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의 대부’ ‘민주화 운동의 비밀병기'로 불리는 김정남(78)씨가 문재인 정부와 운동권 세력을 향해 “무능하면 겸손이라도 해야 하는데 지금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나 과거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고 오히려 뻔뻔하고 위선적인 데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겨레신문이 18일 보도했다.
김씨는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 사회에는 민주화운동에 대해 냉소를 넘어 조롱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밝힌 뒤 “나는 민주화운동 했던 사람들이 너무 빨리 타락해버린 게 아닌가, 우리의 초심과 민주화의 열정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다”고 했다.
◇ “민주화운동 세력 너무 빨리 타락 … 비루해선 안돼"
김씨는 “그들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를 돌아보는 게 먼저여야 한다”며 “당당하고 떳떳한 도덕성이 우리 운동세력이 갖고 있는 최대의 무기이자 장점인데 지금 그런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혹평과 비난, 조롱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는 “부끄러움과 반성이 항상 필요한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괜찮다는 식으로 도덕성과 인간됨을 스스로 부정하는 현상이 민주화 이후 30여 년 동안에 오히려 확대 심화되어 온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여야 정치권에서”라고 했다.
김씨는 “지금 제일 절망적인 건 젊은이들이 이 나라에 태어나서 살고 있다는 것이 보람과 영광이 아니라 오히려 비참하다고 느끼는 점”이라며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정치인데 정치에서 희망이 안 보인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 때문에 지금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격차와 차별은 더 심해질 것이다. 이런 부분의 해결과 사회 통합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보인다”며 “어떨 때는 집권세력이 그럴 의지나 능력이 전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김씨는 현 집권세력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에 “지금 권력의 주체가 일단은 민주화 세력이다. 그게 아니면 이런 얘기를 할 필요도 없다”며 “저는 정권 담당 세력부터 도덕성과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본다”며 “다른 사람의 눈에 그들이 정의롭게 비치지 않는다면 독재 군사정권과 무엇이 다르겠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고 떳떳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거짓과 위선, 그리고 비루해선 안 된다. 모든 개혁은 나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 자꾸 남한테 전가하지 말고, 내가 먼저 달라지고 변하는 그런 운동을 정권에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해서 사회 전반적으로 확대해 나가야한다. 그래야 국민 통합을 향한 희망이 싹틀 수 있다"고 했다고 한겨레신문은 전했다.
◇ “막상 국정 참여해보니 우리가 너무 무식했다”
김영삼(YS) 정부 시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잠시 재직했던 그는 '재야에서 민주화운동 하다가 청와대에서 일해보니까 어땠나"는 질문에 “사실 민주화라는 것만 되면 모든 게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만 향해서 마구 달려왔는데 막상 국정운영에 참여해보니까 우리가 너무 무식하고, 국정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며 “우리는 민주화를 위해서 밤새 울어보긴 했지만, 이 나라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멈춰서서 한 번도 고뇌해본 적이 없었지 않나. 나 자신의 무지를 새삼 느꼈고, 국정 하나하나에 경건해야 하는 거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김씨는 20대 초반이었던 1964년 6·3사태 때 ‘배후인물’로 구속된 뒤 1987년 6·29선언이 나오기까지 30년 가까이 수배와 도피, 투옥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배후에서’ 각종 민주화운동 단체들을 결성하고 인혁당사건의 진상조사 및 폭로, 김지하 양심선언 발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폭로 등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 당시 청와대에 재직한 것을 제외하곤 정치권 활동 등 대중의 시선에 등장하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김씨에 대해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고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민주화 운동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내 앞에 나서지도 않았고, 또 내세운 일도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