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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설인 예티, 북미대륙의 숲사람 사스콰치, 뚱뚱한 뱀을 닮은 일본의 요괴 쓰치노코 실체가 발견된 적은 없지만 언제나 사람들의 뇌리에 존재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해온 전설의 괴물들입니다. 그 괴물집단의 정점에 네시가 있죠. 기다란 목을 수면에 내밀고 유유히 헤엄쳐가는 이 괴수는 지금까지 시공을 초월해 정말 많은 목격담이 전해져오지만 정작 실체가 확인된 적은 한번도 없지요. 네시라는 말의 원이 된 곳은 영국의 네스호지만, 기다란 목을 하고 호수나 바다에 사는 괴수를 총칭하는 이름이 됐죠. 만일 네시의 실체가 있다면, 그 옛날 지구의 바다를 휘젓던 고대 파충류 플레시오사우루스의 후손쯤 될 것으로 추정될 뿐입니다. 그런데 이 네시의 실체와 관련한 아주 흥미로운 기사가 눈길을 끕니다.
지난해 남성건강지 멘즈헬스에 해양생물학자 마이클 스위트의 주장이 소개됐습니다. 우리가 네시로 알고 있는 그 해양괴수가 사실은 다른 물체에 대한 착시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착시의 대상인 고래 수컷의 생식 기관이라는 주장입니다. 스위트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네시를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 유명한 흑백사진과 실제 고래 생식기관을 나란히 비교해 소셜미디어에 올려놓았습니다. 수면위로 나온 네시의 기다란 작은 머리로 추정되는 사진과 실제 고래의 신체 부위의 모양이 정말로 빼닮았습니다. 흑백으로 돼있는 옛 사진의 실제 색깔을 가늠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릴 법도 해요. 스위트 교수는 지금까지 숱하게 알려졌던 바다괴수의 전설의 실체는 대부분 돌출된 수컷고래의 생식기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단언합니다. ‘네시의 실체’로 제시된 고래의 생식기관은 그런데 왜 수면위로 드러내 촉수처럼 날름거리는 걸까요? 그건 고래의 생식기관만큼이나 기이함 투성이인 고래의 짝짓기 습성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지능과 감성이 인간만큼이나 높다고 알려진 고래이지만, 평생 바다에서의 삶을 선택한 진화노선을 걸은만큼 신체의 모든 부위와 생활 습성은 바다생활에 맞게 변모했습니다. 그건 2세를 번식하기 위한 짝짓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래는 돌고래·이빨고래·수염고래 등 사는 곳이나 먹이에 따라 형태도 생활 습성도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비슷한 형태의 짝짓기 습성을 갖고 있어요. 여느 포유동물처럼 암컷과 수컷이 한마리씩 짝을 맺는 것도 아니고, 힘센 수컷이 치열한 경쟁 끝에 여러마리의 암컷을 상대로 삼는 것도 아닙니다. 한마리의 암컷을 두고 여러마리의 수컷이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번갈아가며 짝을 짓습니다. 그 경쟁의 과정에서 다른 동물에게서 볼 수 없는 습성이 돌출합니다. 일부 해양생물학자들이 고래류의 번식 습성을 ‘난교’라고 부르는 까닭입니다. 그러면서 고래의 번식행태를 절대로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되며, 판단할 수도 없다고 당부합니다.
일부 대형 고래의 경우 수컷 생식 기관의 길이만 4m가 넘습니다. 이런 거대한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자연다큐멘터리 등에서 볼 수 없는 까닭은, 평소에 몸 안쪽에 코일처럼 말려있다가 번식기 시즌이 돼서 호르몬이 충천할 때 비로소 몸밖으로 돌출되기 때문이죠. 고래가 대부분 육상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덩치를 가졌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생식 기관을 가진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호주 시드니 UNSW 대학의 트레이시 로저스 교수는 “수컷들과 치열한 짝짓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든 고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고래의 짝짓기는 대략 다음과 같은 형태로 진행됩니다.
한마리 암컷 고래를 파트너로 삼으려는 십여마리의 수컷 고래들이 몰려듭니다. 이 과정에서 수컷끼리 치열한 힘싸움을 벌입니다. 그 수컷들끼리 싸우는 혈투 현장은 핏빛으로 물드는게 아니라 뿌옇게 안개처럼 한치앞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서로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몸속에 비축해두고 있던 정자가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일컬어 고래들이 벌이는 정자 경쟁(sperm competition)이라고 합니다. 온몸의 에너지를 짜내어 격렬히 진행되는 향유고래의 짝짓기 장면을 담은 BBC 어스 동영상 잠시 보실까요?
그 격렬한 과정을 통해 서열을 정하고 승패가 나뉘고, 본격적인 짝짓기에 들어가는데, 육상의 포유동물처럼 힘센 한놈이 유일한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수컷이 자신의 유전자를 암컷의 몸안에 주입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본격적인 짝짓기 전의 격렬한 투쟁부터 정자를 방출하는 신체적 특성상, 고래는 정자 생성 기관이 역시 다른 포유동물 수컷에 비해 신체 내 비중이 훨씬 큰 편입니다. 가령 참고래류의 경우 신체 내 고환의 비중은 전체 몸무게의 3~4%라고 해요. 그런데 이 비중을 사람 몸뚱어리에 그대로 대입하면, 일반 성인 남성에서 몸무게가 3.5㎏에 해당한다는 얘기입니다. 로저스 교수는 “실제 저런 사례가 있다면, 속옷을 제대로 입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난교’라고 불리는 이 같은 고래의 번식 방법은 하지만, 새끼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메커니즘도 발휘합니다.
가령 최근 수족관에 살던 개체 ‘비봉이’의 방류로 뉴스에 나왔던 제주남방큰돌고래의 경우 이른바 ‘정자 경쟁’을 펼치지는 않지만, 수컷 여러마리가 경쟁적으로 짝을 짓다보니 정작 암컷이 잉태한 새끼의 ‘씨’가 누구것인지 알 수 없게 되는 모호한 상황이 됩니다. 이 같은 모호함은 수컷이 어린 새끼를 적대시해 해치는 일을 원천차단하게됩니다. 고래가 단순히 2세 번식만을 목표로 하지 않고 쾌락 그 자체를 탐닉하고 있다는 징후도 포착됐습니다. 희귀 민물고래인 아마존 강돌고래가 뱀을 잡은 뒤 온몸에 칭칭 감으며 성적 흥분 상태를 보였던 것이 대표적 사례죠.
고래는 높은 지능만큼이나 행동 양태가 복잡하고 여전히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해양생태 연구자들에게 고래의 성(性)은 치명적인 마력을 가진 마법의 성(城)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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