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현 작가가 적외선 필터로 포착한 종묘의 모습/사진=최보윤

이우현 OCI 부회장, 이혁상 W치과 원장, 울프 아우스프룽 한성자동차 대표. 세 CEO가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다른 직군에서 회사를 진두지휘한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 이들을 관통하는 또 한 가지 공통점. 바로 ‘사진’이다. 취미를 넘어 전문적인 지식은 물론 예술성과 남다른 세계관을 바탕으로 개인전·단체전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사진작가’다. 요즘 말로 ‘부캐’인 셈이다.

이들 3인의 작품전 ‘관계의 풍경’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유중재단 유중아트센터 개관 9주년 특별전으로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설 때 가장 처음 마주하는 대형 사이즈 종묘 사진은 그 웅장함에 잠깐 발을 멈추게 된다. 이우현 작가의 작품으로, 언뜻 멀리서 광각으로 한 화면에 담은 듯하지만 실제로는 파노라마 기법으로 찍은 사진을 일일이 이어붙여 실제의 모습 그대로를 재현했다. 이우현 작가는 “우리 건축물의 압도적인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내기 위해 컷을 이어붙이는 작업을 하게 됐다”며 “카메라 렌즈로 각각 장면을 담았을 때 ‘휨’ 현상 등 실제의 사물을 왜곡하는 부분이 있어 이를 맞추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이지만, 마치 흑백 소묘를 보는 듯한 질감마저 느끼게 한다.

세월을 떠받치는 낡은 기둥은 사진 속에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초현실적인 공간감을 준다. 묘한 정적 속에서 마치 금방 문이라도 열려 누군가 나와 이야기할 것 같은 생동감. 따뜻한 시선으로 그동안 사물에 생동감을 부여했던 이우현 작가의 세계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5 정도의 길이로 벽을 가득 메운 ‘고요한 아침의 종묘’는 단순 흑백필름이 아닌, 적외선 필터를 사용해 흑백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유연한 채도의 변주로 몽환적인 느낌마저 준다. 사람의 눈으로 잡아내는 가시광선의 파장을 넘어 그 이면을 담아내는 적외선 필터 사진처럼 수백년 세월 동안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증거했던 종묘의 기록은 그의 작품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 외에도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 요소를 결합해 기둥 부분에 실제의 붉은 색감을 드러내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거나, 시시각각 태양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같은 톤으로 컬러감을 맞춰 한 번에 채집한 듯한 그의 찰나적 감수성이 담긴 컬러 대형 사진 등 그가 담아낸 고궁의 미학은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할 '우리 것의 재발견이기도 했다.

이혁상(이상) 작품전/사진=최보윤

이혁상(이상)의 작품 역시 사물을 ‘다르게 보기’에 도전했다. 그가 연작인 시뮬라크르(SIMULACRUM)시리즈가 대표적. '원본인 현실과 물의 반영(비치는 모습)이라는 비현실이 만나는 순간을 잡아내어 사진에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부여하기 위한 작업인 ‘언리얼 리얼리티’ 시리즈의 일부로, 작가는 물 위에 비친 일부 이미지들에서 고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였고, 원본의 재창조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시뮬라크르는 플라톤에 의해 가짜 복제품으로 정의된 개념이었으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들뢰즈에 의해 새로 정의되었다.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원본과 다른 독립성을 가진 복제물을 뜻한다. 작가는 원작인 언리얼 리얼리티로부터 독립되어 스스로 아름다운 이미지가 구성되는 물빛 장면들을 시뮬라크르라 명명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아우스프룽 대표의 작품은 프랑스 발레브랑쉐에서 포착한 거대한 설산으로 눈길을 끈다. 코로나로 해외에 나가기 어려운 요즘 아우스프룽 대표가 포착한 대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경외감이 든다. 전시는 12월 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