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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아침해 떴다 친구 만나러 가자~’
이렇게 시작하는 노랫말에 30대 중반 안팎의 나이대라면 아련하게 추억돋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일요일 오전 공중파 TV의 ‘디즈니 만화동산’으로 어린이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모았던 ‘곰돌이 푸’의 주제가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곰 종류가 있는데, 푸는 어떤 곰일까요? 아메리카 흑곰(이하 흑곰)입니다. 원작자가 런던 동물원에 있던 흑곰 ‘위니’에서 캐릭터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대서양을 건너온 ‘위니’는, 원산지가 캐나다 위니펙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죠. 만화에서 푸는 판다 푸바오보다 이십억배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꿀을 찾아다니고, 딩가 딩가 게으름을 피우고 온갖 농뗑이를 부려도 귀엽다는 이유로 모든게 용서되고, 100에이커 숲(작중 공간)은 평화롭다 못해 따분할 정도입니다. 불행히도 야생의 흑곰들은 그렇지 않답니다. 오늘은 우선 더없이 사나운 운명과 맞닥뜨린 가련한 흑곰의 최후를 담은 동영상부터 보시겠습니다.
캐나다 전역과 미국 일부지역에 걸쳐 사는 흑곰은 잡식성이라곤 해도 당당한 맹수이자 섬뜩한 사냥꾼입니다. 다람쥐나 연어는 물론 때로는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한 산미치광이까지 먹잇감으로 삼을 정도예요. 천하무적일 것 같던 위풍당당한 흑곰이 그러나 사냥감으로 전락하면서 비련의 주인공이 돼버렸습니다. 그것도 같은 곰 패밀리의 대빵급한테 잘못 걸려들었어요. 축 늘어진 흑곰의 몸뚱아리를 사납게 물어뜯는 이 괴수는 불곰의 한 종류인 회색곰(일명 그리즐리)입니다.
축 늘어진 몸뚱아리가 거의 미동도 않는 것으로 봐서, 이미 혼이 빠져나간 사체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비교불능의 절대 우위 피지컬로 압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색곰은 뭐가 불만인지 신경질적으로 흑곰의 몸뚱아리를 물고 뜯고, 할퀴고 짓밟아 뭉갭니다. 수잔 그리피스라는 캐나다 주민이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와 앨버타주 사이 경계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찍은 동영상을 8월 31일에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이 가련한 흑곰이 어쩌다 한낱 고깃덩이가 됐는지, 살육의 직접적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등은 완벽한 파악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동영상을 분석한 수렵잡지 ‘필드 앤 스트림스’를 비롯해 동영상을 본 다수는 흑곰이 회색곰에게 직접 사냥당했으며, 회색곰은 결국 흑곰을 먹어치웠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합니다.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다수의 의견을 종합하면 곰 왕국 내에서 동족 포식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커보인다는 거죠.
북미 최고의 맹수로 나무열매와 풀뿌리부터 시작해서 설치류와 사슴, 연어, 그리고 썩어문드러진 짐승 사체까지 못먹는 것이 없는 회색곰입니다. 성질머리도 거칠고 포악하기로 악명이 자자하죠. 흑곰의 몸뚱이로 추측컨대 아직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어린놈이고, 그래서 나무위로 올라가는 등 신속한 대피 노하우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여요. 흑곰은 그렇게 짧은 삶을 마감했습니다. 반면 푸성귀나 생선쪼가리, 썩어문드러진 뼈에 달라붙은 피딱지 따위에 이골이 나있던 회색곰 입장에선 오랜만에 갓잡은 싱싱한 육고기로 위장을 든든히 채웠을 것입니다. 흑곰의 질긴 살코기와 야들야들한 내장은 회색곰의 월동을 위한 든든한 칼로리가 됐을 것이고요. 그렇게 강한자가 살아남고 살아남는 자가 강한 곳이 야생입니다.
운좋게 휴대전화 액정에 포착된 것일 뿐, 회색곰이 흑곰을 잡아먹는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북미 대륙에 회색곰을 능가할만한 맹수는 없습니다. 회색곰은 늑대가 협업으로 쓰러뜨린 말코손바닥사슴 같은 대형 초식동물도 거뜬히 빼앗아가는 강탈에도 능합니다. 에너지를 덜 소비하고, 먹잇감을 손에 넣는 가성비 높은 사냥에도 일가견이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흑곰굴 습격입니다. 아직 어미의 보호를 받는 가녀린 흑곰 굴을 습격합니다. 어미 흑곰이 눈물겹게 저항해본들 이 잔혹한 습격을 이겨내지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굴안에 들어있는 새끼 숫자만큼 일석이조, 일석삼조, 일석사조가 돼 회색곰의 위장을 든든히 채우는 거예요. 새끼들이 웅크리고 있던 흑곰굴을 회색곰이 습격하는 동영상을 한번 보실까요?
