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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열(李文烈·75)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할 ‘국민 작가(國民 作家)’이다. 29세 때인 1977년 신춘문예로 등단(登壇)한 그는 1979년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1980년대에 <젊은 날의 초상>(1981), <황제를 위하여>(1982),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등으로 문학상을 휩쓸며 한국 문단의 ‘별’이 됐다. 12권짜리 대하(大河)소설 <변경>과 평역(評譯)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를 포함해 90권의 작품을 썼고, 지금까지 팔린 그의 책만 3000만권이 넘는다.
◇좌파에 맞선 우파의 기둥
그는 이른바 1987년 체제 수립 이후 자유우파(自由右派) 목소리를 확실히 내 온 논객형(論客型) 작가이다. 2001년 7월 김대중 정부의 보수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 사찰(査察)을 보며 그는 ‘신문 없는 정부를 원하나’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에 발끈한 좌파 진영은 그해 11월 그의 경기도 이천 집 앞에서 ‘책 장례식’을 열었다. 현존 작가에게 가해진 전무후무(前無後無)한 폭거를 이겨낸 이문열은 2016년 말 탄핵 국면 이후 우파 진영의 보루(堡壘)이자, 기둥으로서 좌파 진영의 창궐(猖獗)에 맞섰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4개월을 맞은 현 상황을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기자는 이런 궁금증을 품고 이달 21일 낮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에 있는 ‘부악문원(負岳文院)’을 찾아가 4시간 가까이 이문열 선생을 만났다. 객사(客舍)를 겸하고 있는 문원에는 50대 작가 5명이 묵으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었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가?
“작년 상반기에 3개월 동안 심하게 앓았다. 사흘은 혼수 상태에 빠졌다. 기억력은 별 영향 없으나 그 이후 기력이 좀 떨어진 상태이다. 담배는 50세에 끊었고 요즘은 술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매일 유심히 세상사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한창 때에는 새벽 4시까지 작업하다가 오전 11시쯤 일어났으나 지금은 오전 2시쯤 취침해 오전 7~8시에 일어난다. 쓰고 싶은 작품은 몇 개 있지만 나이 때문인지 힘이 부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했다.
- 작년 6월말 애지중지하던 물건들을 모아놓은 고향 영양(英陽)의 광산문학연구소가 불에 타 전소됐는데.
“뜻밖의 화재였다. 다행히 최근 경상북도와 영양군이 예산을 들여 재령(載寧) 이씨 문중(門中) 소유의 1300여평 문학연구소 부지를 공시지가(公示地價) 기준으로 매입해 갔다. 그 분들이 새로 문학관을 짓겠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최악은 지났지만 아직 갈 길 멀다”
- 요즘 시국(時局)을 진단한다면?
“지난 몇 시절과 같은 암담했던 최악은 지나갔고 이제 풀려가고 있는 중이라고 본다. 내 개인적으로도 좀 풀린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아직 욕심대로 다 된 것 같진 않다. 더 희망적, 아주 희망적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찌감치 윤석열 후보를 공개 지지했는데.
“윤 대통령은 1980년대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모의재판에서 검사역을 맡아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求刑)했었다. 그때부터 소문으로 나는 그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다. 나름 오래 전부터 주의깊게 봐 왔다. 적어도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보고 망설이지 않고 그를 지지했다.”
◇“선방하는 尹 대통령...점수로는 80점 이상”
- 취임 1년 4개월이 넘은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성적을 점수로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가 내걸고 있는 큰 방향은 옳아 보인다. 정치 초보 치고는 무난하게 잘 하고 있고, 40% 가까운 지지율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선방(善防)하고 있다.”
그의 이어지는 말이다.
“윤 대통령의 뚝심과 끈기, 과단성, 과감성은 인정할 만하다. 민노총 총파업 대응과 한미일(韓美日) 동맹 복원,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대처 등에서 그러하다. 다른 어느 보수 대통령처럼 촛불 시위대에 밀리거나 처량하게 산에 올라가 눈물짓는 모습을 그는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치밀함이 약간 부족한 측면과 인사 풀(pool)이 좁은 점은 보완했으면 한다.”
- 요즘 우리나라 사회를 진단한다면?
