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디즈니의 신작 영화 ‘뮬란’에 대해 보도금지령을 내렸다. 1998년 제작된 애니매이션 작품을 실사화한 이 영화는 중화권 톱스타인 배우 류이페이(33·劉亦菲·유역비)가 주연을 맡고 있다. 중국 남북조 시대 여성 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최근 유역비의 홍콩 경찰 지지 발언과 인권 탄압 의혹이 일고 있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촬영된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홍콩 등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뮬란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다.
로이터통신은 10일(현지 시각) ‘뮬란’ 관련 이슈에 정통한 4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이 주요 언론사에 ‘뮬란’에 대한 보도 금지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중국 정부가 (언론사에 보도 금지 지침을) 통보하며 별 다른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관련한 해외의 비판 때문이라고 (지침을 통보받은) 관계자들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로이터는 이와 관련해 중국 당국이나 디즈니에 입장을 물었으나, 모두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디즈니의 야심작인 뮬란이 영화계에서 인권 논란에 휩싸인 건 지난해 주연인 유역비의 트위터 발언 때문이다. 유역비는 지난해 8월 홍콩 민주화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을 둘러싼 논란이 일자 웨이보 계정을 통해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나를 비난해도 된다” “홍콩은 수치스러운 줄 알라”는 글을 올렸다. 이 때문에 홍콩·대만 등 아시아권 영화팬을 중심으로 뮬란에 대한 보이콧(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 연이어 인권 논란에 …"디즈니 현금 중독" 美서도 보이콧 확산
최근 온라인을 통해 먼저 개봉한 뮬란의 엔딩크레딧이 공개되면서 인권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커졌다. 엔딩 크레딧에 촬영 장소 중 하나인 신장 자치구 투루판시(市)의 공안 당국과 중국 공산당 신장 선전부 등에 대한 감사 표시(China Special Thanks)가 삽입됐기 때문이다.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탄압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곳이다. 자치구 내 신장위구르족(이슬람교를 믿는 중국 소수민족) 강제수용소에는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디즈니가 촬영 장소를 내줬다는 이유로 중국 공안 당국에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하자 미국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확산했다. 아이작 스톤 피시 아시아소사이어티 선임연구원은 지난 9일 워싱턴포스트(WP)에서 ‘디즈니의 뮬란이 스캔들(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인 이유’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뮬란의 가장 파괴적인 부분은 영화 스토리가 아니라 크레딧”이라며 “디즈니가 반인륜적 범죄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디즈니는 신장위구르에서 촬영하기 위해 중국과 부끄러운 협상을 했다. 뮬란은 디즈니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영화”라고 했다.
미 공화당 소속 톰 코튼 상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디즈니가 중국의 현금에 중독됐다”며 “디즈니는 중국 공산당 기분을 맞추려 무슨 일이든 할 것”이라고 썼다. AP통신은 “노골적인 엔딩 크레딧이 영화에 대한 보이콧 운동을 촉발했다”고 전했다.
홍콩 민주화 운동을 이끄는 조슈아 웡은 지난 7일 트위터에 ‘보이콧 뮬란’이란 해시태그(#)와 함께 “뮬란을 보는 것은 (민주화 시위를 탄압한) 홍콩경찰의 만행과 인종차별을 외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무슬림 위구르인 집단 감금에도 잠재적으로 공모하는 것”이라고 했다.
◇침묵하던 디즈니 “세계적 관행” 첫 공식해명… 흥행전망은 어둡다
디즈니는 그동안 뮬란을 둘러싼 논란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논란이 커지자 이날 중국 공안당국에 감사표시를 한 것에 대해 “전 세계적인 관행”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미국 영화전문재체 데드라인에 따르면 크리스틴 맥카시 월드디즈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영화 제작을 허락한 국가 또는 지방정부에 사의(謝意)를 밝히는 것은 세계적 관행”이라고 했다. 그는 “맥락을 설명하자면 뮬란은 주로 뉴질랜드에서 촬영됐다”며 “중국이라는 나라의 독특한 풍경과 지리를 정확히 묘사하기 위해 중국 내 20여 곳에서 풍경을 촬영했다”고 했다.
뮬란은 당초 지난 3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으로 개봉이 계속 미뤄졌다. 디즈니는 결국 지난 4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뮬란을 개봉했다. 국내에선 10일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여파로 오는 17일 개봉한다.
다만 중국에서는 현장 상영도 진행된다. 로이터는 티켓팅 플랫폼 마오얀의 자료를 인용해 “뮬란은 중국 극장 스크린 가운데 40% 이상에서 개봉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코로나로 인해 전체 극장 스크린 가운데 절반을 가동하지 않고 있다.
높은 스크린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뮬란이 흥행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우선 중국 밖에서는 “영화를 본다면 중국의 인권 탄압을 옹호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 내부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영화화 과정에서 서양의 시각으로 동양 문화를 그린 ‘오리엔탈리즘’ 논란에 빠졌다. 시대 고증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평론가는 “(영화 개봉 전) 평가를 고려할 때 뮬란은 중국에서 초라한 수익을 올릴 것”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디즈니가 중국의 현금에 중독됐다”라는 말까지 들었던 디즈니에게는 처참한 흥행 실패 가능성에 직면한 것이다. 뮬란의 제작비는 2억달러(약 2376억원)다.
◇'제2의 왕조현' 유역비, 한때 한류스타 송승헌과 공개 열애
미국 시민권자인 유역비는 2002년 중국드라마 ‘금분세가’로 데뷔한 뒤 드라마 ‘천룡팔부’(2004)와 ‘신조협려’(2006)를 통해 스타로 부상했다. 영화 ‘사대명포’(2013) ‘조조-황제의 반란’(2012) ‘초한지-천하대전’(2012) 등에도 출연했다.
유역비는 ‘제2의 왕조현’으로 불리는 중화권 최고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유역비는 2015년 한·중 합작 영화 ‘제3의 사랑’(2016)에서 만난 배우 송승헌과 열애 사실을 인정해 한중 톱스타 커플로 주목을 받았으나 2018년 결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