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열마디 스무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압축적으로 주제를 말해줄 때가 있습니다. 그 주제가 너무나 명징하고 냉정해서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 보실 이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은 피도 눈물도 정도 없는 먹고 먹히는 세상이라는 걸 말해주는 걸 알려주는 것으로 이 사진만한게 있을까요?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벨벳원숭이 어미와 새끼의 시간은 산산조각 났다. 표범에게 물려죽은 어미의 사체에 매달린 새끼 벨벳원숭이의 공포에 질린 눈빛이 더없이 처연하다. /redheartnature instagram

야생동물 전문 인스타그램 계정인 redheartnature를 비롯해 몇몇 소셜미디어와 외신 등에 소개됐던 이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찢어집니다. 태어난지 고작 몇주 정도 되어보이는 이 새끼 벨벳원숭이의 눈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습니다. 이 새끼원숭이는 어미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듯 두 팔로 힘껏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미는 더 이상 새끼를 보듬어줄 힘이 없습니다. 어미의 목덜미는 이미 표범의 공격에 으스러져 숨통이 끊어졌습니다.

야생에 디즈니 라이온킹같은 환타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먹으려는 자와 먹히지 않으려는 자들의 필생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지속될 뿐이다. 이 가련한 벨벳원숭이 어미와 새끼는 표범가족의 먹거리로 무참히 희생됐다. /redheartnature instagram

표범은 방금 사냥한 암컷 벨벳 원숭이를 포식하기 위해 안전한 자신만의 영역으로 이동 중입니다. 가련한 새끼원숭이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채 어미를 끝까지 붙들고 있을 뿐입니다. 이 눈동자를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왜 굳이 새끼를 키우는 어미 원숭이를 사냥해야 했는지, 늙거나 병든 수컷 원숭이를 포함해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렸는데 그래야 했냐고 표범을 책망하고 싶지만, 부질없는 짓입니다. 여긴 야생이거든요. 사자와 미어캣과 혹멧돼지가 한가족처럼 어울려 사는 라이온킹의 스토리는 엄밀히 말해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환타지일 뿐이죠. 이 사진 촬영의 장면이 담긴 아래 동영상을 보면, 제발 새끼만이라도 어떻게 살아남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게 인간의 심정입니다.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벨벳원숭이 어미와 새끼의 시간은 굶주린 표범에 의해 산산조각났다. 표범이 사냥에 성공한 어미 벨벳원숭이를 물고 이동하는 동안 새끼는 어미의 사체를 꼭 붙들고 공포에 질린 눈빛을 하고 있다. /redheartnature instagram

그러나 이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한 사람들이 전한 전언은 일말의 기대도 저버리죠. 이 가련한 새끼 원숭이는 표범 새끼들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결국 어미와 함께 그날 밤 표범들의 식탁에 올라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사진은 약육강식의 무대 사바나에서 원숭이가 살아가는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말해줍니다. 인간이 속해있어 각별하게 관심이 가는 게 바로 영장류죠. 쥐를 닮은 아주 원시적인 종류인 영장류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넓습니다. 마다가스카르의 열대우림, 아마존의 우듬지, 일본의 설원과 인도의 고대 힌두사원처럼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기후와 식생에 맞춰 자신들을 진화·적응시켰습니다. 영장류는 진화 정도에 따라서 크게 원원류와 진원류 두 무리로 나뉩니다. 원원류(原猿類)는 말 그대로 원시적인 원숭이들이니다. 사람, 그리고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원숭이랑은 생김새가 차이가 있는 부류들이죠. 만화영화 ‘마다가스카’를 통해서 친숙해진 여우원숭이, 귀여운 생김새 때문에 애완동물로 밀거래되는 로리스원숭이, 설치류와 원숭이의 특징을 함께 갖고 있어 늘 분류학상으로 논쟁이 되는 나무타기쥐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원원류의 대표적인 종류인 로리스. 귀엽고 이국적인 생김새로 애완용으로 밀거래되는 수난을 겪기도 한다. /미국 링컨파크 동물원 홈페이지

