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들의 모습은 흡사 분노한 킹콩같았습니다. 뒷발을 딛고 일어나 앞가슴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상대방을 향해 포효하며 기선 제압에 나섰습니다. 상대편 침팬지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고릴라의 분노를 비웃듯 입술과 이빨을 환히 드러내며 귀기 어린 비명으로 고릴라의 포효에 맞받았습니다. 그 모습이 혹성탈출에 나오는 침략 외계인들과 빼닮았습니다. 얼마 전 서아프리카 가봉의 로앙고 국립공원의 밀림에서 맞붙은 고릴라 침팬지 대전(對戰) 직전의 상황입니다.

미국 루이지내아주의 한 동물원에서 사육중인 침팬지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경계하는 표정을 나타내고 있다. /Alamy

이윽고 두 유인원 집단이 맞붙었습니다. 숫자로는 밀리지만 덩치와 파워면에서 월등한 고릴라가 결국 이길 것으로 예상됐지만, 상황은 전혀 딴판으로 전개됐습니다. 침팬지들이 특유의 협업 공격으로 고릴라 진영을 휘저었습니다. 푸르스름한 등을 가진 수컷 대장 실버백과 암컷, 그리고 어린 새끼들로 구성된 고릴라 무리들은 즉시 방어 태세로 전환하고 퇴로를 찾았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침팬지들은 계획이나 한 듯 전후좌우로 고릴라 진영의 동선을 휘저었고, 마침내 새끼들을 성체들과 갈라치는데 성공했습니다. 부모의 손을 놓아버린 어린 고릴라들은 침팬지의 노획물이 돼 짧은 생을 마감했고 그날 침팬지의 저녁밥상에 올랐습니다. 최근 인간의 눈에 처음으로 기록된 고릴라와 침팬지의 전투 기록입니다.

독일 오스나브뤼크대학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공동 연구진이 이 혈투를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할만큼 자연과학자들에게 충격적인 발견이었습니다. 아시는대로 고릴라와 침팬지가 속한 유인원은 인간과 그저 아주 조금의 한끝만 다를 뿐인 가장 진화한 원숭이들입니다. 유인원 4종류 중 오랑우탄과 긴팔원숭이는 아시아에 살고 있고, 고릴라와 침팬지는 아프리카에 터잡고 있습니다. 사바나가 아닌 깊은 밀림에 주로 사는 두 아프리카 유인원은 서식지의 상당부분이 겹치기도 하죠. 그럼에도 지금껏 두 종류가 충돌하는 경우는 목격된 적이 없었습니다. 간혹 상호교감을 이루더라도 가볍게 장난을 치는 정도였을 뿐 주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양상이었습니다. 그건 마치 인류의 두 종이 서로 금도를 지키면서 각자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죠. 그래서 인간의 눈으로 처음 공식 목격된, 게다가 일종의 카니벌리즘(동족포식)까지 수반된 이번 싸움을 두고 여러가지 해석이 분분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불편해하실 수 있는 점을 감안해 이 사진은 절반으로 잘라 편집했다. 이 침팬지가 물고 있는 것은 콜로부스 원숭이의 살가죽이고, 그 아래 머리와 얼굴이 고스란히 붙어있다. 침팬지가 동족이라고 할 수 있는 콜로부스 원숭이를 타깃으로 주기적으로 사냥하는 것은 열매 등으로 보충할 수 없는 영양분 섭취를 위해서라고 알려져있다. /Kibale Chimpanzee Project 트위터

기후 변화로 인한 서식 환경 변화와 이에 따른 먹이 감소 등으로 오랫동안 지켜진 평화적 공존의 틀이 무너진게 아닌가 하는 분석도 나왔고요. 하지만, 한가지 명확한 것은 이번 공격을 통해서 유인원인 동시에 포악한 살육자인 침팬지의 본능이 다시금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뒷발보다 훨씬 기다란 앞발(손)로 성큼성큼 기어다니는 침팬지는 주로 영화나 만화 등을 통해서 인간의 충직한 동반자나 우스꽝스러운 파트너 등으로 이미지가 소비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유인원 4인방 중 그 어느 종류보다도 치밀하고 섬뜩한 사냥실력을 뽑냅니다.

