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린 배우 윤정희(77)씨가 프랑스에서 방치된 채 생활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에는 윤씨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5)씨와 윤씨 형제자매 간 갈등이 작용했다. 치매라는 정신적 제약으로 일 처리 능력이 부족해진 윤씨를 대신해 법률행위를 할 성년 후견인을 누구로 지명할 것인지를 놓고 양측은 이미 프랑스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인 바 있다. 이 법정 다툼이 윤씨 형제자매 쪽의 패배로 결판나자 2라운드로 여론전에 돌입한 것이다.
지난 5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윤정희 방치설’을 게재한 사람은 윤정희씨의 형제자매 측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하루하루 스러져가는 영화배우 윤정희를 구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지금 윤씨는 남편과 별거 상태로 배우자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파리 외곽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홀로 외로이 알츠하이머와 당뇨와 투병 중에 있다”고 했다.
또 “백건우는 지난 2019년 4월 말, 갑자기 딸을 데리고 나타나, 자고 있던 윤정희를 강제로 깨워서 납치하다시피 끌고 갔다”거나 “윤정희는 현재 형제들과의 소통은 아주 어렵고 외부와 단절이 된 채 거의 독방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 “프랑스에 끌려가서는 대퇴부 골절로 입원도 하고 얼굴은 20년도 더 늙어 보였다”는 주장도 폈다.
이에 백씨 소속사 빈체로는 7일 반박문을 내고 “해당 내용은 거짓이며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백씨 측은 그러면서 2019년 5월 윤씨가 파리로 간 뒤 윤씨 형제자매 측과 후견인 선임 및 방식에 관해 법정 분쟁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작년 11월 파리고등법원의 판결로 형제자매 측이 최종 패소했다는 말도 전했다.
이 사안과 관련한 언론 보도와 인터뷰, 청원글 등을 종합하면 양측 갈등은 2019년 1월 윤정희씨 모친이 사망하면서 본격화됐다. 프랑스에 머무르던 윤씨는 모친상을 치르기 위해 잠시 귀국한 이후 당뇨, 알츠하이머 치료를 위해 병원을 통·입원 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 해 4월 말 남편 백씨가 딸과 함께 나타나 윤씨를 데리고 프랑스로 떠났다.
이에 반발한 윤씨 형제자매는 백씨를 상대로 프랑스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백씨가 아내 윤씨의 치매 발병 사실을 국내 언론에 공개한 것도 이 즈음이다. 당시 백씨는 “증상을 보인 건 4~5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라고 명확히 들은 건 3년쯤 됐다”고 말했다. 소송은 2020년 11월 파리고등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면서 백씨 측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연합뉴스가 인용한 프랑스 법원 결정문을 보면 파리고등법원은 이 소송과 관련해 “윤정희의 배우자 및 딸, 한국 가족과 관련해 성년후견인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윤정희의 한국 가족은 윤정희가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고, 금전적인 횡령이 의심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류를 살펴본 결과 배우자와 딸이 애정을 보이지 않고 금전적 횡령이 의심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면서 백씨와 딸의 후견인 지위 유지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이어 “윤정희는 배우자 및 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안전하고 친숙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요양시설에 입소하지 않고 매우 안락한 조건을 누리고 있다”고도 판시했다. 또 거주지 변경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관해선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면 심리적 불안정이 초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윤정희 형제, 자매들은 계속 통화를 하거나 방문을 하면서 배우라는 점을 각인시키고 영화 촬영 등에 대해 얘기하며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는 윤정희의 심적 불안을 초래할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도 했다.
결국 소송전에서 후견권 획득에 실패한 윤씨의 형제자매가 여론전을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백씨 측은 7일 의혹에 대해 해명하면서 “청원글의 내용과는 달리 주기적인 의사의 왕진 및 치료와 함께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으며, 게시글에 언급된 제한된 전화 및 방문 약속은 모두 법원의 판결 아래 결정된 내용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프랑스 소송에서 패소한 윤씨 여동생 측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금은 통화가 어렵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