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났는데, 잠깐 딴 생각을 하다 여왕이 방금 한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할까요. 나름 영어를 수십년동안 배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는 ‘pardon’ 입니다. 그런데 여왕님께 “Pardon?”이라고 한 단어로 짧게 말하면 완전 예의 없어 보일 것 같아 고민입니다. 좀 더 머리를 굴려 길게 말해 봅니다. “Beg pardon” 또는 주어, 동사, 목적어까지 다 넣어서 완전 문장으로 “May I beg your pardon?”이라고 말하면 아주 뿌듯할 것 같습니다.

◇ 세손빈 케이트 미들턴의 엄마

하지만 이건 착각입니다. 영국 왕실에서는 이럴 때 “What?”이나 “Sorry?”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pardon’이란 단어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 보면 그 사람이 어떤 계층 출신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볼 때도 대단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체면 구기지 않으려면 적절한 단어를 써야 하는데 ‘toilet’을 쓰면 안된다고 해요. 대신 ‘lavatory’나 ‘loo’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고 합니다.

이번 첫 공식 연설장에 파란 원피스 입고 나온 케이트 미들턴-오른쪽은 2010년 경마장에 등장한 케이트의 어머니

실제로 여왕 앞에서 이런 단어를 사용해 구설수에 오른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세손의 부인 케이트 미들턴 세손빈의 어머니입니다. BBC에 따르면 미들턴의 어머니는 양가 상견례 자리에서 ‘pardon’과 ‘toilet’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전설같은 이야기는 실제로 당시 영국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영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영국의 인류학자이자 ‘Watching the English’의 저자인 케이트 폭스는 이외에도 영국 왕실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향수는 ‘perfume’이라고 하지 않고 ‘scent’라고 한다고 해요. 거실을 말할 때는 ‘sitting room’이나 ‘drawing room’이라고 말하는데 만약 ‘lounge’라고 말했다간 당장 “신분이 낮은 사람이군”이란 평가를 받게 됩니다. 또 영국에서는 저녁을 ‘tea’라고도 말하는데, 상류층에선 이 단어 대신 ‘supper’나 ‘dinner’를 쓴다고 합니다. 영어도 같은 영어가 아니네요.

이렇게까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당연히 영어가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대세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영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나라는 영국과 미국, 호주 등을 비롯해 19국이고, 정부 기관 등에서 공식 언어로 쓰는 나라는 40여국에 달합니다. 그외에도 영어를 주요 언어로 사용하는 나라도 많습니다.

◇ 셰익스피어

지난 3월말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의 불륜 과거가 또 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존슨은 그 만큼 염문을 많이 뿌린 해외 정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인물입니다. 첫 결혼은 옥스퍼드 동창과 했는데 6년 후 한 변호사와 불륜이 드러나면서 이혼했지요. 이 변호사와 25년 정도 결혼 생활을 하면서 자녀 4명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외도로 부부는 불화가 잦았다고 합니다. 존슨이 런던 시장 시절 모델 출신의 미국 사업가 제니퍼 아큐리와 4년간 불륜 관계였다고 하고요. 지금은 역시 런던 시장 때 홍보 책임자로 썼던 캐리 시먼즈와 동거중입니다.

이번에 존슨의 과거가 다시 화제가 된 건 그 동안 불륜 의혹을 인정하지 않던 제니퍼 아큐리가 영국 일간 선데이미러 인터뷰에서 자신과 존슨이 혼외 정사를 즐겼다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두 사람의 관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인터뷰 내용 중 한 부분이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존슨이 부인과 살던 집에서 함께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은 뒤 성관계를 나누기도 했다.”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최고의 쾌락을 위해 두 사람이 호출한 사람이 셰익스피어였다니!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문호로 평가받는 셰익스피어가 왜 여기서 나올까요. 그만큼 셰익스피어는 영국인들의 삶 곳곳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다는 뜻일까요. 사실 영어를 말하면서 셰익스피어를 빼놓는다면, 팥 없는 찐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의 작가입니다. ‘햄릿’ 등 4대 비극을 비롯해 38편의 희곡과 시집, 소네트집을 냈습니다. 그는 영어를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인물입니다. 영어가 세계적인 언어로 인정받는데 그의 공이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1856년 설립된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과 함께 특별전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를 오는 29일부터 8월 15일까지 연다고 26일 밝혔다. 사진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초상화. /연합뉴스

