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맑고, 맑았다. ‘미스트롯2’ 초등부 ‘맏언니’ 이소원(13). 초미세 베이비 파우더를 얹어놓은 듯 뽀얀 유백색 피부는 소복소복 쌓인 겨울 눈꽃마냥 투명했다. “미스트롯2 출연 이후 변한 거요? 저 4㎏ 빠졌어요!”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반달 눈빛이 마중나와있다. 선한 얼굴선에 청초한 이미지. 경연 중 ‘올리비아 핫세’라는 애칭이 붙은 이유를 단번에 알 것 같았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2’ 마스터 예심에서 윤복희의 ‘여러분’을 호소력 짙은 국악 창법으로 소화한 이소원. 묵직하면서도 청아함을 오가는 그녀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어깨를 노랫말로 감싸 안았다. 화면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였지만 마치 곁에서 손을 잡아주는 듯했다. 초등부 주자였지만, 어른들의 아픔까지도 어루만질 노래의 품이 느껴졌다.
그는 최근 만난 자리에서 “노래엔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단단한 중저음의 말투가 야무지다. “할아버지가 오래 몸져 누워계셨거든요. 6개월 정도는 많이 아프셔서 거의 움직이지도 못하셨어요. 병원에서 종일 간호를 하시던 할머니가 녹음기로 제 노래를 들려 드렸는데, 할아버지께서 거기에 반응하며 눈도 깜빡이시며 웃음도 지어주셨대요.”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려드리자는 건 소원이의 생각이었다. 소원이의 소리를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셨던 할아버지였다. 오랜 투병끝에 지난해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노래에 대한 진정성이 더욱 강해졌다. “제 목소리에 잠시라도 편해지시는 듯한 모습을 보니 더욱 노래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때 취미로 민요를 배우다 판소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2018년 정읍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 초등부판소리 최우수상 등을 비롯해 지난해 균화지음 전국 국악경연대회 초등부금상을 받았다. 맑고 창창한 소리에 어느새 탄탄하고 안정감 있는 저음까지 더해졌다. 몸통 만한 붓으로 힘차게 글을 써내려가듯 거침없었다. 판소리를 하면서도, 트로트에도 눈을 떴다. 트로트는 할머니의 애창곡들이었다. 할아버지 빈자리에 외로워하는 할머니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 따라부르다보니 한둘씩 입에 익었다.
‘미스트롯2’ 공고를 보자마자 신청을 했다.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았기 때문에 저도 노래로 위로 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기왕에 도전할 거면 큰 판에, 그중에서도 가장 큰 판인 ‘미스트롯’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군인 아버지 근무지에 따라 학교를 옮겨다니며 적응해야 할 때마다 노래는 그녀의 친구가 돼줬다. “‘네 목소리엔 뭐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어요. 제가 극적이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노래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나훈아의 ‘어매’나 안예은의 ‘상사화’ ‘홍연’ 등을 꼽았다.
이소원이 무대에서 말한 대로 ‘여러분’이 끝난 뒤, 마스터 김희재는 “위로 주고픈 마음이 전달됐다”고 말했다. “정말 좋았죠. 제 목소리를 듣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면서 그렇게 좋은 말씀까지 해주시다니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또 김성주MC분께서 ‘저도 위로받은 사람 중 하나다’라고 말씀해주셨잖아요. 그 순간 ‘나는 (이걸로) 됐다’ 생각했어요. (웃음)” 설사 다음 무대에 못 올라갈 지라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줬다는 생각에 후회 없는 무대를 했다는 설명이었다. 괜히 쑥스러운지 이내 발그레해지는 두 볼이 분홍 장밋빛이다.
판소리든, 트로트든 장르에 상관없이 도전하고 싶단다. 감성을 움직이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래를 하는 게 목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미스트롯2’에서 이소원이 뽑은 최고의 무대는 영지의 ‘케 세라세라’다. 예상 진(眞)을 꼽아달라는 질문이었지만, 진을 떠나 마음속의 ‘원픽’은 영지의 무대였다고 말했다. 그 한 곡에 인생이 오롯이 담긴듯했다. 경연 중에 가장 친하게 대해줬던 ‘언니’ 역시 영지였다고. 선배 언니들의 뛰어난 곡 해석력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배울 수 있었던 미스트롯은 그 어떤 경험 못지않게 소중했다 말한다. 팀 미션에서 ‘하니하니’를 무대를 하며 둘도 없는 동생들을 만나 우정을 다진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큰 판’을 경험해 본 소원이의 소원이 무언가 물었다. 차분하고 담담히 ‘도’정도에서 머물던 소원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두 음계쯤 높아진다. “영웅 오빠랑 듀엣무대 해보고 싶어요. 그런 절절한 감성 지닌 분이랑 무대에 함께 설 수 있다면 정말 감격스러울 것 같아요.” 임영웅의 노래를 들으면서 남다른 감정 전달력에 반했다. “저렇게 잘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듣다가, 들으면 들을수록 영웅 오빠 노래가 가진 치유의 힘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이날 자리에 함께 있던 김수빈, 임서원, 김지율, 황승아 등 초등부 동료들이 입모아 “정말 멋질 것 같다”고 힘을 보탠다.
무대 위 ‘가수 이소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마냥 진지해 보였다가도, 이제 중학생이 되는 ‘학생 이소원’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콧소리를 장착한 ‘유쾌발랄 소원’이 눈 앞에 서있다. ‘미스트롯2’에 쟁쟁한 언니들 앞에서 자신있게 도전장을 내민 비결에 “(판소리로 다져진)기본기?”라며 크게 웃던 그였다. 조용한 한 방. 맏언니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다져진 유머 리더십이다. 대기실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미스트롯2′에 나오고 나니 확실히 달라진 게, 구글사이트에서 ‘이소원’ 제 이름을 치면 제 영상이 맨 위에 떠요. ‘여러분’ 노래부른 영상이요. 기분이요? ‘어, (노래) 좀 했는데!’ 하하.”
이소원 프로필
2018 제3회 오산전국국악경연대회 학생부 판소리 차상
2018 제27회 정읍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 초등부판소리 최우수상
2019 제8회 구리 전국코스모스가요제 최우수상
2020 제9회 경주 판소리명가 장월중선 명창대회 판소리초등부 준우수상
2020 제5회 균화지음 전국 국악경연대회 초등부금상
2020 kbs 노래가좋아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