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비(非)영어권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가 현재까지 선보인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27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열린 ‘코드 콘퍼런스 2021′에 참석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 책임자(CEO)가 한 말이다. 현재 ‘오징어 게임’은 미국·영국 등 76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08년 황동혁 감독이 직접 기획해 각본까지 쓴 작품이다. 28일 그에게 ‘오징어 게임’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들을 물었다.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기훈(이정재) 머리는 왜 마지막에 빨갛게 됐나?
“난 이 작품을 쓰고 찍으면서 한동안 기훈으로 살았다. 작품을 다 찍어갈 무렵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남이 죽고 나서 기훈은 자기 자신을 수습하려고 정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데, 과연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경기 전의 자신으로? 내가 기훈이라면 미용실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할까. 평소 기훈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을 할 것 같다. 기훈이 전과 다른 기훈이기에.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미친 짓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에서 빨간머리를 했다. 이건 기훈의 분노 같은 것이다.”
-황준호(위하준)는 죽었나?
“비밀이다.(웃음)”
-456명이 참가한 총상금 456억원에 대한 의미는?
“처음 내가 10년 전에 이 각본을 썼을 때는 1000명이 참가해 100억원을 두고 경쟁하는 거였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니 100억원이 작은 돈이 돼 상금을 올렸다. 역대 로또 당첨금 중 가장 큰 금액을 찾아보니 초창기 400억 받은 분이 가장 크더라. 그것보다 조금 더 올렸다. 그리고 한 명당 1억원 정도로 몸값을 책정했다. 누군가의 해석을 보니 1과 10의 중간이라는 분석이 나오던데, 해석해준 분의 창의성이 돋보인다. (웃음)”
-극 초반 딱지 고르는 색깔에 따라 참가자와 진행요원이 갈린다는 분석도 있다.
“다양한 해석들을 해주시는데, 저보다 더 창의적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있다. 모집책으로 나온 공유 씨는 제 머릿속에서는 진행요원을 거친 사람, 그래서 신임을 얻어 밖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딱지 색은 심플하게 옛날 우리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에서 시작됐다.”
-놀이 구성은 어떻게 했나.
“첫 게임은 무조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시작하겠다고 생각했다. 쇼킹한 대학살, 집단 게임으로 수백명이 모여서 할 때 가장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백명이 서서 하면 군무처럼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도 무조건 ‘오징어 게임’으로 생각했다. 게임의 룰을 따른다기보다는 그 도형 안에서 벌어지는 검투사들의 대결을 상상했다. 오징어 게임을 링처럼 사용한다. 내가 어릴 때 했던 게임 중 가장 격렬한 것이라, 이걸 목숨 걸고 하는 것에 대한 처절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각 게임의 의미는?
“개천을 건널 때 어떤 돌을 밟으면 물에 빠진다. 거기서 징검다리 게임의 영감을 얻었다. 이 게임은 앞사람이 죽어서 길을 터줘야 뒷사람이 갈 수 있다. 이 게임의 승자들은 패자들의 시체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승자들은 패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이 작품의 주제다. 처음 공유와 이정재가 하는 게임은 실뜨기를 시켜볼까라고 생각했다. 두 남자가 앉아서 실뜨기하면 웃기지 않을까. 그런데 글로벌적으로 그 룰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여자들이 유리한 공기놀이나 줄넘기를 넣어보려고 했는데, 박진감과 긴장감 면에서, 그리고 다들 조금씩 어렵다. 공기놀이도 1단, 2단, 3단 이런 것들을 설명하는 과정이 글로벌 적으로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출연자들 공간 벽에 모든 게임이 그려져 있다.
“그 부분은 갑자기 떠올랐다. 벽에 게임의 비밀을 숨겨 놓자. 경쟁을 하면 서로만 쳐다보느라 벽을 못 본다. 그러나 경쟁이 끝나고 공간이 비고 나면, 그 벽에 다 숨겨져 있구나. 여기서 오싹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걸 보고 협업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이 승자가 됐을 텐데, 그래서 숨겨놨다.”
-파이널리스트들의 식사에 담긴 의미는?
