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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한 사람이 너무 유명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도시까지 인지도를 높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가 바로 그런 곳이죠. 세계적인 투자자이자 억만장자인 워런 버핏이 나고 자랐으며 지금도 살고 있는 곳. 그가 이끌고 있는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 총회가 열리는 매년 봄이 되면, 이 투자의 귀재가 어떤 말을 할지에 대해 전세계가 귀를 쫑긋 세웁니다. 워런 버핏 관련 사안이 아니라면 좀처럼 바깥 세상이 관심을 가질 일이 없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 오마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총으로 무장한 경찰의 순찰이 잦아졌고, 지역 매체들은 ‘조심하라’는 경고성 안내를 쏟아냅니다. 폭동이라도 발생한 걸까요? 주민들을 긴장시키는 건 사람이 아닌 고양잇과 맹수 퓨마입니다.

미국에선 '산사자'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퓨마. 이름처럼 사자와 빼닮았다. 북미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인구가 밀집한 도시에서 발견되는 일은 이례적이다. /CA Department of Fish and Game

오마하가 자리잡은 네브래스카주는 대평원으로 불리는 미국 중서부에 위치해있습니다. 험준한 산도, 깊은 강도, 우거진 정글도 없는 평탄한 지형이죠. 옥수수를 키우고 소가 풀을 뜯는 목초지대가 한없이 펼쳐져있습니다. 대형 야생동물이 터잡고 살기가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에요. 게다가 오마하는 인구 50만이 넘는 제법 큰 도시입니다. 그런 곳에 갑자기 퓨마가 나타났다고 생각해보세요.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그런데 종적이 묘연하다고 생각해보세요. 뒷골이 땡깁니다.

오마하를 공포로 몰아넣은 퓨마의 존재가 확인된 건 지난달 24일입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월요일 새벽. 도시 서남부 주택가에 있는 한 집에 현관 방범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말끔하게 정돈된 주택가, 주차된 차들 사이로 검은 실루엣을 한, 매혹적인 자태의 맹수가 여유롭게 지나갑니다. 퓨마가 걸어갈 때 새까만 밤하늘은 천둥번개로 번쩍입니다. 이 방범 카메라 영상이 지역 언론에 공개되면서 온 도시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지역 경찰과 네브래스카주 수렵·야생 당국은 주민들이 평생 접할일이 없었던 ‘퓨마와 만났을 때 대처법’ 같은 안내문을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과 수렵당국이 샅샅이 수색에 나섰습니다. 방범 카메라에 살짝 모습을 드러낸 뒤 종적이 묘연했던 퓨마는 나흘 뒤인 금요일(28일) 다시 방범 카메라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첫 발견된 지점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검은 실루엣만 보였던 첫번째 동영상과 달리 이번에는 퓨마 특유의 갈색 몸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한가로운 주말을 기다리고 있던 지역사회는 멘붕에 빠집니다.

퓨마는 험준한 산악지대부터 평원까지 다양한 지형에 적응해서 살고 있다. /Lynn Chamberlain, Utah Division of Wildlife Resources

그 공포감이 가실새라 바로 다음날 세번째 목격담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도 첫번째와 두번째 지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주택가. 인적 끊긴 주택가를 귀신처럼 재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영상장면을 통해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습니다. 최소 한 마리의 퓨마가 1주일 동안 주택과 학교, 쇼핑센터 등이 밀접한 도시 서부를 활보하고 있다는 것이죠. 최악의 상황은 세 개의 동영상에 등장하는 퓨마가 제각각일 경우입니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퓨마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그래서 더 무서운 실존적 공포입니다. 긴급한 상황에서 경찰은 확고한 원칙을 세웠습니다. ‘보는 즉시 사살’. 일견 냉정하게도 보일 수 있으나, 퓨마란 녀석의 습성을 알고 나면, 그런 조치에 납득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주얼 케이브 국립 기념물 부근에서 밤 시간에 이동하는 퓨마 가족의 모습이 포착됐다. /National Park Service Photo

