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가장 의미 있는 시계라면…. 우리가 1997년에 선보인 시계 중 가장 처음 공개된 시계인 것 같습니다. 25년 전 플뢰리에에 설립한 L.U.C 무브먼트 매뉴팩처(이하 쇼파드 매뉴팩처)는 쇼파드만의 오롯한 진정성을 담아 ‘인하우스’(내부)에서 완성해 낸 작품이지요. 쇼파드 매뉴팩처는 우리에게 큰 도전이었고, 쇼파드 하우스가 진일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스위스 럭셔리 시계·주얼리 브랜드 쇼파드의 칼 프리드리히 슈펠레 회장./쇼파드 제공

스위스 럭셔리 시계·보석 브랜드 쇼파드(Chopard)의 칼 프리드리히 슈펠레(Karl-Friedrich Scheufele) 회장은 줌(zoom) 카메라를 통해 손목에 찬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말끔한 진회색 슈트 차림의 그는 그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가는 듯 여릿한 미소를 띠었다. 인생 시곗바늘은 계속 움직였는지 몰라도, 그의 생체 시계는 10년 전 서울을 찾았을 당시 인터뷰했을 때에 멈춘 듯 크게 다름없어 보였다.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살며,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고 결과물에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신(神)은 그에게 나이 드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은 것 같았다.

1860년 스위스에서 탄생한 쇼파드는 시계 산업에서 다소 특이한 위치를 점한다. 스와치 그룹과 리치몬트 그룹 등 대형 시계 그룹과 달리 독립적인 가족 경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 회사다.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철학을 제품에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점에서 쇼파드만의 기업가 정신을 읽을 수 있다. 그 중심축에 슈펠레 회장이 있다. 창립 초기부터 기술력과 창의성을 인정받아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궁에 납품할 정도로 명성을 떨쳤지만, 실질적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한 건 1963년 독일 출신 슈펠레 가문이 쇼파드를 인수하면서다. 탄탄한 자금력과 열정으로 뭉친 이들은 쇼파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했다.

슈펠레 회장은 100% 자체 제작 무브먼트(부품) 시스템을 갖춰야 더욱 진정성 있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각오로 1993년 스위스 쥐라 산맥의 플뢰리에에 쇼파드 매뉴팩처를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1996년 가을 첫선을 보인 ‘L.U.C 96.01-L’ 무브먼트다. 쇼파드의 유산을 기념하고자 창업자 루이 율리스 쇼파드의 이니셜 ‘L.U.C’를 딴 것이다. ‘아, 그 제품’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면, 당신은 증명된 시계 마니아다. 그렇다. 시계 애호가들이라면 뛰어난 성능에 미학적인 기능까지 더해져 매번 설레게 하고, 더욱 집착하게 되는 바로 그 이름이다.

슈펠레 회장은 최근 세계적인 시계 박람회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매뉴팩처 25주년을 기념해 ‘L.U.C’ 컬렉션에 또 한 번의 ‘혁신’을 선사했다. ‘L.U.C 콰트로 스피릿 25’. 쇼파드 매뉴팩처가 L.U.C 컬렉션 탄생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선보인 작품으로, 쇼파드 매뉴팩처가 선보이는 최초의 ‘점핑 아워’(‘시’를 보통의 시침으로 알려주는 대신 숫자창 등을 통해 알려주는 기능) 시계다. 그동안 수많은 특허권을 획득한 매뉴팩처답게 이번에도 또 한 번 진보했다. 직경 40mm로, L.U.C 컬렉션의 특징인 매끈한 라인은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미학에 심미적 쾌감을 준다. 18캐럿 윤리적 로즈 골드로 제작됐고, 혁신적이면서도 매우 정교한 L.U.C 98.06-L 무브먼트에 쇼파드 독점적 콰트로 기술을 바탕으로 4개의 배럴(메인 태엽을 담는 원통형 톱니바퀴)을 탑재해 최대 8일까지 파워리저브를 보장한다. 100피스 한정판.

