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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적 사파리 명소인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올라온 목격담이 야생동물 뉴스사이트 레이티스트사이팅스(Latest Sightings)에 올라와 화제입니다. 한 사파리가이드가 손님들을 태우고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표범의 행적을 좇아 나무 부근으로 이동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가이드의 눈에 갓잡은 임팔라를 포식하고 있는 표범의 식사장면이 포착됐어요.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는 드물지 않게 나오는 장면이지만, 육안으로 보는 건 좀처럼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사람들이 보건말건 임팔라 사체를 파고들던 표범이 순간 뱃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더니 나무 깊숙한 곳에 쟁여놓는 장면이 렌즈에 잡혔습니다.

표범이 임팔라를 기습공격하고 있다. 임팔라는 다른 초식동물보다 덩치가 왜소한 편이어서 사자부터 리카온, 악어 등이 모두 즐겨 사냥한다. /Latest Sightings

고이 쟁여두고 먹을만한 특수부위가 따로 있었을까요? 표범이 끄집어낸 것은 사냥당한 어미 뱃속에서 함께 숨을 거둔 임팔라 태아였습니다. 이 표범의 습성이 잔혹하고 야만적이라고 섣부르게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식단에도 갓 태어났거나 아직 어미 복중에 있는 새끼들, 혹은 새끼로 자라나던 알들을 활용한 요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표범은 본능적으로 저장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죠. 하루하루가 전쟁인 사바나에서 살아나기 위해서요. 어미 뱃속에서 잉태돼 꼬박 여섯달을 무럭무럭 자라나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던 어린 임팔라는 이렇게 표범의 저장용 별식이 돼 피기도 전에 꺾이고 맙니다.

태어난지 불과 몇 시간 되지 않은 어린 임팔라가 사자에게 사냥당하면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Latest Sightings

이 표범을 비롯해 사자, 하이에나, 치타, 리카온 등 사바나의 맹수들의 사냥·포식 장면을 담은 영상을 ‘각본없는 야생의 드라마’들이라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드라마의 주연은 언제나 맹수들입니다. 그들의 주연을 뒷받쳐주는 조연은 피식자, 즉 사냥당하는 초식동물이지요. 사바나와 정글에서 벌어지는 야생 드라마처럼 주연과 조연의 승패가 잔혹하게 엇갈리는 경우도 없습니다. 승자의 발톱과 이빨에 조연들은 죽은 채로 혹은 산채로 뜯기고 찢기며 고깃덩이로 삼켜져 뱃속에서 분해된 뒤 종내에는 배설물로 변모해 대지에 영양분을 공급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참 비정한 생명의 바퀴입니다.

표범이 두고두고 먹기위해 나무위에 걸어놓았던 임팔라 사체를 사자가 물어가고 있는 모습. /Latest Sightings

이 비참한 조연에 단골로 등장하는 족속들이 있어요. 물소, 누우, 혹멧돼지, 워터벅 등이지요. 하지만 어디 하나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물소의 굽고 날카로운 뿔은 사자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워터벅처럼 덩치가 큰 영양은 사자 무리가 모조리 달려든다해도 쓰러뜨리기 버겁고요. 상대적으로 덩치가 왜소한 혹멧돼지나 누우도 갑자기 반격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만히 여겼던 맹수들이 혼비백산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삼십육계 줄행랑 말고는 무기가 전혀 없는 가련한 초식동물이 있습니다. 사자는 물론 하이에나와 표범, 치타, 리카온 등은 물론 악어와 원숭이까지 먹잇감으로 삼는 사바나의 ‘국민 먹거리’ 임팔라입니다.

비단구렁이가 새끼 임팔라를 삼키던 현장을 습격해 임팔라 탈취에 나선 하이에나. /Latest Sightings

늘씬한 몸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하고 사바나에 터잡고 사는 이들은 지금쯤 또 어딘가에서 사자에게, 표범에게, 치타에게, 혹은 악어에게 붙잡혀 살점이 뜯겨나가고 있을 겁니다. 가히 ‘사바나 왕국의 저주받은 조연’이라고 할만해요. 우리가 ‘동물의 왕국’이라고 일컫는 동남아프리카에 고루 분포해있습니다. 동물의 왕국에 자주 등장하는 톰슨가젤·스프링복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개중 덩치가 가장 크고 몸색깔이 짙고, 수컷의 뿔이 상대적으로 길고 늠름한 편입니다. 나무가 있고 풀이 자라고 물이 있는 곳이 아니면 살수가 없어요. 이런 서식환경은 포식자들의 주거 선호도와도 정확히 일치하죠.

