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비레이블

“무대 뒤 대자로 누워있었고, 아무것도 안 들렸죠. 진공 상태처럼.”

최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사옥에서 만난 가수 알렉사(본명 김세리·26)가 웃으며 말했다. 지난 9일(현지 시각) 미국 NBC 방송 ‘아메리칸 송 콘테스트(ASC)’에서 결승 무대 직후의 모습. 그는 여기서 선보인 곡 ‘원더랜드’로 K팝 가수 최초로 미국 지상파 음악 경연 프로그램 우승을 기록했다.

올해 첫 방송된 ASC는 매해 전 세계 4억명 이상이 시청하는 유럽 음악 경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ESC)’의 미국 버전. 유럽 각국 대표팀이 1곡씩 들고 나와 경연하는 것처럼 미국 50개 주와 워싱턴DC, 5개 해외 영토 가수 56명이 경쟁하는 방식이다.

알렉사는 여기서 영화 속 ‘할리퀸’을 닮은 란색 양 갈래 머리와 파격적인 화장, 특히 과감한 공연 연출로 화제를 모았다. 노래를 끝마친 직후 10m 높이 계단 위에서 팔을 활짝 펼치고, 그대로 객석을 바라보며 무대 뒤쪽으로 뛰어내렸다. “일부 현장 청중은 비명도 질렀대요. 전 무대 뒤에서 헉헉대느라 못 들었지만.(웃음)”

2019년 데뷔한 신인이자 유일한 K팝 참가자. 2018년 한국 음악 경연 방송 ‘프로듀스48′에서 88위로 탈락했던 그는 이번에는 그래미어워즈 2관왕인 마이클 볼턴부터 메이시 그레이, 주얼, 시스코 등 본토 팝스타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 알렉사는 미국 오클라호마주 대표로 선발됐다. 그는 이 지역 털사(Tulsa)에서 스물 한 살까지 나고 자란 토박이. 컨트리, 블루스, 로큰롤 등 미국 본토 음악이 강세인 지역에서 당당히 K팝으로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오토튠(기계음)을 전부 제거한 라이브 노래와 춤영상으로 심사받는 예선전만 3개월 걸렸죠. 그 사이 K팝이 과연 꼽힐까. 솔직히 긴장됐어요.”

러시아계 부친, 한국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님 권유로 중학교 때는 의사를 꿈꿨다”고 했다. 그러나 보이그룹 슈퍼주니어 영상을 보면서 꿈이 바뀌었다. 매일 방에서 혼자 K팝 춤을 연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매일 5시간씩 안무 영상을 틀고 혼자 방에서 춤췄죠. 심사위원인 가수 켈리 클락슨, 래퍼 스눕독이 눈앞에 앉아있는 걸 상상하면서.”

현실에서 만난 진짜 스눕독은 우승한 알렉사에게 “넌 이제 스타야(You’re a star)”라고 말해줬다. 무엇보다 “엄마가 ‘내 고향에서 꿈을 이룬 딸이 대견하다’고 말해준 게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만 5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최근 ASC 우승 특전으로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도 참석했다. 하지만, 가장 서보고 싶은 무대는 “한국의 마마(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라고 했다. “마마 영상으로 K팝 무대를 연습했죠. 언젠가 저기 서겠다 다짐했어요. 거기서 알렉사만이 할 수 있는 무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