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연극 '파우스트 엔딩'은 배우 김성녀가 파우스트, 박완규가 악마 메피스토를 연기한다. /김연정 객원기자

명작이 대부분 그렇듯 완독한 사람은 드물다. 괴테가 쓴 ‘파우스트’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문장으로 기억된다. 연극으로 옮겨도 대사로 이야기를 전진시키기에는 덩치가 크고 난해하다. 메피스토(악마)가 클레이 사격을 하는 장면으로 열리는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 연출의 ‘파우스트’처럼 강렬한 이미지로 압축하는 경우가 많았다.

26일부터 서울 명동예술극장을 채우는 ‘파우스트 엔딩’(연출 조광화)은 크게 두 가지가 다르다. 파우스트 박사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고 결말을 바꿨다. 배우 김성녀는 “원작에서 파우스트는 신의 구원을 받지만 이번엔 죄를 짊어지고 지옥으로 간다”며 “일만 벌이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라고 했다. 메피스토를 연기하는 박완규는 “현실을 반영한 비극”이라고 거들었다. 지난 3일 국립극단에서 두 배우를 만났다.

배우 김성녀, 박완규가 2021년 2월 3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극 '파우스트 엔딩'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임기를 마친 김성녀 배우가 파우스트역, 박완규 배우가 악마 메피스토를 맡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김성녀(김)=실험적인 무대를 좋아해요. 그레첸과의 사랑, 파우스트의 광기 등 풀어야 할 장면이 있습니다. 지난해 봄에 공연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사태에다 제가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연기됐어요. 대본을 다시 봤으니 전화위복, 부러지길 잘했죠(웃음). 마당놀이에서 남성을 종종 맡았지만 ‘여성 파우스트 1호’라니 욕심이 나서 망하든 흥하든 하고 싶었어요.

박완규(박)=망하면 안 됩니다! 저희는 연습을 1년 가까이 한 셈이에요. 메피스토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신(神)에게 “꼰대 같은 말씀을! 노력해도 소용없다”며 파우스트와 목숨 건 내기를 합니다. 악마적이라기보다는 기괴하고 장난기가 많지요.

김=제목이 암시하듯 파우스트가 열정을 갖고 건설하려던 게 결국 폐허가 되고 종말을 불러옵니다. 신의 용서도 거부하고 “계약대로 이행하라” 합니다. 우리 사회에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많잖아요. 보면 뜨끔하겠지요.

박=스스로 지옥을 선택하는 게 원작과 가장 큰 차이예요. 저마다 삶을 한번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하는 연극입니다.

김=방황이요? 인생에서 방황한 적은 없어요. 성격도 강하고 두려움도 없고. 오직 작품 속에서만 방황해요. 어느 배역을 맡으면 어떤 날에는 희희낙락이다가 어떤 날엔 절망하고 푹 가라앉아요. 인물과 나 사이의 간극을 없애려는 방황을 숙명처럼 합니다. 그렇게 힘든 역할일수록 해내면 더 행복하고.

박=저는 배우로 20년인데 전반부 10년은 방황했어요. 연극 한다고 상경해 뭐라도 한번 해보고 내려가야 하잖아요. 양아치, 잡범, 거지 역할을 하며 10년쯤 버텼죠. 기다리니 기회가 왔습니다. 그때부터 연극이 재미있어지더라고요. ‘파우스트 엔딩’도 연출의 상상을 배우가 표현하면서 확신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가장 큰 재미는 관객과 부딪쳐 쩍쩍 소리가 나야 느낄 수 있어요.

김=잘하는 연극배우는 영화로 드라마로 가잖아요. 빼앗긴 느낌이 들다가 완규씨처럼 재능 있고 믿는 배우와 무대에 설 수 있어 고마워요. 상대 배우하고 안 맞으면 그게 지옥이에요.

박=배우가 가장 힘들어하는 게 혼자 드라이브(drive)하는 대목이에요. 독백도 아니고 혼자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긴 장면인데 선생님이 되게 잘하셔요. 물처럼 쑥 흘러가는 느낌을 받아요. 뒤에서 보면서 많이 배우죠. 파우스트가 방황할수록 메피스토의 계략이 잘 보일 테니 ‘김성녀의 방황’을 저도 응원합니다(웃음).

김=이 연극은 혼자 잘하면 망해요.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을 관객께는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국립극단이 명동에서 오랜만에 묵직한 연극을 올립니다. 서로 혐오하고 속이고 물어뜯는 요즘 세태와 맞아떨어지는 대목이 소름 끼치게 많아요. 어떤 반향이 나올지 저도 궁금합니다.

연극 '파우스트'. /국립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