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 홍학 우리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금슬 좋기로 이름난 한 커플이 의기투합해 다른 커플의 둥지를 점령하고 그 자리에 있던 알까지 자기들이 품으면서 부모 노릇을 하려 든 것입니다.

야외우리에서 한가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서울대공원의 홍학들. /서울대공원

홍학은 야생에서는 공동 육아를 하면서 남의 자식들까지 본능적으로 보듬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이 알을 곱게 품어 부화시켜 친자식처럼 기를 수도 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이들이 암수로 이뤄진 여느 커플과는 달리 수컷과 수컷으로 구성된 동성 커플이었다는 점입니다. 암컷이든 수컷이든 제 새끼처럼 살뜰하게 품에서 키우면 괜찮겠지요.

하지만, 홍학은 비둘기와 더불어서 새 중에서는 드물게 어미 젖을 먹고 자라는 새입니다. 어미의 모이주머니에서 흘러나오는 진한 자줏빛의 젖은 어린 새끼에게 아주 중요한 영양 공급원입니다. 색깔 때문에 홍학 새끼는 어미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죠. 양친이 모두 젖을 낼 수 없는 아빠라면 어린 새는 필시 영양결핍문제에 처해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 알은 나중에 애당초 부화할 수 없는 알로 판명이 나면서 그런 걱정은 기우가 됐습니다. 자칫 번식을 훼방놓는 천덕 꾸러기가 될뻔했던 수컷 커플들은 지금도 24시간 함께 붙어다니며 함께 잠자고 먹으며 애정을 과시합니다.

한 무리의 홍학들이 서울대공원 야외 방사장에서 한가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서울대공원

이들 커플 말고도 홍학 80마리 중에 수컷 동성커플과 암컷 동성 커플이 한 쌍씩 더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줏빛 깃털과 늘씬한 몸매와 우아한 걸음걸이로 늘 관람객을 몰고 다니는 이국적인 물새 홍학. 이들에게서 여느 동물들에게선 보기 어려운 다양한 성적(性的) 지향이 관측되기 시작한 것은 7년전입니다. 이 때 동물원 전시 동물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줘선 안된다는 취지로 각종 동물쇼가 줄줄이 폐지됐습니다.

조련사의 지휘를 받으며 관객들 앞에서 일대 행진을 펼치던 홍학쇼도 돌고래쇼와 함께 영영 막을 내렸습니다. 홍학들 입장에선 본능에 충실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동물원 운영진으로서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이 새의 습성에 대해서 더 심층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느 동물과는 다른 커플 생활이 포착된 겁니다. 홍학은 기본적으로 큰틀에선 무리를 이루지만, 주로 커플 단위로 생활합니다.

2013년 폐지된 서울대공원 홍학쇼. 동물들이 야생에 최대한 가까운 환경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폐지됐다. /조선일보DB

동물원에서는 홍학 다리에 링을 끼우고, 성을 감별하고, 번호를 부여합니다. 겉모습만으로는 암컷인지 수컷인지 쉽게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종의 명찰을 붙인 것이죠. 그래야 누구와 누가 짝꿍인지, 어떤 커플이 결별했고, 어떤 커플이 새로 맺어졌는지 관찰하면서, 생육 환경을 꾸미는데 참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암수만 커플을 맺는게 아니더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동성끼리 짝을 이루며 다니는 일부 홍학 커플들을 관찰하는 동물원에서는 한동안 이들의 관계가 ‘사랑’인지 ‘우정’인지 쉽게 단정하지 못했습니다. 짝은 암수가 짓는 것이고, 본질적인 목적은 번식이라는 통념의 벽도 컸을 테지요. 그러나 동물원 관계자들은 장시간 관찰기록을 통해 ‘사랑’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잠시라도 떨어져있지 못하고 함께 지내며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닭살커플이 보여줄 수 있는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죠. 흥미로운 점은 이 새들의 성적 취향이 ‘이성’, ‘동성’처럼 고정된게 아니라 시시때때로 바뀐다는 점입니다.

제임스 홍학 두 마리가 볼리비아의 한 습지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위키피디아

실례로 홍학의 동성애적 행동에 대한 연구와 보고가 처음 발표되던 2017년 관찰결과에 따르면 80마리 중 10마리가 수컷끼리의 동성 커플 다섯쌍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3년이 지난 지금은 수컷 커플 두 쌍에 암컷 커플 한 쌍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암컷 커플들의 행적도 흥미롭습니다. 홍학은 본디 한 배에 알 한 개만을 낳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암컷만으로 이뤄진 한 커플의 둥지는 알이 두 개였습니다. 이 암컷들이 한 둥지에서 동성 파트너로 동거하면서도 각자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해서 알을 낳아 벌어진 상황으로 추측됐습니다. 이 추측이 정확하다면, 홍학에게는 동성과 이성을 아우르는 양성애적 취향도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사랑을 나누니 젊고 팔팔할 것 같지만, 서울대공원의 홍학들의 나이는 지긋합니다. 4종류(큐바·칠레·유럽·꼬마) 80여마리가 살고 있는데, 특히 이중에는 1969년 창경원에 반입돼 환갑 나이에 이곳에서 살고 있는 초고령자들도 많습니다. 동물원 홍학이 83세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대공원 홍학들은 당분간 사육사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유롭게 파트너와 사랑을 나누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갈라파고스 섬에서 홍학 한 마리가 사뿐 사뿐 걷고 있다. 홍학의 부리는 물속 플랑크톤을 훑어먹을 수 있도록 아래로 꺾인 모습을 하고 있는것이 특징이다. /위키피디아

지난해와 작년 처음으로 부화한 큐바홍학이 성공적으로 부화해 어린새로 무럭무럭 자라나면서 홍학들의 순조로운 세대교체에도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동물원은 겨울철을 맞아 실내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홍학들의 커플 구성과 특성을 고려하면서 번식 및 부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CCTV를 통해 이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습니다.

동물, 특히 새들의 동성애는 야생은 물론 동물원에서도 간혹 일어나며 그 원인에 대해서 학계에서 연구가 이뤄진 적도 있습니다. 조류 전문가인 경희대 생물학과 유정칠 교수는 “야생인데도 정상적인 짝짓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동성간 짝짓기가 발현되는 경향이 확인됐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검은머리물떼새를 예로 들었습니다.

이 새는 전형적인 일부일처제로 배우자가 죽을 때까지 관계가 지속되는데, 짝을 짓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될 경우 드물게 동성간 교미도 시도된다는 것입니다. 펭귄도 동성간 커플생활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새로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일부 동물원들은 펭귄 동성 커플을 명물로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들을 위해 알을 입양시켜주기도 합니다.

4종류 80여마리의 서울대공원 홍학들은 봄철과 여름철에는 실외 방사장에서 무리지어 생활한다. /서울대공원

관람·전시의 목적으로 평생 사람이 만든 우리에 갇혀 살지만, 천적과 각종 자연재해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동물원 동물들은 야생에 사는 같은 종(種)보다 일반적으로 훨씬 오래 삽니다. 같은 처지이지만 평생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반려자가 있다는 것은, 정신건강을 유지해주는 장수 요인일 테지요. 고령자가 다수인 서울대공원 홍학들의 건강을 유지해주는 최고의 영양제도 결국은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특별한 누군가와 함께 하며, 유달리 힘든 이 시절을 씩씩하게 헤쳐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대공원 홍학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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