 이뤄졌다”고 비판하면서 검사장 승진을 앞두고 사표를 냈다. 하지만 2020년에는 검찰총장이었던 윤 전 대통령이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주도로 징계를 당하자 징계 취소 행정 소송에서 윤 전 대통령을 대리했다.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고, 윤 전 대통령 취임 직후 법제처장으로 임명됐다.
이 처장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 계엄이 해제된 당일인 지난해 12월 4일 저녁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회동하기도 했다. 이 처장은 이후 휴대전화기를 교체해 논란이 됐다.
이 처장은 윤 전 대통령과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탄핵 소추로 직무 정지된 뒤에는 한덕수·최상목 권한대행 체제에서 정부의 실질적인 법률 고문 역할을 했다. 두 대행에게 민주당 등이 단독 처리한 법안들에 대한 재의 요구권(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조언했고, 최 전 대행에게는 헌재가 한덕수 총리에 대한 탄핵 심판을 선고하기 전까지 마은혁 헌법재판관이나 마용주 대법관을 임명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에 하나 헌재가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요건이 ‘재적 과반수’가 아닌 ‘재적 3분의 2 이상’이라고 판단할 경우엔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가 법적으로 무효화될 수 있고, 이 경우 최 전 대행이 임명한 재판관·대법관의 지위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처장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1980년 5·18민주화운동으로 구속 수감된 이력도 있다. 5·18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벽보를 게시한 혐의였다. 이 처장은 2008년 5·18민주화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한 대행이 이날 이 처장과 함께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함상훈(58)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21기로 1995년 청주지법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고법 판사, 전주지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광주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2004년 헌법재판소에 파견돼 근무하기도 했다.
함 부장판사는 2017년 서울 도봉구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2심에서는 사건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고인들의 형량을 1심의 징역 6~7년에서 1년씩 높여 선고했다. 당시 함 부장판사는 “기록을 읽어보면 분노가 치밀어서 이게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피고인들이) 범행 당시 성인이었다면 훨씬 무거운 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함 부장판사는 2020년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2심에서는 댓글 조작 혐의에 징역 2년을 선고했다.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던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2021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혐의 사건 2심에서도 우 전 수석에게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다만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만 유죄로 인정했고, ‘최순실 국정 농단’을 묵인한 혐의는 무죄로 판단해, 1심에서 징역 4년이었던 형량을 징역 1년으로 줄였다.
함 부장판사는 2021년과 2024년 대법원의 대법관 후보 명단에 들어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