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진일보.’ 이번 블랙핑크의 트리플 크라운 달성을 두고 가요계에서 모인 반응이다. 이번 블랙핑크의 성과는 특히 ‘보이’ 못지않게 ‘걸’ 그룹도 세계 음악계의 한류 열풍을 주도할 수 있다는 첫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김윤하 평론가는 “지난 6월 BTS의 그룹 활동 잠정 중단 선언 이후 관심이 쏠린 ‘포스트 BTS’ 후보에는 빌보드200 기록을 주도해 온 ‘남성 그룹’이 주로 거론됐었다”며 “하지만 이젠 여성 그룹인 블랙핑크가 그 공백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잘 메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다”고 했다.
◇'당당한 여성’ 롤모델… 미국에서도 14년 만의 걸그룹 1위
이번 블랙핑크의 선전은 해외에서도 이례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이들이 빌보드 메인앨범 차트인 ‘빌보드200′에서 거둔 1위는 2008년 4월 미국 걸그룹 ‘대니티 케인(Danity Kane)’의 ‘웰컴 투 더 돌하우스’ 이후 14년 만에 나온 기록. 오랫동안 무주공산이었던 북미 시장의 인기 걸그룹 시장을 한국의 블랙핑크가 완벽히 차지한 것이다. 앞서 2018년 BTS가 첫 빌보드200 1위를 차지했을 때는 인기 팝스타 해리 스타일스가 속해 있던 ‘원 디렉션’ 후 공석이 된 미국 최정상 보이그룹의 왕관을 이어받았다는 반응이 있었다. 이번에는 여왕의 대관식인 셈이다.
블랙핑크의 소속사인 YG 또한 그런 부분을 전략적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김도헌 평론가는 “최근 미국 내 10대·20대를 중심으로 푸시캣 돌스 등 2000년대 인기 걸그룹 패션, 음악 스타일을 선망하는 흐름이 있다”며 “블랙핑크도 2집 수록곡 ‘셧 다운’ ‘핑크 베놈’ 등에서 그 시대 걸그룹들 곡에서 두드러졌던 힙합 기반 팝송, 패션을 전략적으로 앞세우고 있다”고 했다.
다만 평론가들은 “블랙핑크와 BTS의 성공은 많은 점이 다르다”고 평했다. 2018년 BTS의 빌보드 차트 성과들이 ‘돌풍’처럼 여겨졌다면, 블랙핑크의 성공은 ‘예견된 성공’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한국어 가사’가 주를 이룬 앨범으로 주목받은 BTS와 달리 블랙핑크는 다소 거친 욕설 표현까지 섞인 ‘영어 가사’가 80% 이상을 차지한 앨범으로 빌보드200 정상에 올랐다는 점도 큰 차이로 꼽힌다.
임진모 평론가는 “이번 신보에선 거문고 가락 등을 일부 썼지만 블랙핑크 곡 대부분은 사실 한국적이기보단 북미식 팝에 가깝다. 그런데도 ‘아류’가 아닌 ‘고유의 개성’을 지닌 그룹으로 환호 받았다”며 “세계 음악 시장에서 BTS 열풍의 시작이 K팝을 ‘도전자’ 위치에 처음 설 수 있게 이끌었다면, 블랙핑크는 뛰어난 외모와 실력, 유창한 영어 등을 앞세워 빠르게 해외 스타들과 동등한 인기를 구축했고, K팝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고 했다.
실제 블랙핑크 멤버 전원은 현재 샤넬(제니)·생로랑(로제)·디올(지수)·셀린느(리사) 등 세계적 명품 브랜드의 홍보대사로 활약 중이고, 지난해 9월에는 세계적 팝스타 저스틴 비버(당시 약 6510만명)를 끌어내린 뒤 차지한 ‘전 세계 유튜브 채널 구독자(현재 8180만명)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음악 평론가 김작가씨는 “블랙핑크는 K팝 잣대로만 분류하기엔 이미 다방면에서 세계적인 ‘셀러브리티(유명 인사)’ 집단”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탄탄한 인지도가 연속적인 기록 갱신에도 큰 이점이 됐다는 분석이다. 2016년 첫 데뷔한 블랙핑크는 2018년 미니음반 ‘스퀘어 업’으로 빌보드200 40위를 기록하며 직전 K팝 걸그룹의 최고 기록(61위·투애니원)을 갱신했고, 2019년 미니음반 ‘킬 디스 러브’로 24위, 2020년 10월 정규 1집 ‘디 앨범’으로는 단숨에 2위까지 올라섰다. 이번 신보로는 특히 2년 공백기를 거치고도 1위를 차지했다. 한 국내 음반기획사 관계자는 “공백기를 거치고도 연속적인 커리어 하이, 그것도 빌보드200 1위란 성과를 복귀 직후 바로 내는 건 인기 흐름이 빠른 K팝 그룹에게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라고 했다.
세계 음악 차트 성향이 ‘다인종·다문화·여성’ 키워드로 정착하고 있다는 점도 블랙핑크 선전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정민재 평론가는 “빌보드만 해도 리조, 도자캣 등 당당한 이미지의 여성 솔로 가수들과 배드 버니 등 라틴 계열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 상위를 독식한 지 오래다. 이런 이미지에 블랙핑크가 잘 부합하는 데다, K팝 자체도 이젠 해외에서 낯선 음악의 자리를 벗어나고 있는 모양새”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