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지난 17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22일(현지 시각) 영국 인기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지금까지 최고 순위는 지난해 공개된 ‘스위트홈’의 3위였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홍콩·베트남 등 아시아와 사우디 아라비아 등 중동권은 1위,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권에서는 2위다. 넷플릭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이 집계한 글로벌 드라마 순위도 2위, 이 역시 한국 드라마로서는 최고 순위다. 비결은 무엇일까.
(1)데스게임 장르의 신선함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빚더미에 올라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절박한 이들이 총 456억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 걸고 벌이는 ‘데스(생존) 게임’이다. ‘데스 게임’이란 사람 목숨을 걸고 벌이는 게임을 극화한 장르로, 출판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1996), 영화 ‘배틀로얄’(2000) 등이 대표적이다.
영미권에서는 이런 ‘데스게임’ 장르가 신선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지 포브스는 “특이하고 폭력적이고 보기에 불편한 어드벤처로서 그런 톤의 내용들이 맘에 든다면 (나는 맘에 든다) 이 시리즈를 적극 강추하겠다”고 평했다. 미국 비평사이트인 로튼토마토 지수는 100%, IMDB도 8.3점(10점 만점)에 달한다.
그러나 일본발(發) ‘데스게임’에 익숙한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나뉜다. 일본 만화 ‘라이어 게임’, ‘카이지’와 드라마 ‘아리스 인 보더랜드’,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 등을 짜깁기한 것 같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진감 있게 몰아쳐야 하는데,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려 지루하다는 혹평도 많다.
(2)CG 최소화... 화려한 세트
B급 감성의 데스게임이 충무로 베테랑 제작진과 만나 고급스러운 대중화를 꾀한 것도 인기 요인이다.
드라마가 처음인 황동혁 감독은 전작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로 단련된 연출력으로 데스게임에 서사를 차곡차곡 쌓는다. 여기에 ‘남한산성’의 채경선 미술감독, ‘기생충’의 정재일 음악감독, ‘반도’의 이형덕 촬영감독 등이 합류했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을 최대한 줄이고 실제 크기로 지은 원색적이고 화려한 세트장이 시선을 빼앗는다. 연기하는 배우뿐 아니라 보는 관객까지도 게임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1980년대 국어교과서에 등장하는 ‘영희’를 본뜬 거대한 로봇, 초대형 마트의 상품 거치대 같은 참가자들의 침대, 노랑과 핑크 등 동화적인 색감은 시청자의 긴장을 최고조로 이끈다. 황 감독은 “그 어떤 곳에도 없는 비주얼을 구현하고 싶었다”며 “어릴 때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처럼 세트를 지었다. 음악 역시 1970~80년대 듣던 음악들을 많이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런 귀여운 무대에서 살육이 벌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동심 파괴 드라마로 불러도 큰 이견이 없을 듯하다.
(3)연기는 호불호 갈려
벼랑 끝까지 몰렸다가 게임에 참가하게 된 주인공을 이정재(기훈)가 연기한다. 유머러스하면서도 현실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와 대결하는 어릴 적 동네 동생 박해수(상우)는 선과 악의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 황 감독은 “두 사람이 하나의 뿌리와 추억을 공유한 이란성쌍둥이 같은 모습이길 원했다”고 말했다.
조연들의 서사와 연기가 평면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악역의 허성태(덕수)는 전형적인 조폭, 아누팜트리파티(알리)도 많이 보던 외국인 노동자역이다. 다른 긴장감을 넣어줬어야 할 김주령(미녀)의 연기도 캐릭터와 좀 더 밀착했어야 한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4)한류로 인한 K드라마 호기심
공개 4일 만에 미국 1위에 오른 힘은 한류의 영향도 제시된다.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BTS의 빌보드 석권 등 ‘K대중문화’에 대한 영미권 시청자들의 신뢰가 이제는 시작부터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 내 정서는 지극히 한국적이다. 한 동네에서 같이 자란 이웃 간의 정, 탈북 남매의 우애, 사고뭉치 나이든 아들을 먹여 살리는 노모, 어느 부분에서는 “이래도 안 울래?”라며 한국식 신파를 마음껏 펼친다.
그럼에도 영미권에서 이 드라마가 1위에 오른 바탕에는 K드라마에 대한 최근의 호기심 덕분이라는 것이다. 좀비드라마 ‘킹덤’, 하이틴물인 ‘인간수업’, 괴수물인 ‘스위트홈’ 등 새 작품이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순위는 조금씩 올라갔다.
(5)능력주의에 대한 비판
이 드라마의 밑바닥에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다.
이들이 모인 게임의 무대에서 참가자 456명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규칙으로 경쟁한다. 얼핏 ‘평등’과 ‘공정’의 세계다. 하지만 결과는 과연 그러한가. 각자의 능력만으로 상금을 딸 수 있다고 주최자는 강변하지만, 마지막까지 드라마를 보고 나면 씁쓸한 헛기침이 나올 수밖에 없다. 황 감독은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이들은 왜 이렇게 경쟁해야 했는가, 우리는 또 매일 이렇게 치열하게 경쟁을 하며 살아가는가, 과연 이 경쟁은 어디서부터 시작됐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