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야마하콘서트살롱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윤한. 그는 최근 유니버설뮤직과 함께 3년간 연구한 수면 음악 첫 번째 앨범인 ‘슬리핑 사이언스: 더 슬립’을 선보였다. /박상훈 기자

3년 전 아내가 첫아이를 유산했다. “그때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자더라고요.” 수면 베개, 수면 매트리스 등 불면증 치료에 좋다는 건 다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서 가만히 피아노를 치는데 소파에 앉아 제 모습을 보고 있는 줄 알았던 아내가 어느덧 스르르 잠들어 있었어요.” ‘피아노 소리가 불면증을 없애는 데 좋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밤 피아노를 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아예 앨범을 만들었죠.” 팝 피아니스트 윤한(38)이 최근 수면을 위한 음반 ‘더 슬립(The Sleep)’을 낸 이유다.

버클리 음대 작곡과를 나온 윤한은 지금 경희대 교수로 있으면서 지난 3년간 불면증에 관한 의학 논문과 원서를 모조리 독파했다. 그러곤 그만의 가설을 세우고 곡을 썼다. 이 앨범은 현재 임상연구심의위원회(IRB) 승인을 완료했다. 이르면 이번 주부터 인하대 수면센터와 함께 희망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수면 음악'은 의외로 역사가 깊다. 18세기 바로크 작곡가 바흐는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카이저 링크 백작을 위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원래 이름은 ‘2단 건반 클라비어를 위한 여러 변주곡을 가진 아리아’)을 정성껏 만들었고, 독일 태생 현대음악 작곡가 막스 리히터는 2년 전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과 함께 잠 못 드는 현대인을 위한 8시간짜리 자장가 앨범 ‘슬립’을 선보였다. 아쉽게도 그 과학적 효과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의 한 공연장에서 만난 윤한은 자신이 세운 가설의 일부를 들려줬다. 먼저 음의 기본은 ‘도'가 아닌 튜닝의 기준인 ‘라'로 잡았다. “물의 파형에 관한 책을 보니, 음의 진동수가 432㎐일 때 파형이 가장 안정적이래요. 그래서 432㎐와 가까운 ‘라’음으로 잡았죠. 사람 몸은 물이 70%니까요.” 빠르기는 기본 박자인 4분음표가 1분 동안 60회, 그러니까 1초에 한 번 움직이는 속도로 했다. “보통 사람의 심박수는 60~100 사이인데 이게 수면 상태로 들어가면 20~30% 감소하니까 제법 여유가 있죠. 더 이상은 영업 비밀이에요, 하하!”

불면증을 앓는 지인들 의견도 많이 들었다. 야구선수 박병호와 이정후, 셰프 이재훈, 포토그래퍼 김보성, 소믈리에 한욱태 등이다. “수면 음악은 개인의 음악 성향과 반대로 가야 해요.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재즈를 만들어주면 도리어 음악에 집중해 버리죠.”

자려고 누웠는데 25분 동안 잠이 오지 않으면 보통 ‘불면증’이라 한다. 그는 자신의 앨범을 잠자리에 눕기 10분 전에 먼저 틀어놓는 게 좋다고 했다. “평소처럼 스트레칭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다가도 음악만 미리 10분 전에 틀어놓는 거죠. 볼륨은 사방이 조용하면 들리고, 생활 소음이 있으면 안 들리는 정도. 대신 이어폰은 금지예요. 귀에 이물감을 주거든요. 대개 자기 전 스마트폰을 충전하니까 그냥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켜놓기만 하면 돼요.”

그는 “이번 앨범에 모두 열 곡이 들어있으니 그중 하나는 성향에 맞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으면서도 혹시나 맞는 음악을 찾지 못할 사람들을 위해 “추가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다음 달에 10곡, 그다음 달에 10곡을 또 낸다. “어찌 보면 현재 앨범을 내는 건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이에요. 데이터가 모여 이론이 됐을 때 기존 수면 음악들과 차별성도 생기고요.” 그는 “뜬구름 잡는 건 싫다”고 했다. “불면증이 끝나면 공황장애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싶어요. 우린 살면서 너무 많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요. 그 고통을 음악으로 치료하고 싶어요. 말만 ‘힐링'이 아닌, 실제 병원에서 쓰이는 ‘치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