한편, 엘리자베스 1세 통치기는 근대에 접어든 영국의 국력이 위용을 드러낸 때였습니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궤멸시킨 아르마다 해전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스페인은 780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레콩키스타(기독교 세력의 실지·失地 회복운동, 711~1492)를 완성하고, 레판토해전(1571)에서 오스만투르크 해군을 박살 내 무적함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막강 해군을 보유한 당시 유럽의 최강 대국이었죠. 그런 스페인을 엘리자베스 여왕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겁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는 군사력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과 경제, 철학 등이 함께 꽃을 피웠는데요. 문학·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윌리엄 캠던의 ‘브리타니아(1586)’, 프랜시스 베이컨의 ‘수상록(1597)’, 에드먼드 스펜서의 ‘목자의 달력(1579)’ 등 수 많은 산문과 역사서, 수필, 시집이 쏟아졌습니다. 1574년에는 최초의 극단이 설립되고, 2년 후에는 런던에 첫 극장이 문을 열기도 했습니다. 어떤 역사책은 “오늘날의 영어는 바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이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도 평가합니다. 당시를 대표하는 작가가 바로 셰익스피어입니다. 그는 언어의 마술사였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총 2만8829개의 단어가 사용됐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영어 단어가 1700여개나 등장한다고 하네요. 영국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 힘든 건 그들이 문학 작품,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단어와 문장, 표현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욕할 때도 문학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을 비판할 때 “아주 나쁘다(too bad)” “부패하고 일그러진 힐러리(crooked Hillary)”라고 했는데요, 존슨 영국 총리는 “머리는 금발로 염색한데다 부루퉁한 입술, 쏘아보는 차가운 눈빛, 정신병원의 새디스틱한 간호사”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재영 작가인 권석하씨가 쓴 책 ‘영국인 재발견2’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구절을 유효적절하게 대화에 사용하는 방식을 ‘셰익스피어식 모욕주기(Shakespeare Insult)’”라고 한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영국 문학과 영어… 이 언어의 발전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기여를 했을 겁니다. 그 중에서도 이 분의 존재감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감동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 영국의 세종대왕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임금을 꼽으라면 누구일까요. 사람마다 생각과 평가가 다르겠지만 아마도 세종대왕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종대왕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바로 훈민정음(1433), 즉 지금의 한글을 창제하신 일이겠지요.

영국에서 세종대왕 같은 업적을 남긴 분이 바로 알프레드 대왕입니다. 영국인들이 영어와 학문을 말할 때 꼭 거론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영국인들의 추앙을 받는 건 바이킹 세력으로부터 웨식스와 영국을 지키고, 해군을 창설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학문과 영어를 진흥시킨 업적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 지도자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어떤 지도자가 나라를 이끄느냐가 왜 중요한지 알프레드를 통해 다시 절감하게 됩니다.

알프레드는 ‘모든 잉들랜드의 자유민들이 영어를 읽을 수 있기를’ 바란 인물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국내외에서 훌륭한 학자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중심으로 학자들을 모으고 학문 부흥에 나선 것처럼, 알프레드도 궁정과 수도원에 지식인과 학자들을 초빙하고 배치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번역한 책 ‘목회적 돌봄’ 서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종종 내 마음에는 예전에 잉글랜드 전역에 어떤 학자들이 있었으며… 그 시기에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프레드의 첫 영입 대상은 머시아 왕국에 있는 우스터의 대주교 웨페르스였습니다. 나중에 그레고리우스의 ‘대화’를 영어로 번역한 인물입니다. 이어 체셔 지방의 은자였던 플레그문드를 영입해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했습니다. 웨일즈의 수도사였던 애서, 성베르텡 수도원의 학자 겸 수도사인 그림발드, 프랑크 왕국의 올드 색슨 존, 머시아의 또 다른 두명의 인재 애설스탠과 워울프… 알프레드의 인재 욕심에는 끝이 없었습니다.

알프레드 대왕

알프레드가 데려온 학자들은 자료를 모으고 번역하고 책을 썼습니다. 알프레드는 “모든 사람이 꼭 알아야 할 가장 필요한” 책들을 모두 영어로 번역하길 원했습니다. 당시 성서와 역사서 등 주요한 책들은 모두 라틴어로 적혀 있었습니다. 잉글랜드 사람들에 대한 최초의 역사서 ‘영국의 교회사’도 라틴어로 쓰여져 있었으니까요.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은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14세기 때 영국의 기독교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인 존 위클리프가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는데 교황은 이 죄를 물어 그의 사후에 시신을 파내어 뼈를 갈아 강에 뿌리도록 명령했습니다. 위크리프의 계승자인 얀 후스는 기둥에 매달려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500년 전에 이미 알프레드는 각종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나선 것이지요.

◇ 진면목

887년 11월 11일 토요일 ‘성 마틴의 날’. “앵글로·색슨 왕 알프레드가 신적인 영감으로 말미암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라틴어를) 한 번에 읽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애서가 쓴 ‘알프레드 왕의 생애’가 묘사한 이날 장면은 과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알프레드는 평소 학자들을 궁정으로 불러들여 자신 앞에서 큰 소리로 책을 읽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알프레드는 평소에도 “영어책을 큰 소리로 읽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시를 외우는 일 등을 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핸드북’이라고 불리는 공책에 적어두었다고 합니다.

알프레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직접 번역에 뛰어들었습니다. 자신이 초빙한 학자들로부터 라틴어를 배웠고, 라틴어로 된 책들을 직접 영어로 옮겼습니다. 전 세계 어느 왕이 이런 일을 했을까요. 그것도 지금부터 1200년도 더 옛날에 말이죠. 알프레드는 자신이 번역한 한 책의 서문에 “나는 내가 살아 있는 한 의미 있게 살다가, 생이 다한 후에는 후대에게 내가 위대한 일을 이루었다는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알프레드의 첫번째 번역 작품은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목회적 돌봄’이었고, 이어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독백’ 등을 번역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성서의 시들을 번역했습니다. 물론 이 같은 번역과 책 편찬에는 통치의 목적도 있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자신의 통치력이 영향을 미치기 위해선 자신의 뜻이 담긴 영어 법전이 필요했고, 이 법전을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가 잉글랜드의 국민들을 위해 영어 보급에 나선 것은 분명합니다. 일부 소수의 사람이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잉글랜드의 모든 국민들이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에게 지혜보다 더 선한 것은 없으며, 무지보다 더 악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알프레드가 번역한 ‘독백’ 중에서)

알프레드의 마지막 세번째 이야기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