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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이 원숭이인가’는 해묵은 논쟁거리입니다. 영어도 APE라 하여 일반적인 원숭이류(MONKEY)와 구분하고 있는만큼 별개의 종류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죠. 반면 유인원(類人猿)의 원(猿)은 넓은 의미로 영장류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에 원숭이의 한 종류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물론 사람도 원숭이의 한 종류라는 전제가 깔리지요. 이렇게 유인원의 정의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것은 이들이 사람과 닮아도 너무 닮았고, 가까워도 정말 가깝기 때문이지요. 인간의 금도를 넘은 최악의 막장 실험이 있다면, 그건 인간과 유인원의 교배실험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그래서 나옵니다. 오늘은 너무나 인간적인, 그래서 이 족속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 궁금증이 더해지는 사진으로 시작합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습니까? 엄마 미소란 아마도 이런 것일테지요. 미국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의 암컷 고릴라 카얄라가 갓난 딸 자흐라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정말 사람 같습니다. 고릴라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기에 세계적 경사입니다. 동물원은 스와힐리어로 예쁜 꽃이라는 뜻의 ‘자흐라’, 그리고 강렬하다는 뜻의 ‘음칼리’, 요루바어로 위대하다는 뜻의 ‘롤라’를 후보로 해서 온라인 작명투표를 벌였는데, 압도적인 표차로 ‘자흐라’가 선정됐다고 합니다. 이 꽃처럼 아름다운 고릴라는 어미와 사육사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고, 나이가 차면 아마도 전세계 동물원들이 협력해서 진행하고 있는 번식 프로그램에 따라 건강한 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선조들의 고향인 콩고민주공화국이나 르완다의 울창한 열대 우림에서는 살지 못하겠지만, 동물원의 울타리라는 보호 공간안에서 가능한 천수를 누릴 것입니다.
고릴라는 우람하고 당당한 덩치와 사람과 빼닮은 얼굴 표정 등으로 오래전부터 영화와 소설 등을 통해 인간미 가득 넘치는 야수로 그려져왔습니다. 수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킹콩이 대표적이고요. ‘쥬라기 공원’의 원작자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로 역시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진 ‘콩고’에서도, 인간의 애완 고릴라가 전설의 다이아몬드를 지키는 초사이언 고릴라들과 맞닥뜨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에서는 사납고 터프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아프리카 열대우림에서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아가는 유인원입니다. 위협을 느끼면 가슴을 세차게 두들기거나 무섭게 울부짖는 습성 때문에, 성질이 드셀 것이라는 첫인상을 갖게 된 거죠. 킹콩 역시 고릴라의 공격적인 모습에서 모티브를 따왔을테죠.
고릴라는 유인원 4대 문파(고릴라·오랑우탄·침팬지·긴팔원숭이)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큽니다. 얼굴을 포함해 온몸이 어두컴컴한 색이다보니 상대적으로 강인한 인상을 안겨주죠. 하지만 식성만큼은 채식 위주입니다. 샐러리, 죽순, 나뭇잎을 주로 먹되 간혹 간식거리로 개미나 흰개미등을 곁들이죠. 같은 유인원인 침팬지가 종종 원숭이를 사냥해서 피와 살로 양분을 채우고, 오랑우탄·긴팔원숭이가 새알도 종종 섭식하는 것과 확연히 대비됩니다.
유인원의 4대 문파를 찬찬히 뜯어보면, 고릴라·오랑우탄·침팬지와 함께, ‘아 저놈도 유인원이였나’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긴팔원숭이가 있는데요. 실제로 유인원들의 족보를 따져보면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약 2500만년전에 지구상에 살았던 프로콘슬이라는 고대 유인원이 사람·고릴라·침팬지·오랑우탄의 조상입니다. 학자와 학설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통설에 따르면 이 프로콘슬에서 세 갈래가 갈라지는데요. 첫번째가 오랑우탄, 두번째가 나중에 둘로 갈라지는 고릴라·침팬지의 공통조상, 나머지 세번째 갈래가 라마피테쿠스라는 고대 유인원입니다. 라마피테쿠스는 최초의 직립보행 화석인류로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현생 인류의 뿌리이기도 하죠. 반면 긴팔원숭이는 프로콘슬이 생겨나기 전에 이미 독자적으로 갈라져나갔어요.
유인원은 유인원이 아닌 원숭이와 확연히 구분되는 몇가지 특징이 있어요. 우선 얼굴에 털이 나있지 않고 꼬리도 없습니다. 걸을 때는 직립보행까지는 아니어도 몸을 비스듬하게 세우고 걸어다다녀 손을 앞발처럼 해서 이동하는 여타 원숭이들과 구별되죠.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드러나는 특징이 또 있습니다. 기다란 팔이 축 늘어지나디시피해서 땅에 닿은 채로 이동할 때가 많은데요. 이 때 손바닥으로 땅을 짚는게 아니라, 손가락을 구부려 손등이 땅에 닿도록 합니다.
진화한 동물일수록 수컷과 암컷의 외형상 구분이 더욱 또렷해진다는 통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수컷은 수컷답게, 암컷은 암컷답게인데요. 유인원 중에서 오랑우탄과 고릴라가 특히 두드러집니다. 오랑우탄의 경우 수컷은 나이가 들수록 볼의 양옆이 빵빵하게 부풀어오르기 시작해 마치 외계생물체 같은 독특한 느낌을 안겨주죠. 고릴라는 조금 우아하게 자신의 ‘수컷다움’을 드러내지요. ‘실버백’이라고 알려진 은빛의 등입니다. 고릴라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사회입니다. 가장 역할을 하는 수컷 한 마리가 암컷과 새끼들로 이뤄진 무리를 이끌죠. 이 가장 격의 수컷 고릴라의 등은 신비로운 빛이 감도는 은색입니다. 어찌보면 위험한 것 투성이인 정글에서 그만큼 오랜 세월을 버티고 살아낸 훈장처럼 은은하게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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