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 시각) 93회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이 수상소감을 밝히고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대본 읽은 세월이 오래됐으니 딱 하면 알죠. 진짜 얘긴가 아닌가. (영화 미나리 대본은) 굉장히 너무 순수하고 진지하고, 나는 진정성이란 단어 쓰기가 싫은데, 진짜 얘기였어요. 대단한 기교가 있어서 쓴 작품이 아니고 정말로 진심으로 얘기를 썼어요. 그게 늙은 나를 건드렸어요.”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74)은 25일(현지 시각)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에서 열린 한국 취재진과의 기자회견에서 대본을 보고 ‘진짜 이야기'여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미나리’를 연출한 리 아이삭 정(한국명 정이삭·43) 감독도 작품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윤여정은 “감독들은 다 잘났다. 잘난 척하는 사람들은 제가 싫어해 안 했을 수 있는데, 감독을 만났는데 요새 세상에 이런 애가 있나(라고 생각해) 출연한 것”이라고 했다. 또 “대본을 전해주는 아이의 안목이 아니라 그 아이를 믿었다”며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싫어하지만 미나리는 정말 진심으로 쓴 얘기였다”고 했다. 그는 “미나리가 독립영화라는 얘기를 듣고 제 돈으로 이코노미 좌석을 타고 미국까지 왔다”며 “영화를 만들 때는 이런 건 상상도 안했다”고 했다.

미나리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제가 잘한 게 아니라 대본을 잘 쓴 것”이라며 “그런 건 제가 아니라 평론가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93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EPA 연합뉴스

윤여정은 이날 수상 소감을 묻는 취재진에게 “제가 수상한다고 생각도 안했고 진심으로 그 여자(글렌 클로즈)가 타길 바랐다”며 “제 옆 친구들, 미나리 친구들이 ‘선생님이 받는다’고 해도 인생을 오래 살아 배반을 많이 당해봤기 때문에 안 믿었다”고 했다. 그는 “진짜로 제 이름이 불려지는데 제가 좀 영어를 못하지만 그것보다는 잘할 수 있었다”며 “엉망진창이 돼 창피하다”고 했다.

윤여정은 시상식에서도 “제가 어떻게 글렌 클로즈 대배우와 경쟁을 하겠나. 글렌 클로즈 배우의 훌륭한 연기를 너무 많이 봐왔다”고 찬사를 보냈었다.

윤여정은 오늘 이후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 “점쟁이가 아닌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며 “오스카상을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했다. 이어 “남한테 민폐끼치는 건 싫으니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참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연기를 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연극을 했던 출신도 아니고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니라 열심히 외워서 남한테 피해를 안 주는 게 시작이었다”며 “연기철학은 열등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그는 “정말 먹고살려고 연기를 한 것이기 때문에 절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며 “대본이 성경 같았기 때문에 많이 노력했다”고 했다.

윤여정은 “오스카상을 수상한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최고의 순간인 건 모르겠다”며 “최고가 아닌 최중(最中)이 돼 같이 살면 안되냐”고 했다. 그는 “너무 일등, 최고 그런 거 하는데 최고란 말이 참 싫다”고 밝혔다. 이어 “아카데미 벽이 트럼프 벽보다 높아 동양 사람에게는 너무 높은 벽이 됐다”면서도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기자회견 도중 “대통령도 아닌데 손 들 것도 없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윤여정은 “미국 사람도 우리랑 똑같더라”며 “계속 나더러 ‘브래드 피트를 본 게 어떻냐고 자꾸 묻더라”고 했다. 이어 “(브래드 피트가) 나의 퍼포먼스를 너무 존경하고 어떻다고 그러는데 늙어서 남의 말에 잘 안 넘어간다”고 농담을 던졌다. 미나리는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사 ‘플랜B’가 제작한 영화다.

윤여정은 “상을 타고 보답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면서도 “2002년 월드컵 때의 축구선수들이나 김연아처럼 운동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세상에 나서 처음 받는 스트레스라 즐겁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