진원류(眞猿類)는 이들에 비해서 진짜 원숭이라는 의미로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사람의 친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유인원(고릴라·오랑우탄·침팬지·긴팔원숭이)도 여기에 포함되죠. 이들이 살아가는 곳중에 가장 살벌하고 위험한 곳으로 단연 사바나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밀림이나 우듬지처럼 나무가 빽빽하지 않다보니 늘 개방된 곳에서 천적들의 사냥감으로 노출돼있습니다. 벨벳원숭이가 늘 표범의 사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벨벳원숭이가 포함된 무리를 통틀어서 긴꼬리원숭이류라고 하는데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지에 70여종이 서식하고 있어요. 이 중 소수가 탁 트인 사바나의 육식동물들 틈바구니에서 매일매일을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죠. 허나 그 모두가 벨벳원숭이처럼 약자는 아닙니다. 지금부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바나의 거친 삶에 적응해 사는 원숭이 이야깁니다. 어느정도 짐작을 하신 분도 있겠죠. 맞습니다. 한때는 ‘비비’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던 개코원숭이입니다. 여기 가슴 찢어지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또 하나 있습니다.

개코원숭이가 사냥한 임팔라 새끼를 어미 눈앞에서 먹어치우기 시작하려 하고 있다. /wild versus youtube 캡처

이 어미 임팔라와 새끼 임팔라가 함께 한 시간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힘차게 사바나를 뛰놀기 시작한 새끼에게 사바나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겠죠. 그 가족의 애틋한 시간은 굶주린 개코원숭이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임팔라 새끼를 빼앗아 손에 움켜진 개코원숭이는 이 순간을 마치 즐기려는 듯 끄떡없이 앉아있습니다. 모성애로 무장한 저 임팔라가 신체구조와 물리적 힘의 한계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다년간의 사냥으로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이제 어미 앞에서 새끼의 숨통도 끊지 않고 산채로 찢어발겨 먹을 참입니다. 그 비극의 순간 어미와 새끼가 주고받는 눈동자의 교감이 어찌 이리도 슬픈지요. 아래 Wild Versus 유튜브 동영상에서 보면 알겠지만, 어미는 여러 번 새끼를 구출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자신이 뱃속에서 고이 품어 내보낸 새끼가 개코원숭이에 의해 갈가리 찢겨져나가는 모습을 처연하게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임팔라 새끼를 어미 앞에서 잡아먹는 개코원숭이

원숭이는 기본적으로 잡식성입니다. 그렇지만, 사바나의 맹수들처럼 직접 큼지막한 몸뚱아리의 동물들을 사냥해 잡아먹는 종류가 두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유인원인 침팬지, 다른 하나가 긴꼬리원숭이 중 동급최강인 개코원숭이입니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야 쉽게 고기맛을 볼 수 있는지 압니다. 바로 영양의 새끼를 습격하는 것이지요. 임팔라·누·톰슨가젤 등의 새끼들은 본능적으로 태어나자마자 걷고 달릴 줄 압니다. 사방에 노리는 육식짐승들이 있으니 뛰어서 도망치는 유전자를 품고 태어난 것이죠. 그렇지만 성체보다 새끼가 사냥하기 쉽고, 먹기도 편하다는 것은 원숭이이자 맹수인 개코원숭이도 터득하고 있는 바입니다.

어미 앞에서 새끼를 산채로 포식하기 직전 개코원숭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쩌랴. 이 또한 대자연의 일부분인 것을. /Wild Versus Youtube 캡처

그래서 임팔라 등의 어린 새끼를 잡은 뒤, 어미가 뻔히 보는 앞에서 산채로 찢어먹는 잔혹한 장면의 주인공으로 숱하게 포착되고 있습니다. 개코원숭이류는 아프리카의 사바나와 밀림, 에티오피아의 고원까지 거친 풍토에 적응해살고 있습니다. 라이온킹의 주술사 원숭이 ‘라피키’의 실제 모델인 맨드릴 역시 개코원숭이의 무리죠. 애니메이션에서는 사자 무리를 축복하는 원로 멘토로 나오죠. 실제로 자연에서 맞닥뜨리면 어떨까요? 개코원숭이족 특유의 성질머리와 파워를 감안하면 선뜻 만만하게 사냥당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