“무엇보다 말[言]의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소란스럽고 시끄럽기만 할 뿐 좋은 영향을 주거나 신뢰를 높이는 말이 사라졌다. ‘정자언야(政者言也)’라는 글귀도 있지 않나. 정치는 말이 사실상 전부인데….”
그는 “김대중 대통령 같은 이는 야당(野黨) 시절에도 책을 많이 읽어선지 ‘말을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 어느 야당 대표와 같은 잔인성, 표독성, 사기(詐欺)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치권 전체를 둘러 봐도 여·야 모두에 인물이 없다”고 했다.
◇‘좌파·진보가 곧 正義'라는 착각
- 작년 11월 모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선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대한민국이 제도적으로 망하는 것은 간신히 막았다. 그런데 이게 원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10년 안에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제가 볼 때 사회 분위기상 우리나라의 절반 이상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자기가 좌익(左翼) 활동하는 줄 모르면서 좌익 노릇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좌파·진보가 곧 정의(正義)’라고 자동입력돼 있다는 느낌까지 든다.”
- 사회 전반의 좌경화(左傾化)가 심각한 것 같다.
“나이 든 기성 세대라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나라는 지금 극렬한 간첩 활동만 아니면 좌익에 대해 굉장히 관용하는 사회가 됐다. 예전에 골수 좌익만 하던 발언을 지금은 우리가 예사롭게 듣고 대하는 세상이다. 전체적으로 국민들이 너무 (좌파와 전체주의 위협에) 둔감해져 있다. 그러니 우파적 생각에 투철한 사람들은 더 외골수가 된다. 전체적으로 좌·우파가 극단으로 갈리고 있다.”
◇“좌파와 균형 이루려면 우파 더 대동단결해야”
- 좌파와 우파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 우리 시대에선 우파(右派) 노릇을 하는 게 솔직히 갑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믿는 좌파들을 반(反)국가 세력, 전체주의자라며 이념 전쟁을 벌이고, 자유민주주의 성향을 분명히 하는 것은 위로(慰勞)가 되고 용기있는 행동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자유우파 세력이 작은 의견 차이와 갈등은 접고 큰 차원에서 마음을 모아 대동단결해야 한다.”
- 문재인 정부 5년은 어떤 시대였는가?
“그때부터 언어, 말이 상하기 시작했다. 또 전체주의(全體主義)화가 진행되고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허물어진 시대였다. 전체주의화는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사람들이 거의 감지하지 못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이문열 작가의 아버지는 일제 시대 동경(東京) 농대(農大)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러나 해방후 좌익 활동을 하다가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9월 홀로 월북했다. 이문열 작가의 본명은 ‘열(㤠)’인데, 1948년 출생한 아들에게 아버지가 ‘열렬한 사회주의 투사가 돼라’며 붙인 것이다. 어머니와 이 작가를 포함한 5남매는 ‘빨갱이 가족’이란 딱지를 붙인 채 살았다. 이 작가는 1979년부터 이름 앞에 ‘문(文)’자를 추가해 이문열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북한에 대한 한국의 우위는 ‘자유’”
-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랄까, 여러 감정이 있었을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일부 그랬을 수 있으나 지금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내 스스로 그동안 완전한 자유시민(自由市民)이 됐다는 확신이 든다.”
그는 “북한에 대한 한국의 문화적 우위를 꼽는다면 단연 자유(自由)”라며 이렇게 말했다.
“남북한 교류 건으로 북한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자유가 박탈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70년 넘게 자유민주 진영에 속한 대한민국에는 자유와 민주라는 현대 문명의 가치가 축적돼 있다. 자유에 관한 한 우리는 확실히 북한에 대해 우위에 서 있다. ‘한국이 미국의 졸병(卒兵)’이라는 식의 시각에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 그런데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는 좌파 진영 세상이지 않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내가 많은 작품을 내고 활동했지만, 좌파 진영 문예지인 ‘창작과비평’과는 무관하게 보냈다. 내 작품이 32개국에 25개 언어로 번역돼 팔리고 있지만, 그들이 수십 년동안 나를 거론조차 않고 있어서다.”
◇“문학 소멸할지 모른다는 걱정 들어”
- 그런 점에 억울하거나 서운하지 않는가?
