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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걸 밥벌이로 삼는 사람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경계해야 한다.

맨정신에 마감 시간에 맞춰 정해진 분량의 원고를 뽑아내는 건 정말 독한 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 ‘맹크’의 주인공인 ‘시민 케인’의 각본가 허먼 J 맹키위츠(게리 올드만)도 애주가다. 90일 이내에 완성해야 하는 원고. 매니저는 맹크의 알코올 의존 증상을 고치기 위해 술 대신 진정제를 갖다놓지만, 이는 그의 업무 속도를 늦출 뿐이다.

맹크는 매니저 몰래 스카치위스키 한 박스를 들여놓고서야 13일 안에 200장을 쓰는 괴력을 발휘하며 원고를 데드라인에 맞춰 마감한다. 이때 마시는 술은 스카치 위스키 ‘로스시(Rothesay)’ 12년 산이다.

1798년 다니엘 맥코노시가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역에 설립한 양조장에서 생산된 술. 영화 속 맹크는 남동생인 조셉과 대화를 나눌 때도, 사망한 동료의 죄책감에 시달릴 때도 이 술을 마시지만, 우리는 같이 그 술을 마시며 교감할 순 없다. 양조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주가인 그가 스카치위스키만 좋아할 리 없다.

그는 차를 타고 달리며 “빨리 마을에 도착해 다리 펴고 시원한 마티니 한잔하자고”, 혹은 “샤워하고 칵테일 마시고 세라를 보고 싶어”라며 칵테일 마티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우리에겐 007시리즈 제임스 본드의 술로 유명한, 진과 베르무트를 3대 1로 섞어 만든 것으로 ‘칵테일의 왕’이라고도 불린다.

그런 그가 술을 앞에 두고도 마시지 않는 자리도 있다. 가기 싫지만 억지로 가야 하는 그런 자리. 싫어하는 후보의 선거 당선 축하 자리다. 그는 테이블 위에 있는 샴페인 ‘모엣샹동 임페리얼’을 말 없어 끌어안기만 할 뿐 마시지 않고 나온다.

모엣 샹동은 1743년 프랑스 와인 상인이었던 클로드 모엣이 설립한 프랑스 샴페인 브랜드. 1748년 프랑스 왕실에 와인과 샴페인을 공급하며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그 중 ‘모엣 샹동 임페리얼’은 나폴레옹 1세가 태어난 지 100년 되던 해에 제조를 시작한 라인. 밝은 황금색에 신선한 과일향, 발랄하지만 섬세한 기포는 선거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술로 제격이었을 것이다.

맹크가 이렇게 술을 좋아하는 건 마시고 나면 글이 잘 써지기 때문이다.

“난 잠들기 전에 머리가 제일 잘 돌아. 매일 저녁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기절하듯 잠드는 건 이제 지겨워.”

잠들기 전 술을 한잔하며 어둠을 안주 삼아 글을 쓰는 것. 이게 맹크가 늘 훌륭한 글을 써 내는 비결이었다. 그는 술을 ‘보조장치’라고 부르며 애정을 드러내지만, 쉽게 따라 해서는 안 된다. 결국 맹크는 55세의 나이에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그는 죽기 전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갈수록 내가 만든 덫에 걸린 쥐 같네. 덫에 틈이라도 생길까 봐 자주 손보지. 내가 도망갈까 두렵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