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들리는 날카로운 혹은 우렁찬 기적 소리가 모오짜르트보다도 더 가깝다. 나는 메뉴에 적힌 몇 가지 안 되는 음식 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 번 읽었다.”
작가 이상의 소설 ‘날개’의 한 대목이다. 이 묘사의 대상은 1925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경양식당 ‘서울역 그릴’. 6·25의 상흔과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도 견뎌낸 ‘서울역 그릴’도 코로나는 이겨내지 못하고 지난달 30일 문을 닫았다.
사라져가니 그리운 것들이 있다. 경양식집. 5060 세대에겐 대학 시절 연애의 전당, 2030세대에겐 유년 시절 가족들 손을 잡고 찾았던 외식의 명소다. 옛 스타일은 옛 스타일대로, 혹은 젊은 세대에게 맞춘 레트로 스타일로, 경양식집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중장년에게는 추억의 맛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오로라 경양식’은 50년 넘은 경양식집. 후추 뿌린 눅진한 크림수프, 돼지고기 잘 두드려 편 납작한 돈가스, 총총 썬 양배추에 부드러운 마요네즈 소스까지. 추억의 그 맛이다. 이쯤에서 소설가 성석제의 유명한 경양식집 산문이 떠오른다. 대학 시절 경양식집 미팅. 시골 출신 여대생은 김 모락모락 수프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왜 안 먹느냐는 질문에 그녀의 대답. “밥 나오면 말아먹으려고요.” 경양식집이 난생처음이던 이 귀여운 커플은 결국 결혼했다던가.
웨이터가 빵과 밥 사이에서 선택을 묻는다. 후자를 택하자 납작한 접시에 얇게 펴 나온 흰 쌀밥. 느끼하다 싶을 때쯤 구슬만 한 깍두기를 입에 넣는다. 돈가스와 깍두기의 궁합은 한국인만 아는 묘미다.
오로라 경양식 박성호(73) 대표는 1970년대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 뒤에 ‘멕시코’라는 이름으로 처음 경양식집을 열었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가족 외식, 연인 간 데이트 모두 명동의 경양식집에서 할 때였다. 골목골목마다 경양식집이 있던 시절. 하지만 외식의 유행은 바뀌었고 박 대표의 식당도 자리를 옮겼다. 1980년대에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모멘트’와 ‘채플린’이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에는 삼성동으로 옮겨 ‘추억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운영했다. 지금 있는 석촌동으로 온 건 2016년이다. 벽에 붙은 시대별 영화 포스터를 보며 추억에 잠긴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테라스’는 경양식 호프집. 1985년에 문을 연 후 옮긴 적이 없다. 맛의 비결은 진한 맛 데미그라스 소스. 창업부터 함께한 셰프가 2년 전 일이 힘들어 잠깐 쉬자, 단골들은 ‘소스 맛이 변했다’며 발길을 끊을 정도였다고 한다. 최근 셰프의 컴백과 함께 소문을 들은 젊은 층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데미그라스 소스의 비법을 물었다. “예전 준레스토랑이라고 유명한 경양식집 박씨 아저씨한테 힘들게 배운 비법이야. 절대 못 가르쳐주지.”
◇2030에게는 레트로
최근 젊은 층에 부는 레트로(복고) 열풍은 개화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 스타일을 재현한 경양식 집들로 옮겨갔다. 그 시절 의상을 구해 입고 방문해 인스타그램 인증 샷을 남기는 것도 유행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관훈맨션’,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경양식 1920′ 등이 대표적이다. 짙은 원목 톤의 실내 장식, 화려한 샹들리에, 예스러운 그릇 등이 개화기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경양식(輕洋食)의 사전적 의미는 가벼운 서양 요리. 어원은 일본에 있다. 메이지유신 시대, 일본이 도입한 서양식 식문화다. 주로 돈가스, 햄버그스테이크, 오므라이스. 우리에게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왔다. 개화기 모던보이와 신여성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다.
일본에서 경양식은 추억이 아닌 우리의 분식처럼 친숙한 음식. 서울 중구 예장동의 ‘그릴 데미그라스’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마크스’가 이런 일본식 현대 경양식을 파는 곳들이다. 이곳에서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사라다(샐러드)’. 계란과 감자를 으깨 마요네즈에 버무린 뒤 촉촉한 모닝 빵을 갈라 발라먹는다. 경양식. 당신의 연배에 따라 추억의 맛, 혹은 신기한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