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성향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강준만(65)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4일 여권을 겨냥해 “당파적 이익에 눈이 멀어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을 진보라고 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이달 말 정년 퇴임하는 강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한국형 계급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부동산 문제의 처참한 실패로 서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세력이 다른 정치적 의제에서 진보를 내세운다 해도 그걸 어찌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
강 교수는 2013년 펴낸 저서 ‘증오 상업주의’에서 정치권은 각자 당파에 따라 편을 갈라 증오를 유발하며 ‘밥그릇 싸움’을 하는 ‘증오 상업주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강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 “‘증오 상업주의’는 정치에 너무 많은 몫이 걸려 있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선거철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순수한 지지를 하는 거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얼마 후에 보면 전리품으로 공직을 차지해 잘 나가는 모습을 수없이 봤을 것”이라며 “그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를 하는 거라고 주장하지만, 권력과 금력이 주어지는 봉사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라고 했다.
강 교수는 “정치는 전부는 아닐망정 상당 부분 밥그릇 싸움이다. 편을 갈라 밥그릇 싸움을 하는데, 밥그릇 때문에 싸운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니까 반대편을 증오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을 만들어 싸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이걸 인정하고 들어가야 국민 세금 무서운 줄을 알고, 위선·독선·오만과 반대편에 대한 과장된 비난과 증오를 줄일 수 있고, 정치 언어의 위선적 거품을 걷어내 실사구시 정치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강 교수는 작년 말 낸 ‘싸가지 없는 정치’라는 책에서는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과 일방주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그 이유로 집권 세력의 싸가지 없음을 꼽았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우리 정치권에서 내로남불이 나타나는 데 대해 ‘한국의 정치적 부족주의 현상’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 정치적 부족주의는 대부분 인종과 민족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강한 한국에선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며 “한국의 정치적 부족주의를 쉽고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내로남불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정치적 이념”이라고 했다.
그는 “겉으로 표방한 나름의 노선과 원칙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부족 또는 패거리의 이익”이라며 “그래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하면 로맨스이지만 반대편이 하면 불륜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정신 상태가 가능해진다. 우리가 21세기에 원시 시대의 부족 정치를 해야 하겠는가”라고 했다.
강 교수는 “일반 원칙엔 동의하는 사람이라도 그 원칙이 자기 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면 그 원칙을 거부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며 “예컨대, 내로남불을 원칙으로 지지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내로남불이 우리 편에게 유리하다면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이런 상황에선 무슨 말을 해도 말이 안 통한다”고 했다.
언론학자인 강 교수는 최근 언론과 기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는 “스스로 공적 기관을 자임하는 언론은 일반 기업과 비교해 이상적인 주장을 훨씬 더 많이 외쳐대는 바람에 언행 불일치로 인한 위선과 그에 대한 대중의 혐오에 있어 훨씬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언론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미화해 가능하지 않은 이상을 외쳐댐으로써 자승자박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사구시 차원에서 세속화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속된 말로, 더 폼 잡지 말고 뭐든지 탁 깨놓고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