“최후의 만찬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 옷도 턱시도로 입고, 와인도 로마네 꽁띠로 갖다 놨다. 빈티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그 안에 담긴 건 포도주스다. 식사가 보면 양은 도시락에서 시작해 감자까지 열악해졌다가, 마지막 파이널리스트들에게는 은혜를 베푸는 그런 느낌으로 생각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갖고 노는 게임이라는 영감은 어디에서 받았나.
“사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갖고 노는 게임은 많이 나오는 ‘클리셰’다. 2008년 작품을 구상할 때 만화에 푹 빠져 있었는데, 그때 경제적으로 힘들어 거의 만화방에서 살았다. 그때 ‘라이어 게임’, ‘도박묵시록 카이지’, ‘헝거게임’ 등을 많이 봤다. 거기 나오는 전제들이 빚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을 돈을 미끼로 게임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그 작품들을 보고 ‘오징어 게임’을 떠올렸다.”
-표절 시비도 있다.
“다른 작품들과 오징어 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두 가지다. 먼저, 게임보다 사람이 보이는 것. 다른 게임물은 사람보다 게임이다. 천재적인 사람이 게임을 풀어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오징어 게임은 아이들 놀이 중에서도 가장 쉬운, 30초 안에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게임을 하는 사람들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전 세계 누구나 게임을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다른 게임물들은 영웅을 내세워 해결한다. 여기엔 어떠한 위너(승자)도 없고, 영웅도 없고, 천재도 없다. 그저 루저(패배자)들의 이야기다. 기훈도 남의 도움으로 한단계 한단계 통과한 것이다. 징검다리가 끝나고 기훈이 상우에게 ‘왜 그 사람을 밀었느냐’며 ‘그 사람 덕에 우리는 다리 끝까지 간 것’이라고 한다. 반면, 상우는 ‘아니야. 난 내가 죽도록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어’라고 한다. 이런 두 사람의 관점이 세계관 차이를 보여준다. 상우는 ‘난 승자, 나 때문에 여기 있다’라고 생각하고, 기훈은 ‘그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과 노력으로 여기 왔다’고 생각한다. 어찌 됐든 ‘오징어게임’은 루저들의 이야기다. 어떤 승자도, 영웅도 없는.”
-세트는 어떻게 만들었나?
“모두 상상에 의존했다. 레퍼런스가 없어 힘들었다. 처음에는 기괴한 산업 구조물처럼 만들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건 너무 클리셰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건 모두 일남이 설계한 것 아닌가. 자기가 가서 놀려고. 본인이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지은 것이라, 색깔이나 세트장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으로 만들었다. 세트 내 계단은 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작품 속 계단을 참고했다.
-2008년 기획한 작품이 왜 지금 나왔나.
“원래 2008년에 영화로 만들려고 했는데 당시엔 난해하고 기괴해 만들 수 없다고 했었다. 약간 서글픈 이야기인데, 1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서바이벌 이야기가 잘 어울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지금 만들 때 사람들은 ‘재밌다. 현실감 있다’고 말해준다. 슬프게도 세상이 바뀐 게 지금 나온 이유다. 보면 요즘 모든 사람들은 게임을 한다. 비트코인(가상화폐), 부동산, 주식 모두 일확천금을 노리고 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전 세계 누구나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극 중 기훈의 캐릭터는 쌍용차 해고자를 연상시킨다.
“쌍용차 사건이 레퍼런스가 되긴 했다. 평범했던 기훈의 인생이 어떻게 해서 그 바닥까지 갔는지에 대한 배경,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기훈과 같은 입장에 몰릴 수 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이후에 기훈은 치킨집 등을 하다가 망한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지금 코로나 때문에 몰리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보고 싶었다.”
-오징어게임에 대한 정치권 언급, 정치적 패러디 등도 많이 나오고 있다.
“감독이, 창작자가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나면 그다음에는 손을 떠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수용자들의 세상이다. 거기에 대한 코멘트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한미녀 캐릭터와 바디페인팅을 두고 여성 혐오 논란 등도 나온다.
“한미녀는 자신의 몸을 통해 무언가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최악의 상황으로 몰렸을 때 하는 행동이라는 의미다. 보디페인팅도 보면 여성의 도구화가 아니고, VIP로 대변되는 권력자, 그 사람들이 사람을 어디까지 경시할 수 있는지, 사람을 사물화한다는 의미로 만들었다. 보면 다 여자가 아니고 1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보디페인팅으로 있다.”