“꼭 그렇게 억울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지하를 비롯해 그쪽의 상당수 사람들과는 잘 지냈다. 항상 문제는 자주(自主)라든가, 평등, 민족을 내세우는 일부 바람잡이들이다. 그렇게 악다구니질할 필요 있을까 싶은데 그런 걸 앞세워 색칠한 깃발 들고 나서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는 “지금 좌파 진영에서도 그들이 특별히 내세우는 작가가 안 보인다. 제대로 활동하는 문학 단체도 없다”며 “전체적으로 이러다간 글로 하는 시대, 즉 문학이 소멸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생각하는 힘이 파편화하고 있다”고 했다.
- 후배 작가들에게 조언한다면?
“두 가지다. 시대는 변해도 문언(文言·글과 말)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문언의 나라이니 거기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라. 또 하나는 우파 작가라고 크게 떠들어 댈 필요는 없지만 각 사안에 대해 우파적 논리로 당당하게 나서면 어떨까 한다. 왼쪽 날개로만 새가 날 수 없듯, 세상에 우파도 꼭 필요하다.”
이 작가는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20~30대는 50~60대와 크게 다르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좌파적 유행이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이나 20~30대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自由)를 체화(體化)한 세대이다. 좌파는 어느 정도 갈 때까지는 괜찮게 보이지만 자기의 빛이나 본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꼭 있다. 자유가 몸에 밴 이들을 좌파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이들은 반공(反共) 교육을 받은 세대가 아니다. 최근 우파 전향을 선언한 50~60세대가 제법 된다. 주사파(主思派)가 우리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진 못하는 것 같다.”
- 그런 점에서 희망을 가질만한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사(史)가 1970년대부터라도 해도 50년이 넘는다. 우리가 겪은 군부 독재는 얼마나 가혹했나? 우리가 쟁취한 자유에 대한 경험도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 그런 우리가 최소한 싸구려 민주주의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 인류사적으로도 최상위 30% 안에 든다. (대학 진학률이 70%대인) 우리나라의 교육 수준은 세계적으로 높다.”
◇“내년 4월 총선은 5% 차이 박빙의 대결”
- 2003년 한나라당 공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전망한다면?
“이겨도 5%, 져도 5%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진짜 박빙(薄氷)일 것이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여러 고비를 잘 극복해야 지금보다 좀 올라갈 수 있다. 윤 대통령에겐 자신에 대한 믿음이랄까, 뿌리 같은 게 있어 보인다. 그래서 야당에게 쉽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 작가는 그러면서 “정책으로 ‘우파가 잘했다’ ‘좌파 정권 보다 지금 정권이 더 낫다’는 거를 증명하고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우파 정치인들은 어떤가?
“그냥 국민의힘 소속 누구로 떠오를 뿐 보수우파 정치인으로 기억나는 사람이 없다. 우파적 신념 체계에 기초한 정치인이 안 보이고, 고만고만한 사람들만 있다. 어떤 공통된 신념과 가치체계를 중심으로 이게 같은 사람들이 뭉쳐 세력을 키우고 확장해야 한다.”
◇“용서와 조화의 세상 언젠가는 오길”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한 월간지에 자전적 대하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를 2017년 시작해 1980년 5월 직전까지 다루다가 2018년 연재를 중단한 상태이다. 이걸 다시 이어 완성하는 일 등 몇 가지 있다. 그런데 작년에 크게 앓고 난 뒤로 글을 제대로 쓸 수 있겠다는 자신(自信)이 들지 않는다.”
- 지금까지 쓴 90권 중 가장 애착가는 작품은?
“모든 작품에 애착이 가지만 하나만 꼽는다면 소설 ‘시인(詩人)’이다. 삿갓 하나 쓰고 세상을 유랑한 전설적인 시인 김삿갓(김병연)의 생애를 상상력으로 소설화했는데, 월북한 아버지를 지우려고 소설로 방황의 세월을 보낸 나에 대한 자전적(自傳的) 스토리이기도 하다. 세계 20여개국에서 번역·출간돼 11개국에서 재판(再版) 이상 발행한 걸로 안다.”
- 추석을 맞아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때 나도 치열하게 살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대립각이 너무 날카로와 서로에게 상처를 많이 주고 있다. 살아보니 좌우(左右) 이데올로기 구호나 깃발이 아니고 어떤 체화(體化)된 믿음과 가치가 우리 사회에 너그럽게 자리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용서하고 관대하며 조화를 이루는 그런 세상. 과연 언제 그게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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