리카온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면서 도망가던 임팔라를 잡아채는데 성공하고 있다. /Latest Sightings

그저 만만하게 잡아먹히기만하는 동물은 아닙니다. 한번에 최고 3m까지 점프할 정도로 순발력이 뛰어나며 고속질주 할 경우 한 번에 10m거리를 훌쩍 멀리뛸 수 있습니다. 매년 짝짓기철에는 늠름한 뿔을 가진 수컷이 여러마리의 암컷과 짝을 지으며 번식을 합니다. 6~7개월여의 임신 기간 끝에 한 배에 통상 한 마리만 낳죠. 초록이 풍성한 나날에 태어나야 마음껏 어미젖과 풀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우기 첫 비가 온 다음에 임팔라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출산을 해요.

표범이 사냥한 임팔라 사체를 두고 표범과 하이에나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Latest Sightings

이 생명 탄생의 계절은 또한 잔혹한 살육의 계절이기도 하죠. 사바나 왕국의 포식자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때만큼 쉽게 사냥하고 영양분을 듬뿍 섭취하는 계절을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는 걸요. 놈들은 본능적으로 임팔라들을 공략합니다. 이제 막 몸을 푼 어미의 눈앞에서 가녀린 새끼를 나꿔채가는 건 다반사입니다. 기력이 아직 쇠한 어미 임팔라도 손쉬운 공략대상이 됩니다. 가장 잔혹한 목불인견은 바로 출산 직전 만삭의 임팔라를 공격한 뒤 숨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포식하는 장면입니다. 하이에나, 표범, 리카온 등 비교적 체급차가 적게 나는 맹수들이 사냥당해 피투성이가 된 임팔라의 몸뚱이를 두고 살벌한 쟁투를 벌이기도 합니다. 이 맹수들의 피의 살육잔치에 영장류인 개코원숭이도 가담합니다. 임팔라의 가련한 운명을 보여주는 유튜브 동영상(Latest Sightings) 한 편 보실까요?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임팔라 새끼가 비단구렁이의 습격을 받아 온몸이 옥죄어지면서 결국 뱀의 위장속으로 삼켜질 운명에 처합니다. 이 현장을 급습한 하이에나가 끈덕지게 뱀을 성가시게 군 끝에 결국 쫓아버린뒤 임팔라 사체를 포획하는 장면입니다. 치타나 표범의 경우 전리품으로 챙긴 임팔라 새끼를 살육하지 않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목덜미를 물고 숨통을 끊기도 합니다. 임팔라 새끼 입장에선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치타에게 산채로 붙잡혀 노리개 취급을 당하다 결국 먹잇감으로 희생되는 임팔라 새끼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Sanjeev Mishra)입니다.

수컷 임팔라에게는 암컷에는 없는 늠름한 뿔이 돋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느 초식동물에 비해 왜소한 몸집의 탓이기도 하겠지만, 이 뿔이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의 역할을 그닥 잘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뿔이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우람한 뿔을 머리에 이고 물을 마시던 수컷 임팔라가 귀신처럼 다가온 악어에게 가혹하게 사냥당하는 장면을 담은 냇지오와일드 유튜브 동영상입니다.

주위를 수차례 두리번거리면서 물을 마실 정도로 수컷 임팔라는 조심성이 남달랐습니다. 하지만, 스텔스기처럼 다가온 악어의 주둥이는 정확히 수컷 임팔라의 뿔 밑동 부분을 공략했습니다. 이 임팔라가 뿔이 없는 암컷이었다면 간발의 차이로 죽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턱힘으로 뿔을 공략한 악어는 임팔라의 몸뚱이를 바닥에 패대기치면서 회복불능의 치명상을 입힌 뒤 여유있게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임팔라들은 맹수들의 먹잇감으로 힘겹게 생을 마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대자연의 생명의 바퀴를 묵묵히 굴려가는 그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면서 만일 다음 삶이란게 있다면, 내노라하는 포식자로 환생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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