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8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린 직장인들이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서울 종로구 서촌 ‘쏘리 에스프레소바’로 이동한다. 두평 남짓한 카페. 흥미로운 대목은 의자가 없다는 것.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치익” 하는 추출 소리와 함께 갈색 크레마가 도톰하게 올라간 한 잔이 나온다. 주문부터 마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4분. 이렇게 하루 동안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고 회사원은 일터로 간다. 출출한 사람들은 에그타르트 하나를 종이봉투에 넣어 챙긴다. 포르투갈의 어느 카페 아침 같은 풍경이다.
◇서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그동안 한국은 ‘아메리카노의 나라’였다. 커피 취향을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냐,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냐로 나눴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바가 새로운 유행이다. 작년 말부터 커피 좀 마신다는 사람들은 골목 곳곳에 숨은 에스프레소 바를 찾는다. 2000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도 유행에 일조했다. 커피 취향도 이젠 이렇게 나뉜다. 코코아 파우더가 올라간 나폴리식 ‘에스프레소 스트라파차토’냐, 휘핑크림을 올린 ‘에스프레소 콘파냐’냐, 우유 거품을 올린 ‘에스프레소 마키아토’냐로.
30ml 양이 아쉬운 커피 고객들은 다양한 에스프레소를 모두 시도한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는 에스프레소 여러 잔을 마시고 블록처럼 쌓아 올린 인증 샷도 유행이다.
최근의 에스프레소바 유행의 시작으로는 서울 중구에 있는 ‘리사르 커피’가 꼽힌다. 영상 일을 하던 이민섭 대표가 2012년 서울 왕십리에 에스프레소 바를 차렸다가, 3년 전 약수동으로 옮겼다. 단골들만 찾던 그의 카페는 지난해 약수동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던 미식가들의 눈에 띄면서 인터넷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포르투갈과 이태리 등 코로나로 유럽을 찾지 못하는 여행객들에게도 소문이 났다. 최근에는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서 열풍. 일산 ‘올댓커피’ 등도 이름났고, 지난해 9월에는 프랜차이즈 체인 ‘오우야 에스프레소바’도 생겼다. 현재 합정, 해방, 종로, 마곡 등 4개 점이 있다. 현재 SPC그룹도 양재동 파스쿠찌 매장을 에스프레소바로 바꾸고 있다.
◇주문부터 마시는 것까지 4분!
에스프레소는 급한 한국인의 성격에도 잘 맞는 편.
에스프레소의 어원은 ‘빠른(express)’으로, 주문부터 마지막 한 방울까지 4분 안에 마시는 게 관행이라고 한다. 선의와 호의로 시작된 커피는 아니다. 1901년 에스프레소 기계를 처음 개발한 이탈리아 밀라노의 루이지 베체라도 종업원들의 휴식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다 이 같은 방법을 떠올렸다고 알려졌다.
에스프레소는 기존 커피보다 10배 정도 농축됐지만. 카페인양은 47~75㎍ (마이크로그램) 정도로 75~200㎍의 필터 커피보다 적다. 보통은 마시기 전에 탄산수로 입안을 청소하고, 쓴맛을 완화하기 위해 설탕을 넣어 마신다. 이사라 쏘리 에스프레소 대표는 “설탕이 바닥에 깔리니 스푼으로 7번 정도 저어 마시면 좋다”고 말했다. 진한 커피 액과 설탕이 만나 달고나 과자 같은 맛이 난다.
최근에는 한국식 다방 문화가 접목돼 좌석이 있는 에스프레소 바들이 생겨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새로 생긴 리사르 커피 2호점이 이런 형태다.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11시. 이탈리아에서는 아침 식사와 점심 시간 사이인 이 시간대를 ‘스푼티노’라고 부른다. 에스프레소와 가벼운 쿠키로 피로를 푸는 시간이다.
지난 9월 서울 중구 명동에 문을 연 ‘몰또 커피’도 이 같은 다방형 에스프레소 바다.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테라스. 명동 성당을 향해 에스프레소 잔을 올리는 순간, 명동 성당이 밀라노 두오모 성당으로 바뀌는 마법이 펼쳐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