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캐나다 출신 미 팝스타 위켄드는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 지난 연말 MBC 가요대제전에서 국내 아이돌그룹 ‘더보이즈’와 ‘이달의 소녀’가 공연하는 영상을 올렸다. 위켄드는 현재 미 팝스타 중 최정상에 위치한 가수. 올해 수퍼볼(미 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 무대에도 오르는 그는 유명한 한류팬이다. 봉준호 감독을 좋아해 ‘기생충’뿐 아니라 ‘살인의 추억’ 등 과거 작품도 다 챙겨보고, ‘방탄소년단’을 응원하고 다른 아이돌 가수 무대도 챙겨본다.

그뿐만 아니다. 현재 미국 여성 힙합 가수 일인자인 카디비도 K컬처 마니아. 특히 한국식 핫도그(일명 콘도그), 김치, 붕어빵, 한국 컵라면 등 K푸드를 좋아한다. 그는 최근 “한국의 역사와 지리를 알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미국의 음악 매체 컨시퀀스 오브 사운드(Consequence of Sound)로부터 '올해의 밴드'(2020 Band of the Year)로 꼽혔다고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2020년 12월 10일 밝혔다. 이 매체는 "방탄소년단이 불확실성과 상실감으로 가득했던 한 해에 행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Consequence of Sound 공식 트위터

◇미국 스타들이 이끄는 한류 3.0시대

전 세계 한류팬 1억명 시대. 현재 이 열풍을 이끄는 건 문화 강국인 미국, 그중에서도 가장 유행에 민감한 톱스타와 젊은 10~20대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동호회 형태로 트위터·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나 스타가 일반 대중에게 더 많이 노출되도록 구름판 역할을 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연간 해외 한류 동호회 현황 조사 결과 개요’에 따르면, 2019년 9900만명이던 한류 동호회원은 지난해 1억400만명으로 약 540만명 증가했다. 동호회 수도 2019년 1799개에서 2020년 1835개로 36개 증가했다. 특히, 미국은 전체 한류 동호회원이 600만명에 달한다. 유럽 지역도 2019년 1504만명에서 2020년 1879만명으로 375만명 증가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30~40대 기혼 여성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현상이 ‘1차 한류’, 2010년대 중국·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K팝이 이끌었던 현상을 ‘2차 한류’라고 한다면 지금은 ‘3차 한류’. 즉, 한류 3.0 시대다.

콘텐츠는 드라마, 대중음악, 음식, 패션, 만화 등 다양하고, 팬층은 두껍다. 영화에서는 기생충이 아카데미 주요 4개 부문을 석권했고, 음악에서는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차지했다. 드라마는 ‘스위트홈’이 미국 넷플릭스 탑10에 들었다.

특히 문화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층이 K컬처를 좋아한다. 현재 미국에서 ‘K는 곧 힙(hip, 최신 유행)’. 넷플릭스가 만든 화제의 하이틴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극중 주인공도 한국계 미국인,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최근 발표한 신곡 ‘윌로’에서 상대역을 맡은 남자 배우도 한국인 댄서 이태옥이다.

◇'퍼스트 무버' 되는 K컬처

이들은 왜 한류에 빠져들까.

먼저, 신선함과 독창성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국어를 쓰지 않는 K팝 팬들은 노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연구한다. 전 세계 K팝 동호회는 ▲노래 가사를 자국어로 바꾸어 소개하는 ‘번역’ ▲뮤직비디오나 노래 가사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주는 ‘해석’ ▲한류 콘텐츠를 소비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을 취합하여 전달하는 ‘리액션’ ▲K팝 그룹의 의상이나 춤, 노래를 똑같이 보여주는 ‘커버댄스’ 등 네 가지 형태를 띤다.

/그래픽=박상훈

지난달 24일에는 BTS의 지민이 발표한 자작곡 ‘크리스마스 러브’에 나오는 가사 중 ‘소복소복’을 두고 적절한 영어 표현을 찾지 못해 아미(방탄소년단 팬) 번역계가 혼돈에 빠지기도 했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우리는 한국 대중가요를 들을 때 가사가 잘 들리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지만 해외 K팝 팬들은 더 열심히 공부해 듣기 때문에 가사 이해도가 높다”며 “이들은 K팝에서 시작해 한국어, 더 나아가 한국 문화로 그 관심도를 넓힌다”고 말했다.