①L.U.C 콰트로 스피릿 25 타임피스. 쇼파드 매뉴팩처 25주년을 기념해 탄생한 작품으로 쇼파드 매뉴팩처 최초의 점핑 아워 타임피스다. 18캐럿 윤리적 로즈골드 위에 만든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은 820°C 고온에서 여러 번 구워 탄생했다. 시간은 6시방향 시간창에 표시해 미닛 핸드가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시간의 변동을 확인하는데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했다. 최고의 품질 요소를 인증하는 제네바 실 획득했다. 100피스 한정. ②L.U.C 콰트로 스피릿 25 제작 과정. 쇼파드 매뉴팩처 인하우스에서 생산하는 모든 무브먼트로 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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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펠레 회장은 신제품 ‘L.U.C 콰트로 스피릿 25’을 보여주며 “특별한 애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전 이 제품을 ‘젠(Zen·정결하고 절제되며 고요한 느낌, 동양적인 여백의 미를 중요시하는 스타일) 시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매우 간결해 보이죠. 단 하나의 시곗바늘만 존재하면서,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다이얼로 돼 있는 복잡(complication) 시계입니다. 4개의 배럴로 된 특별한 무브먼트 덕분에 8일 이상 파워 리저브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아하고, 세련되며 정말 섬세하지 않습니까? 몇 년 전부터 이런 시계를 꿈꿔왔는데, 드디어 선보일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이 작품을 완성해냈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 흥미로운, 하지만 완벽히 다른 제품을 선보일 원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제품에 대해 아직은 비밀입니다. 하하.”

그가 말한 ‘우아하고’ ‘섬세하고’ ‘흥미로운’이라는 단어처럼 쇼파드는 단순히 복잡(컴플리케이션) 시계를 완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존 볼 수 있는 제품보다 무언가 진일보한 것을 내놓아야 만족한다. “복잡 시계를 만들 때, 우리는 고전적인 구조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항상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항상 흥미로운 기술적 옵션을 택하지요. 예를 들어 우리의 미닛 리피터(시와 분을 소리로 알려주는 기능) 시계를 보면, 언뜻 매우 고전적인 미닛 리피터 같지만 여기에 새로운 기술을 통합했습니다. 공(gong·일종의 ‘징’)을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제조했죠. 이건 완전히 다른 미닛 리피터입니다. 우리는 항상 달라지려 노력하면서, 더 나아지려 합니다. 달라지지 않으면, 차이를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매번 유용하면서도 흥미로운 혁신을 가져오려 합니다.” 플뢰리에 매뉴팩처 2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16년에 선보인 ‘L.U.C 풀 스트라이크’를 말하는 것이었다. 기존에 금속 공 대신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만든 세계 최초의 미닛 리피터 시계다. 시간을 알려줄 때, 금속이 아니어서 더욱 청아하면서도 선명한 종소리가 공명한다. 이 제품 역시 여러 특허를 통해 6년간의 기술 개발로 세상에 빛볼 수 있었다. 독립적인 운영을 하면서, 얕은 이윤보다는 장기적인 비전으로 멀리 내다보며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계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시계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기계식 시계는 전기 없이 작동하는 인류의 혁신적인 발명품이지요. 앞으로 모든 전자장치들이 폐기되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앞으로 100년, 200년 이후에도 작동할 것입니다. 거기에 윤리적인 채굴방식 등 사회 공헌할 수 있는 여러가지 의제들도 제품 제작을 하며 도전하고, 실현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착용한 알파인 이글 제품의 경우 재활용 강철(steel) 등을 이용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공정으로 제작된 친환경 제품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속가능성 분야에서 선두에 서려 노력하며, 우리의 족적을 개선하려 끊임없이 일합니다. 다양한 혁신적인 기술과 차별화된 디자인은 내가 이 업계에 계속 애정을 발휘하게 만들지요.”

