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이 올해에만 세번째로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습니다. 빌보드, 그래미, 롤링스톤 등 미국의 대중음악매체들의 기사에서 한국 가수들의 동정을 전하거나 인기를 분석하는 기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방탄소년단은 후보 지명만으로도 성공의 지표로 통한다는 그래미상 후보에까지 올랐습니다. 이럴 정도니 이제 미국 음악시장에서 19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비틀스 등 영국 가수들이 미국에 진출해 누렸던 폭발적 인기를 ‘영국의 미국 침공’으로 표현한 말)을 연상시키는 ‘코리안 인베이전(Korean Invasion)’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대중음악계와 함께 생태계에서도 지금 ‘코리안 인베이전’이 진행중이라는 걸 알고 계십니까. 한국과 동아시아의 토종 동물들이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서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환희와 열광으로 한국 출신들을 반기고 있는 대중음악계와 달리 낯선 동물들의 출현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은 뜨악합니다. 그 뜨악함은 오래전 미국흰불나방, 황소개구리 등 외래종 동물들을 접했을 때 우리 반응과 비슷합니다. 방탄소년단과 동시대에 미국을 침공한 동물들은 어떤 종들일까요.

◇브루클린에 터잡을까...논두렁의 터줏대감 ‘드렁허리’

얼마 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프로스펙트 파크에선 생전 처음 보는 생물체에 대한 목격담이 줄을 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몰래 공원 내 호수에다 뭔가 풀어놓길래 가까이 가서 봤더니, 뱀처럼 길다란 몸뚱아리를 한 것들이 꾸물거리고 있어서 기겁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현장을 찍은 사진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확산됐고, 간혹 뱀으로도 오인됐던 꾸물거리는 것들의 정체는 ‘드렁허리’였습니다.

최근 미국 일부 주에서 발견되고 있는 아시아 토종 물고기 드렁허리. /미 지질조사국

‘드렁허리가 뭐지’하고 갸웃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주로 논두렁에서 사는 토종 민물고기로 미꾸라지와 뱀을 반반쯤 닮은 기이한 생김새를 하고 있고 70㎝까지도 자랍니다. 옛날에는 논두렁을 무너뜨리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가 도시화와 농약살포 등의 영향으로 개체수가 급감했고, 지금은 보호해야 할 물고기로 대접받습니다. 작은 물고기와 개구리 등을 닥치는대로 잡아먹는 왕성한 식성과, 알에서 부화할때는 모두 암컷이었다가 일정 크기가 넘어서면 모조리 수컷으로 성전환하는 특이한 습성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영어 이름은 아시아늪장어(Asian Swamp Eel)이지만, 분류학적으로는 뱀장어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드렁허리는 뉴욕을 포함해 최소 8개주에서 발견됐습니다. 요 몇년 사이 양식이나 방생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풀어놓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드렁허리는 아시아권에서 약재료도 쓰입니다. 이 때문에 드렁허리가 ‘제2의 가물치’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하네요. 한국에선 산모 보양식으로 유명한 가물치는, 미국의 강과 호수에 출현해 그곳의 토종 물고기들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워 골치를 썩이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외래어종 배스와 블루길이 우리 민물 생태계를 황폐화시킨 복수를 가물치가 대신 해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드렁허리는 ‘뉴요커’가 될 수 있을까요. 주로 논두렁과 늪에서 사는 이 물고기가 혹독한 뉴욕의 겨울 날씨를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와, 온난화 등의 변수가 있어 가물치처럼 생태계 교란종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엇갈리는 가운데 당국은 당장 대대적인 퇴치 작전을 펼치기보다는 상황을 관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공포의 장수말벌, 미 대륙도 접수할까

호랑이가 사라진 한국 땅에 호환(虎患)은 더는 없지만, 새로운 우환 봉환(蜂患)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등산이나 벌초를 갔다가 장수말벌에 쏘여 목숨을 잃는 사건이 꾸준히 보고되자 소방청에서는 해마다 벌쏘임 주의보까지 발령할 정도로 대응에 부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에서는 무섭지만 낯설지 않은 곤충 장수말벌이 최근 북미대륙에 모습을 드러내자 미국과 캐나다가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미국 워싱턴주에서 발견된 장수말벌. /AP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주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장수말벌이 발견된 데 이어 올해 10월에는 워싱턴주의 숲 지대에서 장수말벌의 벌집 두 곳이 발견된 겁니다. 장수말벌은 꿀벌집을 습격해 날카로운 턱으로 꿀벌의 몸뚱아리를 조각내 몰살시킨 뒤 꿀벌 사체와 알, 번데기 등을 자신들의 새끼들을 위한 밥상에 올려 양봉업계에선 공포의 존재입니다. 이 때문에 워싱턴주 농업당국도 말벌집 발견 이틀 뒤에 전신 무장복을 입은 포획단원들을 투입해 벌집제거 작전을 신속하게 수행했습니다.