이는 드라마, 영화도 마찬가지다. 미국 드라마 평론가들은 스위트홈에 대해 “뻔하고 식상하게 흘러가던 좀비, 크리처(괴물) 장르를 신선하게 바꾸었다”고 평가했다. 영화 ‘기생충’도 빈부에 따른 선악의 고정관념을 비틀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둘째는 기술이다. 이는 지난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사태로 더욱 빛을 발했다.

가수들의 공연이 취소된 대신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선보인 비대면 온라인 공연으로 더 많은 전 세계 팬들이 공연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세계 최초로 진행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 수퍼엠의 비대면 콘서트에서는 카메라 워킹과 실제 공간이 연동되는 AR 합성 기술(Live Sync Camera Walking)을 도입하고 공간은 실시간 3D 그래픽으로 보여줘 실제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이날 최초 공개된 신곡 ‘호랑이’ 무대는 AR로 구현된 호랑이가 갑자기 등장하기도 했다. 이날 공연을 본 관객은 7만5000명. 실제 공연의 7회 인원이다.

방탄소년단의 온라인 콘서트 ‘방방콘’은 107개 지역에서 75만6600여 명이 관람했다. 이는 5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 공연 15회와 비슷하다. 우운택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가상현실(VR) 등 한국의 앞선 기술이 신(新)한류의 날개를 달았다”고 말했다.

전 세계 집콕으로 넷플릭스 시청자가 늘어난 것은 K드라마의 성장을 도왔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사랑의 불시착’을 ‘반드시 봐야 할 국제적 시리즈 추천작’에 선정했다. ‘킹덤2’는 “‘워킹 데드'를 뛰어넘는다”는 극찬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속도와 트렌드에 대한 민감성, 그에 따른 완성도도 한류의 이유다. 한국인의 이런 장점은 반도체 등 국내 산업을 이끌었고, 세계적인 명품 회사들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해 왔는데, 이번에는 문화 전반을 성장시키는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장우 경북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반도체와 K팝 등 한류 산업은 서로 다른 특성에도 불구하고 혁신 과정에서 유사한 패턴을 나타낸다”며 “이들은 ‘신지식 창조’라는 2세대 혁신을 주도함으로써 한국 경제가 퍼스트 무버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日 한류 동호회원 2만2000명 줄었지만 동호회는 12개 늘어

정치가 문화에 영향을 준 것일까.초창기 한류를 이끌었던 중국·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이 2014년 조사를 시행한 후 처음으로 동호회 수가 감소했다. 중국의 한한령, 일본의 혐한류가 장기화하면서 한류의 전진 기지였던 아시아 지역의 성장이 위축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동호회 16개가 사라지고, 동호회원 1000만명이 감소했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한국전쟁 관련 발언, 연예계를 시끄럽게 한 버닝썬 사건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버닝썬 사건은 한류 스타들의 윤리적 문제를 이슈화시켜 인도네시아에서도 약 60만명의 회원들이 탈퇴했다.

일본에서도 약 2만2000명의 동호회원 수가 감소했다. 남미 지역에서 한류 확산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아르헨티나, 칠레도 지나친 상업화와 한국에 대한 호의를 악용한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반감이 생겨나 동호회원도 소폭 감소했다. 한류가 일찍 성장한 곳일수록, 성장세가 느려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영화와 드라마를 중심으로 조금씩 따뜻한 흐름도 감지되고 있다. 일본 넷플릭스에서는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더 킹: 영원의 군주’ 등의 드라마가 꾸준히 인기다. 특히 ‘이태원 클라쓰’가 일본 10~30대 남성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영화 ‘기생충’은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 책 ’82년생 김지영' ‘아몬드’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도 베스트셀러다. 그래서인지 일본 내 동호회 수는 도리어 12개 늘었다.

조규헌 상명대학교 한일문화콘텐츠학과 부교수는 “최근 일본에서 부는 한류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양상”이라며 “실질적인 한류의 확장과 지속성을 위해 일본 내 한류 현상의 질적인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