(사진 왼쪽부터) 쇼파드 최초 미닛 리피터 워치 L.U.C 풀 스트라이크. 매 시간, 15분, 1분 간격으로 공(gong)을 울리는 특별한 사운드는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2017 GPGH(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대상인 ‘황금 바늘상’을 수상하였다. L.U.C QF 주빌리. 쇼파드 매뉴팩처 25년을 맞아 출시되었으며 크로노미터 및 플뢰리에 품질인증협회에서 인증받은 파인 워치메이킹의 새로운 역사이자 최초 L.U.C 스테인리스 스틸 워치. 25개 한정판. Alpine Eagle XL 크로노. 쇼파드 매뉴팩처에서 개발한 친환경 소재 루센트 스틸 A223을 적용하였으며 크로노미터 인증을 획득한 무브먼트, 케이스, 다이얼, 브레이슬릿에 이르기까지 독수리와 알프스의 힘에서 영감을 얻은 스포츠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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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인 이글은 슈펠레 회장과 그의 아들이 탄생시킨 스포츠 시계다. 아버지 슈펠레 회장이 탄생시킨 아카이브 모델을 아들 칼 프리츠 슈펠레가 현대화시켰다. 선대 명예회장의 지원아래 슈펠레 가문 3대가 일궈낸 역작인 것이다. 쇼파드가 하이엔드 시계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받는 데는 대를 이어 창의성을 계발시키며 스위스의 혼(魂)을 담는 여정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L.U.C나 알파인 이글 모두 남·녀 라인을 갖추고 있다. 쇼파드가 보석뿐만 아니라 시계 분야에서도 여성과 남성 모두 균형감 있게 인기를 끌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단 하나의 시계를 먼저 추천해달라’는 이야기에 “알파인 이글”을 꼽았다. “가장 다재다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우 스포티하지만 우아하기도 하죠. 정장과도 어울리지만, 알파인 이글을 착용한 뒤 수영을 하거나 스키를 타는데도 전혀 무리 없이 어울립니다.” 그의 또 다른 추천이 궁금해졌다. “만약 두 세 개를 사고 싶다면…. 아주 흥미로운 기계식 시계를 원한다면 L.U.C. QF Jubilee(주빌리) 제품을 추천합니다. 이번 매뉴팩처 25주년을 기념해 나온 25피스 한정판으로, 스테인리스 스틸로 돼 있습니다. 칼리테 플뢰리에(Qualite Fleurier· Fleurier Quality/스위스 독립 인증기관인 ‘플뢰리에 품질인증협회’의 인증을 받았다는 뜻) 제품이고요. 정말 아름답죠. 문제는 이미 다 팔렸다는 겁니다.”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정말 좋은 제품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는 말을 삼켰다. 그의 또박또박한 말투에선 경주마 같은 질풍의 채찍질보다는 마장마술을 우아하고 노련하게 일구는 아티스트의 붓놀림 같은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독일의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 스위스 장인정신의 정기를 담아 프랑스의 미학까지 곁들인 그의 성격은 망중한(忙中閑) 속에 드러났다. 미국의 일론 머스크 등 달탐사가 연일 화제가 되는 요즘, 만약 달에 가게 되면 무엇을 가져가겠느냐는 질문에서였다. 문페이즈(달의 주기에 따른 움직임을 알 수 있는 것) 시계 등 달은 시계와도 많은 연관이 있다. “당연히 아주 좋은 기계식 시계를 가져갈 겁니다. 달에서도 전혀 고장나거나 망가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아주 좋은 와인 한병을 들고 가겠습니다. 축하요? 물론이지요. 또, 달에서 제가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기념해야지요! 쇼파드는 매우 좋은 와인을 소유·유통하고 있고 또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생명역동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해 생산해내고 있기도 합니다. 자연을 보존하고 돕는 일은 또 역시 시계분야에 응용하기도 하고요. 어쨌든, 달에서 와인 한잔을 마시며 즐기는 동안에도 적어도 몇 시인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있겠죠. 쇼파드 시계와 함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