이들이 피와 살에 탐닉하는 맹수로 본색을 보일 때는 다름 아닌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를 사냥해서 잡아먹을 때입니다. 침팬지의 주식은 무엇일까요? 코코넛 등 나무열매를 먹기도 하고, 나뭇가지 등 도구들을 활용해 흰개미를 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즐기는 식사 메뉴중 하나는 바로 아프리카 밀림의 우듬지에 터잡고 사는 콜로부스 원숭이입니다. 다음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넷지오 다큐 동영상을 보면 침팬지가 얼마나 뛰어난 사냥꾼인지, 그리고 얼마나 냉혹한 포식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나무 위를 바라보며 일군의 원숭이떼들을 보며 입맛을 다시기 시작한 침팬지들은 토끼몰이하듯 원숭이 잡기에 나섭니다. 작전은 땅에서 시작됩니다. 거친 발걸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기선을 제압해 나무타기 선수인 원숭이들을 몰아갑니다. 겁을 바짝 먹은 원숭이들은 어떻게든 침팬지의 세력권을 빠져나가기 위해 능숙하게 가지를 바꿔타면서 동선을 만들어보이지만, 문제는 침팬지 역시 나무타기 선수라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는 바로 존재감입니다. 침팬지들은 조용한 습격자가 아닙니다.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고 자신들의 존재감을 폭발시키며 가엾은 원숭이들을 정신적 그로키 상태로 몰고갑니다.

그렇게 해서 당황해 스텝을 잃고 나무에서 주춤해 땅으로 떨어지는 원숭이를 거침없이 낚아채 덮칩니다. 그리고 피의 향연이 시작됩니다. 이들이 원숭이의 사지를 찢어먹는 모습은 어마어마한 턱힘을 자랑하는 하이에나나 리카온의 포식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암컷 수컷 새끼들 할 것없이 괴성을 지르면서 뼈와 근육과 살점을 먹어치웁니다. 이들의 식사를 잔혹하다고 비난할 일은 아닙디다. 인간이 육식과 채식을 골고루 하면서 영양분을 챙기는 것처럼 이들도 주기적으로 고기로 영양분을 보충해야 할테니까요.

침팬지 한마리가 사냥한 먹잇감에 살가죽을 뜯어내고 있다. 침팬지는 유인원 중에 가장 고기를 즐겨먹고 집단 사냥으로 먹잇감을 잡는다. /남가주대 제인구달센터 홈페이지(Jane Goodall Research Center)

침팬지의 원숭이 포식 연구는 영장류 행동학에서는 제법 비중있게 진행돼왔습니다. 그러다보니 흥미롭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한 곁가지 결과들도 나왔습니다. 2009년에는 막스플랑크 진화생물학 연구소에서 아주 눈에띄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수컷 침팬지들은 파트너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고기로 암컷을 유혹한다는 내용입니다. 원숭이의 살점이 관계를 맺기 위한 비용, 혹은 대가가 되는 셈입니다. 이는 사냥 솜씨가 뛰어난 수컷일수록 짝짓기 전쟁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구축한다는 추정을 가능케 합니다.

최근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애리조나 주립대 이언 길비 박사 연구팀의 다소 섬뜩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단순 포식자가 아닌 영양의 가치를 아는 미식가라는 것이죠. 침팬지가 원숭이를 사냥하면 무조건 고기와 살점부터 맛보는게 아니라 영양소가 풍부한 부위부터 골라간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린 원숭이를 사냥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뻗는 부위는 뇌라는 것입니다. 각종 영양성분의 총집합체거든요. 하지만 성체 원숭이여서 두개골이 단단해 뇌를 빼먹기 쉽지 않을 경우 대신 노리는 것은 간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생활이 어떤 면에서는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육식을 할 때 부위별 영양과 맛을 따져먹는 인간의 식습관이랑 그렇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