우리에겐 ‘퓨마’로 익숙하지만, 이 짐승은 ‘쿠거’라도고 하고, 미국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이름은 ‘산에 사는 사자’라는 뜻의 ‘마운틴 라이온’입니다. 어쩌면 ‘산사자’라는 말이 이 짐승의 속성을 가장 온전하게 담은 명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판 백수의 왕이라는 얘기죠. 머리몸통길이는 최장 1.6m, 꼬리길이는 최장 65㎝입니다. 사자·호랑이·표범·치타·재규어 등과 함께 메이저급 고양잇과 맹수입니다. 고양잇과는 신체구조와 습성에 따라 크게 큰고양이류와 작은고양이류로 나뉩니다. 사자·호랑이·표범·치타·재규어 등이 큰고양이류에 속하죠. 반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고양이들이 작은고양이류인데요. 퓨마는 작은고양이류 중 최대 맹수입니다. 사람의 시선을 기준으로 분류하는게 얼마나 의미없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죠. ‘산사자’라는 이름처럼 사자를 빼닮은 습성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생김새 자체가 암사자와 빼닮았어요. 새끼 때 몸에 얼룩무늬가 있다가 자라면서 없어지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데 어찌보면 사자를 능가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새끼 퓨마는 새끼 사자와 마찬가지로 몸에 점박이 무늬가 있지만, 자라면서 없어진다. /National Park Service

점프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해요. 멀리 뛸 때 한번 건너뛰는게 7m는 거뜬히 넘습니다. 뭔가 작정하고 뛰면 한 번에 13m까지 휙 뛰어넘습니다. 이런 탄력성 덕분에 먹잇감을 향해 그닥 힘들이지 않고 질주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험준한 산부터, 숲, 초원, 사막 등 어떤 기후와 지형에도 완벽하게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호랑이나 표범의 주특기인 숲속에서의 매복공격부터, 사자와 치타의 필살기인 열린 공간에서의 추적사냥까지 모두 능숙하게 실행합니다. 남미 칠레에 살고 있는 퓨마가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과나코에 달려들어 결국에는 쓰러뜨리는 동영상을 잠깐 보시겠습니다.

연속되는 발길질에도 수 차례 나가떨어질듯했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고 목을 공략하던 놈은 기어코 과나코를 쓰러뜨립니다. 이 끈질긴 사냥의 대가로 피비린내나는 낙타고기성찬이 펼쳐졌을 것이고, 남은 사체찌꺼기는 콘도르의 몫이 됐겠죠. 이렇듯 퓨마의 식탁은 오로지 육식입니다. 기후와 지형, 여건에 따라 덩치 큰 말코손바닥사슴부터 다람쥐까지 살아움직이는 것들을 잡아 숨통을 끊고 살점과 내장을 뜯어냅니다. 잡식을 하는 곰과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죠. 이런 습성을 가진 퓨마와 마주쳤을 때 사람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이 안내하는 가이드의 일부 내용입니다.

-혼자 등산하지 말 것

-마주치면 도망치지 말 것

-아이가 있으면 안을 것

-몸을 수그리거나 앉지 말 것

-최대한 몸을 크게 보이게 할 것

-이도 저도 안되면 맞서 싸울 것

이 모든 조항은, ‘다른 모든 짐승과 마찬가지로 퓨마도 사람을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만만해보일 경우 덤벼들어 죽이려 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짜여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1890년부터 1994년까지 북미지역에서 퓨마가 사람 목숨을 앗아간 누적사례는 13건이었는데, 2022년까지 오면 누적 27건으로 증가합니다. 최근 30여년사이에 갑절로 늘었다는 얘기입니다. 오마하 시 당국은 출몰한 퓨마가 짝을 찾으려는 어린 수컷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마하는 네브래스카의 동쪽 끝에 있지만, 이 주는 서쪽 끝이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품은 와이오밍, 로키산맥으로 유명한 콜로라도와 맞닿아있습니다. 험준한 산에서 내려온 놈이 옥수수밭과 황무지를 지나서 도시까지 접어들었을 수 있는 거죠. 중간 중간 다람쥐나 프레리도그 등을 사냥해 그럭저럭 배는 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경찰이 보는 즉시 사살의 원칙을 세운 이상, 이 퓨마가 살길은 귀소본능에 이끌려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이 대치 국면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이처럼 인간과 야생짐승의 공존이라는 건 냉정한 현실과 괴리돼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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