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에선 걸그룹 브레이브걸스가 2017년 발매한 ‘롤린’의 역주행 인기가 큰 화제였다. 그런데 올해 3월 미국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등장했다. 영국 4인조 밴드 글래스 애니멀스의 ‘히트 웨이브스’가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에 오른 것. 2020년 6월 발매 당시엔 100위권 안에도 없던 곡이었다. 그런데도 빌보드 차트 집계 사상 가장 오랜 기간(59주)이 걸려 1위를 차지한 역주행곡이 됐다.
글래스 애니멀스 멤버들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매일 아침 순위가 올라갈 때마다, 첫 1등을 했을 때도 꿈만 같았다”고 했다. 이들은 이후 5주 연속 핫100 1위에 올랐고, 올해 초 미국 최고 권위 음악상 그래미 시상식(64회) 신인상 후보에도 올랐다. 최근 한국에서도 동영상 플랫폼 틱톡, 유튜브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밴드는 리드보컬 ‘데이브 베일리’의 주도로 2010년 결성됐다. 함께 모인 멤버 조 수어드(드럼), 에드먼드 어윈 싱어(베이스), 드루 맥팔레인(기타)은 12살 때부터 영국 옥스퍼드 세인트 에드워드 기숙학교에서 함께 수학한 소꿉친구들. 밴드명은 “데이브의 할머니가 동물 모양 유리 조각품을 수집하던 취미에서 따온 것”이다.
‘히트 웨이브스’도 데이브가 쓴 곡으로, 특히 “가끔은 너만 생각해/ 6월의 중순 늦은 밤”이란 가사에 몽환적인 선율을 붙인 후렴구로 크게 사랑받았다. 틱톡에선 ‘연인들 배경음악’으로 인기였다. 하지만 데이브는 “사실 내겐 슬픈 곡”이라고 했다. 후렴구 속 ‘6월’은 데이브의 생일과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난 기일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6월만 되면 그 친구 생각이 참 많이 나요.”
그만큼 “잘 쓰고 싶어 욕심낸 곡”이라고 했다. 보통 팝 음악은 2~3개의 음 배열(코드)로 작곡한다. 하지만 이 곡에는 “코드 8개를 써서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하려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했다.
유독 사람과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가사가 많다. 2016년 2집 ‘하우 투 비 어 휴먼 비잉’은 아이를 버린 여성 등 특정 인물들과 한 인터뷰를 주제로 한 11곡을 실었고, 평단 호평으로 2017년 영국 최고 권위 음악상 머큐리상 후보에 올랐다. 이 중 ‘남성 캥거루족’을 그린 곡 ‘라이프 잇 셀프’에선 “내가 특별할 거라 말한 아빠는 어리석었다”고 노래했다. 데이브는 “곡마다 우리에게 영향을 준 순간을 담아왔고, 그런 순간은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얻어진다고 믿는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내겐 가장 중요하고 흥미롭다. 한때 정신과 전문의를 꿈꿨던 이유”라고 했다.
곡의 소리를 채울 땐 “노래 속 상황을 최대한 자세하게 상상한다. 90년대풍 곡을 쓸 땐 그 당시 라디오에서 흐른 음악을 상상하고, 차에 대해 쓸 땐 실제 자동차 소리를 넣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2집에서 노숙자를 다룬 곡을 녹음할 땐 쓰레기통을 드럼 대용으로 썼다.
이들은 가장 협업해보고 싶은 한국 가수로 “방탄소년단 제이홉”을 꼽았다. “제이홉이 우리 음악 듣는 영상을 봤어요. 함께 작업하면 정말 멋질 거예요!” 언젠가 “한국에서 정말 공연해 보고 싶다”고도 했다. “한국 음식, 문화, 음악, 패션 모두 대단하잖아요. 만일 한국에 가면 다신 떠나지 않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