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현지 시각) 영국 총리실이 있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로 출근하던 한 중년 사나이를 기자들이 에워쌌다. 보리스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전략과 메시지를 만드는 도미닉 커밍스(48·사진) 정치특보였다.

그는 최근 영국 언론이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 인물이다. '브렉시트 주술사' '사악한 천재'로 불리는 존슨의 실세 참모이기 때문이다.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EU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존슨의 강경 노선을 그가 뒷받침하고 있다. 존슨은 커밍스를 위해 '정치특보'라는 전례 없는 직책을 만들어, 그의 사무실을 총리 집무실 바로 옆방에 배치했다. 존슨이 런던 시장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에디 리스터는 "현재 다우닝가 최고 권력자가 커밍스"라고 했다. 영국 언론은 그를 "수석보좌관"이라고 부른다.

커밍스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결성된 '보트 리브(Vote Leave)'라는 브렉시트 찬성 캠페인의 총괄 전략가였다. 당시 그는 '통제권을 되찾자(Take Back Control)'는 짧은 슬로건을 만들었다. EU의 입김에서 벗어나자는 간결한 메시지가 먹혀들어갔다.

커밍스는 또한 "영국이 매주 EU에 3억5000만파운드(약 5130억원)의 분담금을 낸다"며 "그 돈을 국민건강서비스(NHS)에 쓰자"는 논리를 만들어 널리 퍼뜨렸다. 존슨은 이 문구를 빨간색 버스 옆면에 붙이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 내용은 '거짓'이었다. 영국이 각종 보조금으로 돌려받는 돈을 감안하면 실제 부담하는 액수는 절반도 안 되는 1억5000만파운드(약 2200억원)였다. 목적 달성(브렉시트)을 위해 국민을 현혹하는 허위 정보를 활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사악한 천재'로 불리는 이유다. 결국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가결되자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는 커밍스에 대해 "직업적인 사이코패스(정신이상자)"라고 비난했다.

커밍스는 브렉시트 찬성파일지라도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독설을 퍼붓는다. 데이비드 데이비스 전 브렉시트부 장관을 "두꺼비처럼 게으르다"고 했고, EU 회의론자 의원 모임인 ERG는 "전이되고 있는 암세포"라고 했다.

그가 반(反)EU 캠페인을 벌인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유로화가 도입되자 그는 영국은 파운드화를 계속 쓰자는 캠페인의 전략가로 활동했다. 이후 이언 덩컨 스미스 전 보수당 대표와 마이클 고브 현 국무조정실장 등의 보좌관을 거쳤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항상 배후 참모로 활동하는 식이었다.

최근 커밍스는 "위선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가족과 함께 공동 소유한 농장을 통해 20년에 걸쳐 EU가 주는 농업보조금 23만5000파운드(약 3억4500만원)를 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폭로됐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EU 보조금을 받는 것은 어리석고 부조리한 일"이라고 주장해왔다.

옥스퍼드대 역사학과를 나온 그는 이후 러시아에서 3년간 사업을 했다.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같은 러시아 작가에 심취했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안나 카레니나'다. 커밍스가 EU를 싫어하는 것이 그의 뿌리 깊은 친러 성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에 대해 직접 본인이 언급한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