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9일 미 LA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 청바지에 셔츠, 반짝이는 점퍼를 입은 한국 소년 일곱 명이 무대에 올랐다.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
곡 ‘DNA’가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얻으며 빌보드 핫 100 순위 67위까지 솟아오르자, 45회를 맞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방탄소년단을 초청한 것이다. 아시아 음악인 중 처음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가진 첫 무대다. 당시 이 공연은 ABC방송을 통해 미 전역으로 중계됐다.
그로부터 4년. 같은 장소에서 21일(현지 시각) 열린 ‘제49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는 방탄소년단에 의한, 방탄소년단을 위한, 방탄소년단의 무대였다.
두 번째 순서였던 콜드플레이와 함께 부른 ‘마이 유니버스’는 시상식 초반 분위기를 띄웠고, 시상식의 마지막 무대도 방탄소년단의 ‘버터’였다.
주요 부문인 ‘페이버릿 팝 듀오/그룹’ ‘페이버릿 팝송’ 상에 이어 대상 격인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까지 3관왕을 수상했다. 역시 아시아 음악인 중 최초다. 멤버 진은 아미(팬클럽)를 향해 “여러분은 우리의 우주(Universe)”라고 소감을 밝혔다. RM은 “우리는 한국의 작은 그룹이었다. 아미들이 없었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며 “어려운 시기에 많은 이들에게 우리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상식 처음과 끝
이날 시상식 사회는 래퍼 카디비. 딸이 방탄소년단 팬이라고 했다. 그의 소개로 콜드플레이와 무대에 오른 방탄소년단은 4년 전과 비교해 한결 여유가 넘쳤다. 청바지에 가죽 재킷, 두건 등 캐주얼한 차림으로 멤버끼리 어깨동무를 하며 편안하게 노래를 불렀다. 진은 양 엄지를 들어 올려 자신감을 뽐냈고, 지민은 카메라를 향해 키스를 보냈다. 무대를 마친 뒤 콜드플레이와 진한 포옹을 하기도 했다. 무대에서는 리듬에 맞춰 폭죽이 ‘펑펑’ 터졌다.
이들에게 대상을 안겨준 ‘버터’ 무대는 노란색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무대도 샛노란 ‘버터’ 색으로 꾸며졌다. 관객석에 앉은 팬뿐만 아니라 동료 아티스트들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마치 방탄소년단의 콘서트장 같았다.
올해 시상식에는 보이 그룹의 원조 격인 ‘뉴 에디션’과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무대 아래에서는 보이 그룹을 잇는 후배이자, K팝 전성기를 연 방탄소년단이 일어서서 응원했다.
◇그래미 받나
올해 방탄소년단은 ‘버터’에 이어 ‘퍼미션 투 댄스’ ‘마이 유니버스’까지 빌보드 메인 차트 핫100 1위 곡만 세 곡을 탄생시켰다. ‘버터’는 총 10주나 1위를 지켰다.
작년에도 ‘다이너마이트’의 빌보드 핫100 1위로 의미 있는 한 획을 그었지만, 그래미와 빌보드를 포함한 미 3대 시상식 주요 수상은 이번이 처음. 올 초에 열린 빌보드뮤직어워드에서도 대상 격인 ‘톱 아티스트’에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그래미상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오르는 데 그쳤다.
1974년부터 열린 AMAs는 그래미상과 더불어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권위 있는 대중음악상이다. 전문가 투표로 시상하다가 2006년부터 대중과 팬 투표로 바뀌었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AMAs 대상은 그해 미국 팝 시장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한 번도 비영어권 아티스트가 받은 적이 없었다”며 “이번 수상은 방탄소년단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정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도 “미국에서 가장 큰 팬덤을 가진 테일러 스위프트를 투표로 이겼다는 건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했고, 김작가 평론가 역시 “미국 팝 시장에서 방탄소년단의 대세 굳히기가 이뤄진 순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도 “이번 대상 수상은 방탄소년단이 1970년대 엘턴 존, 1980년대 마이클 잭슨, 2000년대 마돈나, 2010년대 테일러 스위프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수퍼스타가 됐음을 만방에 알린 사건”이라며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 방탄소년단이 새로운 지배자라는 것을 확인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데뷔 이후 최대 경사를 맞은 방탄소년단은 24일 오전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 후보 발표도 앞두고 있다. 지난해 그래미 무관왕에 그쳤던 방탄소년단이 올해 겹경사를 맞을지 가요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