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음식은 이상하다. 요리하며 하나씩 집어 먹는 게 제일 맛있다. 전은 자작자작 부칠 때 후후 불어먹고, 나물도 금방 무쳐 참기름 냄새가 진동할 때 젓가락을 집어야 한다.
명절 후 일주일. 차례 지내고 남은 음식은 늘 처치 곤란이다. 맛있게 활용하는 법은 없을까?
“남은 전으로는 전골을 끓이는 게 제일 맛있어요. 그렇지만 무작정 전을 넣고 끓이면 잡탕처럼 돼 버려요.”
김호윤 라이프(RIPE) 총괄 셰프가 추천하는 ‘모듬전 전골’은 무를 이용해 신선로처럼 만들기.
먼저, 손가락 크기로 무를 썰어 볶다가 무물이 나오면 팽이버섯을 넣고 함께 볶는다. 여기에 물 조금, 소금 약간 뿌리고 끓이다 육수를 붓고 전을 올린 후 중불에 한 번 더 끓이면 완성이다.
소고기 뭇국처럼 시원하고, 버섯전골처럼 진한 맛이다. 매운 걸 좋아하면 청양 고추를 썰어 넣으면 된다. 칼칼하니 술 마신 다음 날 먹으면 절로 해장이 될 것 같다.
“전이 맛있어야 전골이 맛있어요. 전에서 나온 육즙과 기름이 소고기·무 육수와 어우러지면서 진한 맛을 내거든요.”
김 셰프는 라이프 외에도 사랑방, 시모네타의 정원 등 3개 식당을 운영 중이다.
“잠은 4시간 정도 자요. 어머니가 진정한 ‘수퍼 우먼’이었어요. 저희는 삼대가 같이 살았는데 미용실을 운영하는 어머니는 새벽에 할머니, 할아버지 밥 차려드리고, 저와 누나 도시락 싸놓고 출근하셨다가, 저녁 9시에 퇴근해 남은 집안일을 하셨죠. 저희 남매 생일상도 직접 요리하셨어요.”
돼지고기를 두드려 만든 돈가스, 닭다리에 카레 가루를 묻힌 치킨, 빵 위에 비엔나소시지를 올린 피자 등, 어머니 음식에 환호하는 친구들을 보며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명절엔 온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었다. 김 셰프가 가장 좋아하는 명절 음식도 만두와 생선전.
“만두 빚는 어머니 옆에서 저도 같이 만들었어요. 떡국에는 꼭 만두 많이 넣어달라고 졸랐죠. 만두가 커 하나 이상은 먹을 수도 없으면서요.”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 공대에 진학했다. 강력계 형사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경찰이 되길 바랐다.
“아버지는 멋진 남자였지만 멋진 아버지가 되긴 어려웠어요. 자식 입장에서 아버지는 약속을 못 지키는 사람이었죠.”
대학 중퇴를 하고 조리학교에 입학했다. 그랜드힐튼호텔을 시작으로 스와니예 등을 거친 그가 가장 최근에 낸 식당이 ‘라이프’다. 한우를 이용한 16가지 고급 코스 요리.
“코스는 날마다 바뀌지만, 마지막은 늘 솥밥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밥을 먹어야 속이 든든하잖아요.”
그가 알려주는 명절 남은 갈비찜으로 솥밥 만들기. 먼저, 갈빗살을 발라 다진다. 30분 정도 불린 쌀로 솥이나 냄비에 밥을 짓는다. 그 위에 채를 썬 계란 지단, 다진 갈빗살, 송송 썬 쪽파를 뿌려주면 끝난다. 맛도 좋고, 보기도 예쁜, 명절 남은 음식의 화려한 부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