-중년 남성의 향수를 자극하는 드라마라는 평가도 나온다.
“중년 남성의 향수라기보다, 제가 기억하는 7080세대의 향수다. 양은 도시락, 소풍 갈 때 사이다, 장학퀴즈 음악. 그런 것들은 7080세대의 보편적인 기억이다.”
-중요한 역할에 정호연이라는 신인을 썼다.
“그 역은 참신한 사람을 쓰고 싶었다. 정말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마지막에 어디서 오디션 테이프가 왔는데, 본 순간 이 친구가 해야겠다 생각했다. 이미지, 목소리 톤. 이 친구였구나. 실제로 보면서 더 확신했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친구지만, 그래서 동물적인 느낌, 때묻지 않은 야생마 같은, 그것이 주는 매력, 때문에 신인이 주는 불완전함까지 매력으로 보였다.”
-공유, 이병헌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공유는 개인적으로 친하다. (영화 도가니) 같이 찍은 이후 친해서 개인적인 자리에서 공유씨 기분 좋을 때 슬쩍 부탁했더니 바로 오케이를 해줬다. 어떤 역을 시킬까 고민하다,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딱지치기를 맡겼다. 이병헌씨도 영화 ‘남한산성’ 이후 친했다. 병헌 선배도 술자리에서 기분 좋을 때 슬쩍 이야기했다.”
-자신이 가장 닮은 캐릭터는?
“드라마를 찍을 때는 배우들이 저보고 일남이라고 했다. 다 설계하고 웃고 있는. 개인적으로는 기훈과 상우를 반반 섞었다고 생각한다. 극 초반 기훈이 모자 눌러쓰고 잠바 입은 거 보고, 사람들이 ‘감독님과 똑같다’고 하더라. 또 내가 학교를 서울대를 나와서 상우처럼 냉정한 모습도 있다고들 한다.”
-삼양라면을 생으로 먹는 장면이 나온 이유는?
“대학교 때 자취방에서 삼양라면 생으로 소주를 많이 먹었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놀이들은 단순한 반면, 인물에 대한 서사는 자세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게임을 하는 등장인물에 감정을 이입해 몰입할 수 있다.”
-예상했나?
“못했다. ‘꿈인가 생시인가’한다. 물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긴 했다. 방탄소년단·싸이·봉준호 감독에게서 볼 수 있듯,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등장하는 게임은 우리의 옛날 놀이지만 세계적인 호소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농담처럼 ‘킹덤이 잘 돼 갓이 잘 팔렸던 것처럼, 우리도 달고나 잘 팔리는 것 아니냐, 그럼 달고나 장사 선점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곤 했다.”
-연출에서 가장 중요하게 신경 쓴 것은?
“이 작품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게임물이 잘못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 마니아층만 즐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 판타지적 요소와 리얼한 요소를 동시에 구현하는 게 연출에 있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고 어려운 부분이었다.”
-넷플릭스를 선택한 이유는.
“넷플릭스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이걸 어디 가서, 형식, 물량, 수위 제한 없이 만들 수 있었겠느냐. 처음 아이디어를 듣고부터 계속 밀어줬고, 만드는 내내, 지금까지 이렇게 편안하게 작품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흔히 말하는 대박이 나도 추가 수익이 없다. 아쉽지 않은가.
“아쉽지 않다면 사람이 아니겠지(웃음). 그러나 알고 시작한 거라, 지금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반응들, 그것만으로도 창작자로서 너무 감사하다.”
-시즌 2 계획은?
“시즌 1 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다 쓰고 제작하고 연출하는 혼자 하는 과정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당분간 시즌2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너무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안 한다고 하면 난리가 날 것 같고. 머릿속 그림들은 몇 가지가 있는데, 사실 이번에 ‘오징어 게임’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영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걸 먼저 할 것 같고, 시즌 2는 넷플릭스와 이야기해보고 한다면 영화 다음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즌 1을 하면서 이가 6개 빠졌다. 그래서 지금 임플란트인데, 시즌 2를 혼자 할 수 있을까, 하고 나면 틀니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