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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carnival), 축제라는 뜻이죠. 이 단어를 되뇌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흥겹고 설레고 즐거워질 듯 합니다. 그런데 한글발음은 똑같은데 영어표기는 다른 또 하나의 카니발(cannibal)이 있어요. 같은 무리를 먹을 거리로 삼는다는 뜻의 동족포식입니다. 사람의 경우는 식인풍습이겠죠. 섬뜩하고 소름끼치지만, 포식자에게는 한편으로 든든히 배를 치우는 또 하나의 축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 카니발리즘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짧은 동영상이 올라와 화제입니다. 먼저 인스타그램 ‘naturematata’에 최근 소개된 짧은 동영상을 보실까요?
몸뚱이의 반이 싹둑 잘려나가, 피와 뼈, 거죽이 뭉뚱그려져 붉은 곤죽이 된 절단면이 그대로 드러난 고깃덩이를 수컷 사자가 물고 어디론가 갈 참입니다. 남은 몸뚱이 반의 끄트머리에는 눈코입이 온전한 머리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머리의 주인공이 얼룩말, 누, 임팔라처럼 통상적인 사자의 메뉴라면 하등 특이할 게 없겠습니다. 문제는 이 사체가 같은 동족인 사자라는 것이죠. 덥수룩한 갈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암컷 혹은 아주 어린 수컷으로 보입니다. 불과 몇시간전까지만 해도 백수의 왕의 일원으로 사바나를 활보하던 이 가련한 사자는 이제 정육점 고깃덩이 같은 신세로 동족들의 영양분으로 갈갈이 찢기고 소화돼 종내에는 사바나 토지를 비옥하게 할 거름이 될 처지입니다. 동영상에는 수컷 사자를 무심히 쳐다보는 다른 암사자도 등장합니다. 도대체 이 사자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추측해보지만, 다만 결론만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사자도 사자를 먹는다는 것이죠.
사실 동물세계에서 동족포식은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닙니다. 특히 사람의 기준으로 진화가 덜 되고 미개한 동물일수록 동족포식은 강한 혈통만이 경쟁을 거쳐 살아남는다는 생존 법칙에 충실한 수단으로 인식됩니다. 이런 동족포식은 척추동물인 물고기·양서류·파충류와 새에게서까지 일부 나타났습니다. 언뜻 잔혹해보이고 비정해보이긴 해도 야생 생존력이 약한 개체가 일찌감치 경쟁에서 탈락해 조금이라도 강한 동족의 생존을 위한 영양분으로 활용된다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야생, 그리고 짐승의 기준에서 말입니다.
이런 동족포식의 습성이 젖먹이동물, 그것도 백수의 제왕이라고 칭해지는 사자에게도 있다는 사실은 낯설고도 기괴합니다. 치열한 권력 투쟁으로 새로운 우두머리에 등극한 수사자와 그 일파들이 자신들의 씨를 뿌리기 위해 아비를 잃은 새끼들을 모조리 물어죽이고는 피의 참극은 사자 세계의 유명한 서사입니다. 이 과정에서 더러 죽은 새끼를 먹어치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죠. 하지만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사자 카니발리즘은 이런 투쟁의 우발적 산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사자가 사자를 직접 사냥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 보츠와나의 고급 사파리 롯지인 ‘선사파리’ 블로그에 생생한 사자의 카니발리즘 목격 및 분석글이 올라와서 소개합니다. 2013년 여름, 사파리 가이드 올레 프리드는 아프리카의 야생천국인 오카방고 삼각주 부근에서 가이드 일에 종사하던 20년동안 본적이 없었던 기이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젊은 수사자 네 마리가 영역 분쟁 상대였던 라이벌 무리에 속한 암사자 한 마리를 덮쳤습니다. 라이온킹의 심바 무리와 스카 무리의 충돌처럼 영역지배권 확보를 위한 싸움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사자들은 쓰러뜨린 암사자를 그자리에서 먹어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목덜미를 물어 숨통을 끊지도 않은 채로요. 고통에 울부짖는 암사자의 절규에 아랑곳않고 산채로 내장과 피를 탐식했습니다. 더욱 낯선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동족포식에 나선 수사자들과 같은 무리에 속해있던 암사자 두 마리가 이 피의 성찬에 합류한 것입니다. 자신의 몸뚱아리가 산채로 뜯어먹히는 순간까지 최후의 숨을 몰아쉬던 암사자의 우아한 자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몇 개의 뼈조각만 뒹굴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자의 동족포식행동은 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마포고스(Mapogos)라는 이름이 붙은 사자집단이 악명높았어요. 수컷 여섯마리로 구성된 이 집단은 특히 수많은 암사자들을 습격해 살해한뒤 먹어치웠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영역 지배권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강압적인 짝짓기도 일삼았고요. 악마와 괴물과 야수를 합친 듯한 악랄하고 섬뜩한 존재로 보입니다. 이 외에도 사자가 사자를 사냥해 먹어치웠다는 목격담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이 같은 동족포식을 변태적 성향, 또는 기이한 습성으로 분류해야 할까요? 그렇게 재단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대대손손 내려온 생존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는 거예요.
사자의 일생은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 상대방의 것을 빼앗으려는 투쟁으로 굴러갑니다. 선과 악도 없습니다. 그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거죠. 그 과정에서 동족포식은 일석삼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첫째 상대방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하면서 넓힐 수 있게 됩니다. 둘째 외연이 넓어지면서 하이에나나 표범 등 다른 맹수들의 입지를 함께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셋째 갓잡은 고기의 피와 살 내장은 사자의 든든한 영양분입니다. 그 고깃덩이가 동족일지언정 말이죠. 지금은 드물게 나타나는 이 같은 생존전략이 특수한 환경을 벗어나 사자집단 전반으로 확산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사자 집단 내에는 또 다른 형식의 동족포식이 있습니다. 어린 새끼가 죽으면 어미가 바로 먹어치우는 것인데, 이는 같은 고양잇과 맹수인 표범에게서도 발견되는 특징입니다. 이 역시 일견 비정해보이지만, 죽은 사체의 냄새를 맡고 하이에나 등이 몰려드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지친 어미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주며, 마지막으로 어미가 다음 짝짓기 준비 등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게 촉진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백수의 왕 소리를 들으며 살아간다는게 정말 여간 피곤하고 힘든게 아닐테죠. 인격을 갖춘 인간 사회에서 본능에 치받고 날뛰는 짐승들의 세상을 구경하는 관찰자의 위치라는 점이 그저 다행스러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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