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스(fleece) 재킷에 코듀로이 치마로 활동적이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줬다. /그라미치

아웃도어(outdoor)는 문제적 패션의 한 이름이었다. 수년 전 등산복 열풍이 한국을 휩쓸었을 때, 가을이면 단풍보다 화려한 등산복의 물결이 전국의 산을 뒤덮었다. 등산을 비롯한 야외 스포츠에서 비롯된 아웃도어 패션은 요란하고 몰개성할 뿐 아니라 옷차림의 기본인 TPO(시간·장소·상황)를 무시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랬던 아웃도어가 새롭게 돌아오고 있다. 요란한 등산복을 모두가 아무 데서나 걸친다는 의미에서의 유행이 아니다. 아웃도어 스포츠의 느낌이 가미된 옷들이 세련된 일상복으로 주목받는 것이다.

◇울긋불긋 등산복 가고… 차분해진 디자인

이제 아웃도어는 일종의 캐주얼이다. 직장인 신종석(37)씨는 평소 아크테릭스와 스노우피크의 옷을 즐겨 입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입어 ‘이재용 빨간 패딩’으로도 화제가 됐던 아크테릭스는 캐나다 아웃도어 브랜드, 스노우피크는 일본의 캠핑용품 브랜드지만 일상복으로 찾는 마니아들도 많다. 신씨는 “주머니 여러 개 달린 셔츠처럼 재밌는 디테일(세부 요소) 때문에 좋아한다”면서 “요즘은 야외에서도 ‘감성 캠핑’처럼 적당히 여유를 즐기는 활동이 유행이라 캠핑이나 등산을 가도 너무 본격적인 아웃도어 의류는 어색하다”고 했다.

끈으로 조이는 모자, 큼직한 주머니 같은 등산용 방한복의 요소를 갖춘 재킷을 통 넓은 바지에 매치한 모습. 아웃도어 의류의 활동적 느낌이 남아 있지만 생뚱맞지는 않다. /그라미치

실제 최근 주목받는 아웃도어 스타일은 차분한 느낌이다. 여성복의 경우 등산용 파카나 본래 방한복으로 개발된 플리스(Fleece·양털처럼 보드라운 느낌의 직물) 재킷을 통 넓은 바지나 청바지 소재 치마와 함께 입는 식이다. 경쾌하고 활동적이면서도 엉뚱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능성보다는 분위기에 반응한다. 미국에서 암벽 등반용 바지를 만들며 출발한 브랜드 그라미치는 지금도 그 흔적을 옷에 남겨 놓고 있다. 한 손으로 풀 수 있는 벨트나 다리를 180도 가까이 벌려도 움직임이 편안한 봉제 방식 같은 것들이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디자인에 브랜드의 역사와 지향점을 남겨 놓는 것이다.

재활용 소재를 사용해 뒤집어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 패딩 조끼. /파타고니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새해 유행할 패션으로 소개하며 “지난해 계속된 코로나가 이런 흐름을 부채질했다”고 했다. 실내에서 운동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야외로 눈을 돌리면서 패션을 비롯한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가 왔다는 분석이다.

재생 소재를 사용한 파타고니아의 패딩 조끼. /파타고니아

◇정치적 올바름 강조하고… 협업도 활발

이런 흐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른바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층의 독특한 성향이 발견된다. 우선 소비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표현하는 ‘미닝 아웃’이다. 플리스 재킷의 원조 격으로 꼽히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유기농 재료와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며 ‘지속 가능한 패션’을 강조한다. 정치적 발언에도 적극적이어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했을 때 소셜미디어를 통해 규탄 메시지를 발표했다. ‘친환경과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로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것이다.

구찌가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와 협업해 선보인 컬렉션. /구찌

‘곰표 맥주’나 ‘미원 팝콘’ 같은 이종(異種)의 교배에 흥미를 느끼는 것도 젊은이들의 특징. 이에 따라 아웃도어와 고급 패션 브랜드의 협업도 활발하다. 구찌는 노스페이스의 1970년대 디자인에서 바탕을 둔 컬렉션을 최근 발표했다. 아크테릭스와 질 샌더도 손잡고 스키에서 영감을 얻은 의류를 올가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