찰나의 차이로 새끼 흑곰들은 날카로운 회색곰 이빨이나 발톱에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분함을 이기지 못한 듯 회색곰이 씨근덕거리며 현장을 빠져나가자 혼비백산한 흑곰 새끼들이 굴을 빠져나와 줄행랑 치는 모습에서 비정하고 냉혹한 야생의 서열정리 규칙이 엿보입니다. 가까스로 생존한 새끼 흑곰들은 살아남는 기술을 연마했을 거예요. 이렇게 새끼 흑곰과 어미가 회색곰의 발톱과 이빨의 사정권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가고 있는데, 아비라는 작자는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불행히도 대다수 곰들의 세상에서 아빠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단지 본능에 따라 씨를 뿌리는 수컷만이 존재할 뿐이죠. 새끼를 뱃속에 품고, 낳아서 키우면서 생존법칙을 가르치는 모든 육아를 암컷이 도맡아합니다. 설사 혈통을 물려받은 아비-새끼 사이라도 야생에서 마주치는 순간 무서운 괴수와 가련한 살육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이 수컷들의 비정함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곰이라는 짐승의 유전자 자체가 그렇게 살아가도록 프로그램돼있거든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곰 족속의 서열을 정리해볼까요? 울트라 캡짱은 뭐니뭐니해도 북극곰입니다. 3m에 육박하는 머리몸통길이와 1.6m에 이르는 어깨높이로 대표되는 절대최강 피지컬에 비례해 파워도 동급 최강입니다. 얼음구멍 사이로 숨을 쉬러 올라오는 물범의 머리를 앞발로 후려쳐 두개골을 박살내 하얀 얼음을 선혈로 물들이는 극강의 사냥법은 다른 곰으로선 흉내조차 내기 어렵습니다. 그 뒤를 따르는 부동의 넘버 투가 회색곰이 속한 불곰입니다. 불곰은 북미와 시베리아와 캄차카반도와 한반도 북부, 유럽과 중앙아시아까지, 곰 중에서 가장 널리 분포해있죠. 특유의 먹성과 포악성으로 전세계 곳곳에서 차마 떠올리기조차 싫은 식인(食人) 사건을 꾸준히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다음이 흑곰이예요. 그러니까 부동의 넘버 쓰리도, 넘버 투의 먹거리로 소비될만큼 급간 파워의 차이가 엄청납니다. 그 아래에는 이들 상급 곰 눈에는 ‘같잖은 곰’처럼 보일 수도 있는 중소형 곰들이 포진해있습니다. 동아시아 특산종인 반달가슴곰, 인도의 토착곰인 느림보곰, 남미 유일의 곰인 안경곰, 벌꿀에 탐닉해 푸와 식성이 빼닮은 말레이곰(태양곰), 그리고 인기만큼은 다른 놈들과 비교 불능인 판다가 있죠. 몸집과 먹성과 전투력과 전체 식사 내에서의 육식의 비중이 대략적으로 정비례합니다.
곰과는 늑대와 여우가 소속된 갯과, 사자·호랑이·표범 등을 아우른 고양잇과,수달·울버린·담비 등이 멤버인 족제빗과와 함께 맹수들의 가문인 식육목의 4대 문파를 형성합니다. 이들의 특징은 문파 내부에서도 동족 포식이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점이예요. 가령 갯과에서 북미의 강자 코요테는 야생에선 여우, 도심근처까지 내려와선 반려견을 채가서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먹어치우곤 합니다. 개가 개를 먹는 거죠. 고양이는 또 어떤가요? 끈질긴 생명력으로 유명한 표범은 초식동물 사냥의 여의치 않을 경우 치타나 서벌처럼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고양잇과 맹수를 곧잘 습격해 자신과 비슷한 무늬의 털가죽을 파헤치고 피와 살을 탐닉합니다. 곰인들 다르겠습니까? 회색곰의 흑곰 포식에 대해 미국 어류야생동물국의 크리스 서빈 박사는 이렇게 단언했어요. “회색곰이 흑곰을 덮치는 목적은 단순합니다. 잡았으니 먹는거죠. 잡아먹는 것은 자연의 한 과정입니다.”
오늘도 야생동물들은 사람이 만들어낸 작중 환상의 세계와 딴판인 지옥도속에서 먹고 먹히는 필생의 싸움을 이어갑니다. 먼 발치서 그 포식자와 피식자의 싸움 구경을 하는 인간의 위치에 있다는 점이 새삼 새롭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야생에서 목숨을 걸고 처절한 생존 투쟁을 벌이는 괴수들의 싸움을 첨단기기로 찍고, 인터넷망으로 전 인류가 공유하는 세상입니다. 피지컬로만 따지면 인간은 앞서 열거한 ‘같잖은 곰’들에게조차 대적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인데 말이죠. 지적 능력과 윤리로 무장해 짐승 세상을 통제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경외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 능력을 바탕으로 자연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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