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사바나를 호령하는 백수의 왕 사자 세마리가 초원을 활보합니다. 그것도 검은 갈기를 휘날리는 다 자란 수컷들입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들에게 섣불리 덤벼들 동물은 없겠죠. 풀을 뜯어먹고 사는 초식동물이라면 더욱 그럴 겁니다. 반전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세 마리 사자가 바짝 긴장한 듯 그 자리에 얼어붙듯 서있습니다. 이들 앞으로 하마 한마리가 어슬렁어슬렁 지나갑니다. 이 사자들에게 말풍선을 단다면 아마 이런 대사가 들어가지 않을까요? “행님! 나오셨습니까!”

사바나를 활보하던 숫사자 무리가 하마의 등장에 일순간 긴장하며 얼어붙은 듯 멈춰서있다. /Roaring Earth Youtube

동물전문 유튜브 사이트인 Roaring Earth에 최근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영상은 사바나에서 하마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아프리카 사파리 전문가들, 동물 다큐멘터리 작가들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백 명 중 아흔 다섯명 이상 ‘하마’라고 답할 것입니다. 이 짐승이 무서운 이유는 ‘살육’과 ‘포식’이 일치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생태계를 이루는 많은 포식자들은 대개 먹기 위해 죽입니다. 먹어서 고기를 뜯어먹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이 생계형 살육에서 저만치 비껴가 있는 동물이 하마입니다.

하마가 사자에게 쫓겨 물웅덩이로 도망친 임팔라를 물어죽이고 있다. /Latest Sightseeings Youtube

유튜브 Latest Sightseeings에 올라온 동영상이 바로 하마의 영토보전욕구와 살육본능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가엾은 임팔라 한마리가 사자에게 쫓기다가 물웅덩이로 빠져들었습니다. 진창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임팔라를 사자가 아쉽게 입맛을 다시면서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새끼를 대동한 암컷으로 보이는 하마 한마리가 접근합니다. 인간 분류 기준상 영양도 하마도 모두 소의 무리니 먼 친척을 구해주러라도 온 것일까요? 이런 예측을 내팽기치는 소름끼치는 반전이 시작됩니다. 하마는 임팔라의 목덜미를 물어버립니다. 이후 임팔라의 몸뚱아리를 신경질적으로 패대기치는게 마치 악어의 필살기인 죽음의 회전(Death Roll)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도 악어는 죽인 다음 먹어치우기라도 하겠지만, 이 임팔라는 그저 하마의 눈엣가시라는 이유로 날벼락을 맞습니다. 진흙뻘에 파묻힌채 발을 버둥거리는 마지막 몸부림이 처량합니다.

하마는 하루일과의 대부분을 물속에서 보내는 사실상의 수생동물입니다. 악어·개구리처럼 눈과 코를 수면위에 나란히 내놓고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출산과 육아까지도 물속에서 하죠. 푸근하고 둥글둥글한 모습 때문에 친근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알려져있지만, 그 어떤 초식동물보다도 살육을 일삼습니다. 문제는 이 살육이 동종을 향할때가 적지 않다는 것이죠. 사실 하마는 동물의 왕국에서 첫손에 꼽히는 영아살해범입니다. 새끼 하마의 가장 무서운 천적은 악어도 사자도 아닌 바로 같은 무리의 수컷하마들입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전파하려는 짝짓기철 수컷의 본능으로 인해 결국 이미 육아중인 암컷을 노리고 애먼 새끼를 가차없이 물어죽이는 일이 제법 드물지 않게 일어납니다.

짝짓기철을 앞두고 수컷 하마가 암컷 하마가 키우던 새끼를 공격해 물어죽이는 장면. /Real Wild 유튜브

역시 동물 다큐멘터리 유튜브 채널인 리얼 와일드(Real Wild)에 최근 올라온 아래 동영상은 대사 한마디가 필요없는 잔혹극입니다. 수컷의 공격을 불길하게 예감한 암컷이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애지중지 키워오던 새끼가 끔찍하게 살해됩니다. 핏기를 잃고 가라앉은 새끼 옆을 한동안 떠나지못하던 암컷이 포기하고 떠나는 모습은 세익스피어의 작품 못지 않은 비극적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이런 하마의 살육 본능이 가능한 것은 이 짐승 자체가 환경에 최적화된 하나의 병기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정점에 송곳니가 있습니다. 아래턱에 나있는 송곳니는 75cm까지 자랍니다. 하마의 입안에 걸려들경우 심지어 사자라도 목숨은 부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마의 송곳니의 위력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한편 보실까요?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에 있는 하마가 사육사들이 던져주는 수박 한통을 한입에 부수고 있다. /WKRC TV 페이스북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여름철을 맞아 동물들에게 수박을 먹이는 모습인데, 사람 머리통만한 수박을 단 한 번에 으깨버리는 송곳니와 악력이 섬뜩함을 자아냅니다. 이런 하마는 그저 살육을 일삼는 포악한 짐승만은 아닙니다. 아프리카 하천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거든요. 하마의 살갖에 달라붙는 각종 수생식물들은 물고기의 소중한 양식입니다. 그런 물고기들로 배를 채우기 위해 물새들이 날아들고요. 그 물새들은 악어의 밥이 됩니다. 이 악어가 배출하는 배설물은 하마의 주식인 물풀을 키워내는 핵심 자양분이 됩니다. 만화영화 라이온킹에서 생명순환의 섭리를 보여주는 철학적 단어로 자주 등장하는 ‘생명의 바퀴(Circle of Life)’를 오늘도 하마의 육중한 네 발은 굴려가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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