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담은 집'을 펴낸 서울대 건축학과 서현 교수는 "개성을 드러내는 맞춤옷처럼 사는 이가 살고 싶은 인생을 드러내는 공간이 집"이라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맞춤옷을 입을 땐 기성복과는 다른 가치를 기대하게 되잖아요? 맞춤옷은 몸에 꼭 맞으면서 입는 사람의 분위기를 드러내죠.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보여주는 게 집 아닐까요.”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서울대 건축학과 서현 교수는 “어떤 집에는 기능적 조건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다”고 했다. 몇 평에 방이 몇 개인지도 중요하지만 집은 “사는 사람의 마음이 돌아가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난달 펴낸 저서 ‘내 마음을 담은 집’(효형출판)은 이런 생각을 담아 제목을 지었다. 서 교수는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1998) 이후 저서와 강연, 기고 등을 통해 건축을 쉽고 친숙하게 이야기해 왔다. 이번이 아홉 번째 책이다.

서현 교수가 설계한 주택 '문추헌'. 천장에서 벽으로 이어지는 천창을 통해 빛이 들어와 내부 공간을 풍성하게 채운다. /서현 교수

이번 책은 ‘마음이 돌아가도록’ 지어진 집 세 채 이야기다. 은퇴한 간호사의 시골집 ‘문추헌’은 예산 5000만원으로 시작한 16.5평 작은 집. 보통 이런 집은 콘크리트 벽 밖에 벽돌을 쌓아 고만고만한 농가 주택으로 완성되지만 이 집은 벽돌을 안에 쌓았다. 그 결과 건물 밖에는 노출된 콘크리트 벽에 담쟁이가 자라고, 내부는 벽지 대신 카페처럼 벽돌 벽을 쌓은 집이 됐다.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실내를 풍성하게 채운다.

서 교수가 고안한 반사판으로 무지갯빛‘빛의 향연’을 연출한‘담류헌’내부.

‘건원재’는 희귀 경차(輕車)를 수집하는 주인을 위한 집. 자동차 네 대를 위한 주차 공간을 1층을 둘러싸듯 배치하고 2층에는 중정(中庭)을 뒀다. 계절 따라 이동하는 태양의 빛이 중정 벽에 동그라미⋅하트 같은 무늬를 그린다. ‘담류헌’은 동네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모여드는 사랑방 같은 집이다. 학교에서 함께 귀가한 아이들이 모여 만화영화를 보고 퇴근 시간이면 어른들도 하나둘씩 들어와 함께 맥주를 마시는 집이다.

서현 교수가 설계한 충북 충주‘문추헌’. 빠듯한 예산으로 지은 16.7평짜리 집이지만 외장재인 벽돌을 실내에 쌓는 방식으로 평범한 농가 주택과 차별화했다. 콘크리트가 노출된 외벽에 담쟁이가 자란다. /서현 교수

이런 집을 짓기 위해 짓는 사람도 마음을 담는다. 서 교수는 마음을 담아 집 짓는 건축가를 의사에 비유했다. “환자가 병원에 가서 ‘저는 암이라서 이러저러한 약과 항암치료가 필요합니다’라고 할 거면 의사가 필요 없겠죠.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찾은 멋진 집 사진을 내밀며 ‘이렇게 지어주세요’ 한다면 환자가 처방을 내리는 꼴이 된다. 그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옥상에서 별을 보고 싶다”처럼 구체적인 요구를 이야기해야 집짓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중정(中庭)의 벽에 햇빛이 하트 무늬를 그린 '건원재'의 모습. /서현 교수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단독주택을 꿈꾸지만 집을 짓기는 쉽지 않다. 집을 짓고 싶으나 엄두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더니 “엄두를 내기 어렵다면 엄두를 내면 안 된다”고 했다. “집을 짓는 것은 기회비용이 매우 큰 결정이기 때문에 (단독주택에 살겠다는) 확실한 신념이 있어야 짓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한국에서 주거는 환금성의 의미도 갖고 있기 때문에 탈출 전략이 있어야 한다”면서 “탈출하지 않아도 된다면 (단독주택에) 사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을 담는 집이 꼭 단독주택이란 얘기는 아니다. 서 교수 역시 아파트에 산다. 그는 이 결정이 “가치관의 문제”라고 했다. “살면서 필요 이상 많이 소비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대상 가운데 하나가 화석연료입니다. 그래서 직장과 집이 대중교통으로 연결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좁은 땅에 모여 사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남에게 이 가치관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되도록 뚜벅이로 살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연구실이 있는 학교까지 501번 버스를 탈지, 지하철 2호선을 탈지 고민하며 돌아섰다. 채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