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백마문화상을 받은 소설 ‘뿌리’의 작가 김민정씨가 다수의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한 남성이 자신의 소설을 도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설 ‘뿌리’의 본문 전체가 무단도용됐으며, 도용한 분이 2020년 다섯 개의 문학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것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구절이나 문단이 비슷한 표절의 수준을 넘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대로 투고한 명백한 ‘도용’이라고 했다.
이 남성은 ‘제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 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 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 남성은 일부 문학상에만 ‘꿈’으로 제목을 바꿔 제출했을 뿐, 대부분 공모전에는 제목까지 ‘뿌리’로 냈다.
김씨는 “몇 줄 문장의 유사성만으로도 표절 의혹이 불거지는 것이 문학”이라며 “문학은 작가의 사유가 글을 통해 서사를 가지며 총체적으로 녹아드는 장르”라고 했다. 이어 “저는 이번 일로 인해 문장도, 서사도 아닌 소설 전체를 빼앗기게 되었고, 제가 쌓아 올린 삶에서의 느낌과 사유를 모두 통째로 타인에게 빼앗겨 버렸다”며 “제가 도용당한 것은 활자 조각이 아닌 제 분신과도 같은 글이었기에, 저 스스로를 지키고자 이 글을 쓰게 됐다”고 했다.
그는 “도용은 창작자로서의 윤리와도 명확히 어긋나는 일”이라며 “소설을 통째로 도용한 이 일은 문학을 넘어 창작계 전반에 경종을 울릴 심각한 사안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타인의 창작물을 짓밟고 유린하는 이와 같은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라며 “투고자 개인의 윤리의식뿐만 아니라 문학상 운영에서의 윤리의식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제보를 해 주신 분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이 일을 끝까지 몰랐을 테고, 남의 작품으로 금전적 이득과 영예를 취하며 수상작품집까지 발간되는 이 기형적인 행태가 자정과 반성 없이 계속 자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일이 단순히 제 피해회복으로 마무리 되지 않기를 바란다. 창작계 전반에서 표절과 도용에 대한 윤리의식 바로 세우기가 반드시 뒤따르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씨의 소설을 도용한 남성은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에서 국문학이나 문예창작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소설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 또한 없지만 매일 밤 틈틈이 소설을 써내려가면서 스스로 문학적 갈증을 해소하며 큰 자긍심을 갖는다”고 했다.
김씨가 문제를 제기한 뒤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 남성이 소설 뿐 아니라 각종 사진·아이디어·독후감 공모전에도 타인의 작품을 도용해 출품·수상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 공모전 수상작 모음집에 실린 이 남성의 글을 보면 지방 일간지의 칼럼을 제목만 바꿔냈다. 또 다른 공모전에서는 타인의 사진과 함께 유행가 가사를 적어내거나 한 신문사의 기사를 그대로 써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