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2월에 무슨 꽃을 보러 다닐까. 엄동설한에 무슨 야생화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2월에도 피는 야생화들이 적지 않다. 2월 중순까지는 주로 남쪽지방에 피지만 2월말이면 수도권 산에도 하나둘씩 야생화들이 핀다. 대체 2월엔 어떤 꽃들이 필까.
이 답을 얻기위해 지난해 2월 한달동안 야생화 동호인 모임인 ‘야사모’ 야생화 코너에 올라온 꽃들을 살펴보았다. 이 기간 ‘꽃쟁이’들이 가장 많이 올린 꽃은 20건을 올린 변산바람꽃이었다. 그 다음으로 노루귀(16건), 복수초 9건, 너도바람꽃 7건, 꿩의바람꽃과 현호색 3건, 매화 2건 등이었다. 지난해엔 신종 코로나 영향으로 올라온 꽃이 적긴 했지만 패턴은 예년과 별 차이가 없었다.
변산바람꽃은 노루귀, 복수초와 함께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야생화다. 해마다 2월 중순쯤 여수 향일암 근처엔 야생화 동호회 회원들이 몰린다. 변산바람꽃을 ‘알현’하기 위해서다. 이곳은 육지에선 가장 먼저 변산바람꽃이 피는 곳이다. 필자도 변산바람꽃을 보기위해 향일암까지 몇번이나 갔는지 모르겠다. 올해도 야사모 야생화 코너에 변산바람꽃이 벌써 4건 올라와 있다.
변산바람꽃은 연두색 암술, 연한 보라색 수술에다 꽃술을 빙 둘러싼 초록색 깔때기 모양의 기관 등 볼거리가 많은 꽃이다. 변산반도에서 처음 발견해 붙은 이름이지만 전국 곳곳에서 자란다. 산지의 숲 가장자리 잔석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수도권에서는 군포·안양에 있는 수리산에 변산바람꽃 군락지가 있다. 변산바람꽃 등 바람꽃 종류는 대개 이른 봄에 꽃을 피워 번식을 마치고 주변 나무들 잎이 나기 전에 광합성을 하는 생활사를 가졌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부지런한 식물인 셈이다.
⇒ 더 읽을거리 [김민철의 꽃이야기] 변산바람꽃 아씨가 오셨네
노루귀도 숲속에서 자라는 앙증맞은 꽃이다. 잎이 나기 전에 빠르면 2월부터 꽃줄기가 올라와 끝마다 작은 꽃이 한송이씩 핀다. 꽃색은 흰색, 분홍색, 보라색 등이다. 온통 낙옆만 보이는 2~3월 산속에서 화사한 노루귀를 만나면 산골에서 세련된 아가씨를 만난 듯 놀랍다. 귀여운 이름은 깔때기처럼 말려서 나오는 잎 모양이 노루의 귀 같다고 붙여진 것이다.
복수초는 눈을 녹이며 피는 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꽃소식을 전하는 꽃 중 하나다. 해마다 2월 초순쯤 언론에 복수초가 눈을 뚫고 핀 사진이 실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올해는 더 빠른 1월 25일 서울 홍릉수목원에 복수초가 피었다는 글과 사진이 실렸다.
복수초에서 ‘복수’는 복 복(福) 자에 목숨 수(壽) 자, 즉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이다. 그러나 복수가 앙갚음한다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니 이름을 ‘얼음새꽃’ 등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많다. 복수초보다 얼음새꽃이 눈을 녹이며 피는 꽃의 특징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다. 박완서 작가는 에세이 ‘꽃 출석부2’에서 샛노랗게 빛나는 복수초를 보고 “순간 (중학생 아들의) 교복 단추가 떨어져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깊은 산에서 자라는 야생화지만 최근엔 화단에서도 볼 수 있는 꽃이다.
너도바람꽃은 변산바람꽃과 엇비슷한 시기에 피는 꽃이다. 산지의 반그늘에서 자라는데, 이른 봄 5~10㎝ 높이의 꽃대가 나와 그 끝에 흰색 꽃이 한 송이씩 달린다. 꽃 크기는 2㎝ 정도. 꽃대가 연약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흔들린다. 변산바람꽃과 비슷하지만 꽃잎이 작은 막대기 모양의 노란색 꿀샘으로 변한 것 등이 다르다. 2월 중순쯤부터 4월 초까지, 천마산 등 서울 주변 산에서도 너도바람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꿩의바람꽃은 꽃 지름이 3~4㎝로 바람꽃 중에선 비교적 크다. 8~13개의 하얀 꽃잎(꽃받침잎)이 빙 둘러 달린 것이 시원시원한 인상을 주는 꽃이다. 역시 좋은 산에 가면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는 야생화다.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말고도 노란색 꽃술이 예쁜 만주바람꽃, 꽃대에 한 송이만 피는 홀아비바람꽃, 꽃이 노란 회리바람꽃 등이 봄에 피고, 8월쯤 설악산에서 피는 그냥 바람꽃까지 10여종의 바람꽃 종류가 국내에서 피고 있다.
현호색은 활짝 피면 종달새들이 군무하는 것 같은 꽃이다. 현호색의 속명(Corydalis)이 종달새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다. 산자락 개울가나 양지바른 언덕 등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현호색은 작은 연보라빛 꽃 모양이 독특하다. 꽃 길이는 2.5㎝ 정도인데, 옆으로 길게 뻗어 한쪽 끝은 입술처럼 벌어져 있고, 반대쪽 끝은 오므라져 있다. 현호색(玄胡索)이라는 이름은 약재 이름에서 온 것이다.
⇒ 관련 기사
[김민철의 꽃이야기] 초봄 멋쟁이, 노루귀·얼레지·처녀치마가 반갑다
◇조선일보는 매일 아침 재테크, 부동산, IT, 책, 영어 학습, 종교, 영화, 꽃, 중국, 군사 문제, 동물 등 16가지 주제에 대한 뉴스레터를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시거나, 조선닷컴으로 접속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