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선수 이재영·이다영의 학폭 사건 폭로가 나온 뒤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자필 사과문은 역풍을 맞았다. “사과를 피해자에게 하지 않고 이렇게 플레이하는 게 더 꼴 보기 싫다” “직접 글씨를 썼다는 걸 과시하며 용서를 구하니 화가 난다”···. 피해자도 그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여론은 더 나빠졌다. 또 다른 폭로가 터져 나왔다. 두 선수는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고 국가대표 자격도 박탈당했다.

유명한 사람은 불미스러운 사건을 저질렀을 때 SNS에 자필 사과문을 올리곤 한다. 개그맨 이휘재의 아내인 플로리스트 문정원씨는 지난달 층간 소음 문제로 비판받은 데 이어 ‘에버랜드 장난감 먹튀’ 사건이 들통나자 SNS에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100만 팔로어를 보유한 인플루언서 문씨는 SNS와 유튜브 활동을 접고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잘못을 할 수 있다. 사과는 그때 필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음주 운전 등의 반성문을 대필해주는 업체가 성업할 정도다. 전문가들이 이다영 선수의 사과문에서 문제점을 짚고 올바른 사과법을 정리했다. <그래픽>

◇피해자에게 구체적으로 사과하라

SNS는 사과 창구로 부적절하다. 사과는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게 원칙이다. 이다영 선수가 쓴 사과문은 피해자에게 한 사과라기보다 자기를 아껴준 팬들에게 한 사과로 읽힌다. 사과 대상자가 피해자인지 대중인지 명확히 구별해 써야 한다.

이다영은 사과문에 “학창 시절 같이 땀 흘려 운동한 동료들에게 어린 마음으로 힘든 기억과 상처를 갖도록 언행을 했다는 점 깊이 사죄드립니다”라고 썼다. 구체적으로 뭘 잘못했는지 밝혀야 하는데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이 사과문이 욕먹기 싫어서 쓴 글처럼 보이는 이유는 진정성이 실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거만한 사과는 모욕이나 다름없다.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한 후 사과하라

피해자는 가해자가 모르는 사이에 당하는 경우가 많다. 말로 때리든 몸으로 때리든 돈으로 때리든 부모 뒷배로 때리든 매한가지다. 철없던 시절에 어떤 권력을 휘두른 가해자는 나중에 “사과한다”고 보통 말하지만,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미안함이 그 안에 담겨 있어야 전달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한다면 이런 사과문이 나올 수 없다.

어렵게 말을 꺼낸 피해자 말고도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 피해 사실을 알지만 막지 못한 가족·친구도 고통을 받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과는 암 세포 도려내듯이 하지 말고 광범위하게, 더 깊고 넓게 해야 한다. 이 사과문은 피해자는 물론이고 국민 눈높이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마음을 얻지 못하고 분노를 부른 것이다.

◇이렇게 사과하면 ‘2차 가해’다

“피해자분들께서 양해해주신다면 직접 찾아뵈어 사과드리겠다”는 표현도 잘못됐다. 어떤 전제나 조건을 달면 안 된다. 흔히 쓰는 “용서를 구한다”는 문구도 피해야 한다. 용서할지 말지는 피해자가 판단할 일이다. 또 “미안해.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사과할게” “실수가 있었습니다”도 사과할 때 쓰지 말아야 할 표현으로 꼽힌다.

대중도 문제다. 제3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면 안 되듯이 가해자에게 사과를 강요해도 안 된다. 사회적 압력 때문에 마지못해 사과한다면 진정성이 담길 리 없고 제대로 사과할 기회를 잃고 만다. 피해자는 자기 고통과 마음을 가해자가 알아주길 원한다. 그런 미안함을 담지 않은 채 함부로 하는 사과는 ‘2차 가해’다.

상대방이 사과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통제할 수 없지만 사과의 질(質)은 통제할 수 있다. 평생 머리 안 숙이고 산 사람은 사과하기가 몹시 자존심 구기는 일이다. 두 선수는 머리를 숙였지만 피해자나 국민이 보기엔 여전히 뻣뻣해 보인다. 이번 사건은 금력이든 권력이든 주먹이든 어떤 힘을 가졌다면 조심해 써야 하는데 그러질 않아 터졌다. /박돈규 기자

※도움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 이대영 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정재승·김호 책 ‘쿨하게 사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