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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Bongo)라는 말을 들으면 뭐가 생각나시나요? 생전 처음 듣는 단어인 분도 있겠지만, 취향과 나이 등에 따라서 저마다 생각나는게 다를 것 같습니다. 우선 자동차 봉고를 떠올리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지금도 생산되는 트럭의 브랜드이지만, 1980~90년대에 봉고는 말 그대로 국민승합차였습니다. 앞은 살짝 둥그렇게 디자인된 직사각형 차체에 많게는 열 두명까지 탈 수 있는 승합차 말이죠.
봉고라는 이름이 워낙 강렬하게 각인되다보니 다른 회사에서 나온 비슷한 승합차들도 봉고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잠실에 있는 한 실내유원지에 있는 스페인해적선을 다들 ‘바이킹’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이치지요. 우선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옛날 봉고 TV광고 장면 보실까요?
그 다음으로 알려진 봉고는 아마도 서아프리카 나라 가봉의 대통령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은 낯선 나라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가봉은 남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입지를 넓히기 위해 치열한 제3세계 외교 경쟁을 펼칠 때 한국을 줄곧 지원했던 정말 고마운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1967년부터 지금까지 봉고 대통령 부자가 대를 이어 통치하고 있어요. 아버지 오마르 봉고 대통령이 200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집권했고,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아들 알리 봉고 온딤바가 당선돼 지금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아프리카 외교의 구심점 역할을 한 나라인만큼, 정상외교도 활발하게 진행됐어요.
아버지 봉고 대통령은 1975년, 1984년, 1996년, 2007년 네 차례 한국을 찾아서 각각 박정희·전두환·김영삼·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으니,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들 봉고 대통령 역시 이명박 대통령 시기이던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 한국을 찾았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지식이 전반적으로 깊지 않다보니 ‘가봉의 봉고 대통령인지, 봉고의 가봉 대통령인지 헷갈린다’는 농담도 나왔었죠. 위 사진은 봉고 대통령의 방한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대한뉴스 화면입니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봉고는 한 쌍으로 이뤄지고, 손으로 두드리는 북으로 알려져있을 것입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리듬이 혼합된 아프로 쿠반 음악의 대표적 악기죠. 우리나라 뮤지션들이 음반을 녹음하거나 라이브 연주를 할 때 봉고 리듬을 곁들이는 것도 낯설지 않은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런 봉고도 있었는지 아시는 분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짐승 ‘봉고’입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영양 중에서도 전설로 꼽히는 멋진 녀석입니다. 우선 위풍당당한 사진부터 보실까요?
짙은 갈색에 흰줄이 선명하게 그어진 이 영양이 바로 봉고입니다. 옆으로 휘었다 끝으로 모인 뿔의 모양은 마치 두 손을 모은 듯한 아름다운 곡선이 인상적이죠.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자라고 있는 이 암컷 봉고의 이름은 ‘스티비’입니다. 갈색과 검은색으로 덮인 배 안에서는 지금 어미를 쏙 빼닮은 아기가 자라나고 있어요 올 봄이 끝날때즈음 2세가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동물원 산부인과 의료진의 집중 케어를 받고 있는 이 봉고가 낳을 새끼는 안타깝게도 유복자입니다. 올초 아비인 ‘보’가 세상을 떠났거든요.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귀하디 귀한 봉고의 대를 잇게 됐습니다.
아프리카는 영양의 왕국입니다. 이들을 사냥하는 사자와 표범 등이 주인공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숫적으로 압도하는 것은 단연 영양들이죠. 그 덕에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고요. 임팔라·누·가젤 등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익숙한 사바나의 영양말고도 여전히 생태가 베일에 가려진 전설적인 영양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봉고예요. 늠름한 몸집과 우람한 뿔, 강인한 인상을 주는 몸색깔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을 매혹시켜왔지만, 사는 곳이 울창한 열대 우림이다보니 생태 대부분은 미스터리입니다.
봉고 대통령이 통치하는 가봉을 비롯해 카메룬·콩고·콩고민주공화국·중앙아프리카공화국·가나·코트디부아르·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기니 등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극소수가 케냐 일부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고요. 봉고의 주 서식지인 서아프리카는, 동아프리카나 남아프리카에 비해서 동물의 왕국이라는 색채는 옅지만, 너른 사바나대신 신비감이 감도는 울창한 정글이 있습니다. 그 정글 안에는 아직도 인간의 눈에 띄지 않은 미기록종들이 먹고 먹히고 있을 것입니다. 봉고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그 어떤 영양보다도 빽빽한 정글을 주 서식지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몸통길이가 최장 2.5m이고, 어깨높이가 1.3m이니 아담한 몸집이라고는 할 수 없죠. 그래도 숲속생활에 훌륭하게 적응했어요. 그 적응의 증거는 봉고 대부분의 등 앞쪽 부분에 나있는 듬성듬성한 탈모의 흔적입니다.
스트레스성 탈모가 아니랍니다. 봉고는 빽빽한 숲속을 신속하게 이동할 때 본능적으로 목을 젖히고 뿔을 뒤로 뉘입니다.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옴짝달싹하게 되는 걸 막으려는 본능적 동작이죠. 그 동작을 취할 때 날카로운 뿔의 끝이 등의 앞부분과 맞닿습니다. 자연스럽게 해당 부분은 털이 빠지게 되는 것이죠. 제 어깨높이보다 높은 1.5m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순발력도 뛰어납니다. 봉고의 학명은 Tragelaphus euryceros 인데요. 영양 중에서도 Tragelaphus으로 학명이 시작하는 무리들은 대체로 기하학적으로 아름다운 뿔과 탄탄한 몸집을 자랑합니다. 수컷끼리 싸우다 뿔이 걸려 육식동물 밥이 되는 비극을 연출하는 쿠두, ‘숲의 사슴’이라는 뜻의 부시벅, 영양 중 가장 커다란 몸집을 자랑하는 일런드 등이 속합니다.
영양은 소과입니다. 그말인즉슨, 고기도 소고기맛에 가까울 공산이 크다는 거죠. 그래서 봉고도 다른 동족들과 마찬가지로 멋진 뿔과 고기를 탐내는 인간의 공략에 멸종위기에 놓여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세계에 동물원에 비교적 골고루 분포해있는 편이라서 종과 혈통 보전이 끊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거죠.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것은 이 전설의 숲짐승이 아름다운 뿔을 뒤로 젖히고 열대우림을 바람처럼 돌아다니는 장면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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