지난 10월 워싱턴주에서 전신무장을 하고 말벌집 제거작전을 펼친 담당 직원들. /워싱턴주 홈페이지

장수말벌의 존재가 확인된 미 워싱턴주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는 다른 미주 대륙에 비해 지리적으로 장수말벌의 주 서식지 동아시아와 가깝습니다. 장수말벌이 이곳에서 발견된 경위에 대해서야 더 면밀히 분석해야겠지만, 양봉인들의 걱정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왜가리, 아시아-아메리카 혼합신종 탄생하나

맵시있는 자태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먹성으로 이름난 물새 왜가리도 ‘코리안 인베이전’에 동참할 태세입니다. 왜가리는 서식지와 생김새에 따라 여러 종이 있는데, 한국 등에 사는 아시아 왜가리(영어이름은 Grey Heron)가 최근 북미 대륙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이죠. 본디 이 지역 토종 왜가리는 푸른가슴왜가리(영어이름은 Great Blue Heron)입니다. 깃털 색깔은 비슷한데 푸른가슴왜가리가 덩치가 좀 더 큽니다. 과학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아시아 왜가리의 미국 내 발견 소식을 비중있게 전했습니다.

지난달 11일 중국 후난성 중부 둥팅호 인근에서 왜가리 한마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지난 10월 미국 북동부 메사추세츠주 해안가에서 해양관리원이 왜가리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시아 왜가리였던 거죠. 현지 생태 전문가들은 이 왜가리가 단순히 길을 잃어 미주대륙까지 오게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번식지역을 타 대륙으로 넓힌 것인지 원인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날기보다는 유럽발 미주대륙행 선박에 ‘히치하이킹’을 했을 개연성도 거론됩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드물게 보이던 여름 철새였던 왜가리는 지금은 서울 도심 한복판인 청계천 최상류까지 날아올 정도로 빼어난 주변 적응력을 보이며 텃새이자 생태계 강자로 자리잡았습니다. 물고기·개구리·뱀·토끼 등 눈에 보이는 것은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왕성한 식욕과, 강력한 소화능력이 왜가리의 생존 무기입니다. 이들과 같은 종이 중남미, 카리브해 등에 점차 모습을 드러내더니 미국 본토까지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 아시아왜가리와 미국왜가리의 치열한 생존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미국 토종 푸른가슴왜가리도 악어새끼를 즐겨먹는 등 먹성이라면 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종이기 때문에, 종국에는 교배가 이뤄지면서 새로운 혼혈 왜가리종(種)이 출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교란인가 침입인가, 아니면 진화인가

이달 초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 연방지방법원에서는 홍콩을 통해 희귀종 아시아민물거북 수백 마리를 미국으로 몰래 들여오던 일당이 적발돼 벌금 1만 달러와 1년간 보호관찰 등의 조치를 선고받았습니다. 이처럼 방생, 히치하이킹, 밀수 등 갖가지 방법으로 다양한 외래동물들이 자의든 타의든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행 이민행렬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요.

4000여년전 건너와 원주민에게 길들여졌다 야생화된 호주의 들개 딩고. /호주딩고재단 홈페이지


외래종 동물들의 출현을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긴 안목에서 보면, 이것도 생물 진화의 한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호주에 사는 딩고라는 야생 개의 사례는 외래종과 토종의 구분이 궁극적으로는 커다란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000~4000년전 동남아시아에서 사람과 함께 건너온 사육견이 야생화하면서 늑대 같은 육식동물이 된 게 지금의 딩고입니다. 초창기에는 토착 생태계를 파괴한 외래종이었겠지만, 지금은 호주의 대표적인 야생동물이자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인간들이 반기지 않는 동물들의 이주와 정착도 진화와 적응의 한 과정으로 기록되지 않을까요. 블루길과 배스가 한국의 저수지와 연못의 간판 어종이 된 것처럼, 한국 논두렁에서 철퍼덕거리던 드렁허리도 적응 결과에 따라 뉴욕 서식 물고기로 등재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숱한 적응과 생존, 또한 그 이면에는 실패와 도태가 반복될 것입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결국 살아남는자가 승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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