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아리는 죠스 중에서도 유독 뾰족한 주둥이가 눈에 띈다. /NOAA(미 국립해양대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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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기술의 발달은 놀랍지만 섬뜩합니다. 최첨단 촬영기술 덕분에 우리는 야생에서 벌어지는 ‘못볼 꼴’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오늘 등장하는 청상아리와 바다사자의 먹고 먹히는 장면 역시 그렇습니다. 미국의 해양 생태 관광 전문 업체인 몬터레이 베이 웨일 워치(Monterey Bay Whale Watch)가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 올려놓은 동영상입니다. 하늘에 띄운 후 원격조정하는 드론 카메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이 영상은, 드넓고 평화로운 바다가 실은 먹으려는 포식자와 피하려는 포식자들의 숨돌릴틈없는 추격전이 전개되는 발버둥과 몸부림의 현장임을 보여줍니다.

청상아리가 바다사자를 포식하는 모습./Monterey Bay Whale Watch Facebook

고공 촬영 기술이 없었으면 절대 포착하지 못했을 이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것은 이제 막 캘리포니아 바다사자 사냥을 끝내고 클라이막스로 진행 중인 청상아리의 피의 살육현장입니다. 3.5m까지 자라는 캘리포니아 바다사자는 물개 중에서도 우람한 덩치와 위용을 자랑합니다. 오징어·문어·물고기에게 있어 범접할 수 없는 천적이죠. 하지만 강한 놈 위에 더 강한 놈이 군림하는게 비정하고 냉혹한 자연의 법칙입니다. 사냥꾼 바다사자도 청상아리에겐 그저 한 입 식사 거리일 뿐입니다. 드론 렌즈에 포착된 것으로 보이는 장면은 목불인견이에요. 청상아리의 날카로운 이빨이 찢겨 방금전까지 대양을 누비던 우람한 바다사자의 신체는 끔찍하게 훼손됐습니다. 이빨에 찢기고 뜯겨나간 듯 동강난 몸뚱이에서 너울거리며 나풀거리는 무언가가 잠시전의 사냥의 긴박한 순간을 말해주고 있어요.

이달 중순 미국의 해양생태관광업체 몬터레이 웨일 워치의 사진장비에 포착된 청사아리의 바다사자 포식 장면. Monterey Bay Whale Watch Facebook

이 장면을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작은 퍼즐로 인식하기에 우리 인간의 감정선은 북받칩니다. 이미 사체가 돼버린 바다사자의 몸뚱이를 빙빙헤엄치는 다른 바다사자의 모습 때문이죠. 저 둘 사이는 대체 어떤 관계였을까요? 저 동료 바다사자의 심정은 어떨까요? 그러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한, 가련한 바다사자의 혼이 몸뚱이로 되돌아올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도망치는 것이, 이 족속의 대를 조금이라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일 거예요. 그렇다고 이 살육을 주도한 청상아리를 어떻게 비난하겠습니까? 다 먹고 살자고 이러는 건데요. 다만 이 장면으로 인해 우리는 언제나 백상아리의 그늘에 가려져있던 죠스계의 영원한 2인자, 청상아리의 면모를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

청상아리는 몸의 색깔이 위와 아래 어느곳에서 보든 주위와 뒤섞여 사냥감이 쉽게 낌새를 채기 어렵다. /NOAA(미 국립대양해기청)

마치 인간의 카메라를 인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놈은 사냥한 바다사자의 몸뚱아리를 삼켜버리기 전에 물고 신경질적으로 흔들면서 바다를 흩뜨려진 살점과 근육과 그 사이에서 빨갛게 피어오르는 피로 물들입니다. 그 피비린내를 맡고 놈은 더욱 광분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피와 살에 탐닉한 청상아리는 마치 이렇게 외치면서 시위라도 벌이는 듯 해요. “봤느냐. 인간놈들아. 나도 죠스라고오오오오~~ 백상아리만 죠스가 아니란 말이다아아아아~~~”

최대 30년까지 살 수 있는 청상아리는 암컷은 19세, 수컷은 8세가 되어야 번식이 가능하다. /NOAA(미 국립해양대기청)

실제 영화 ‘죠스’ 등 대중매체에 나타난 이미지 때문에 상어의 제왕 하면 다자란 몸길이가 9m에 이르는 상어의 제왕 백상아리부터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죠스의 범주에 포함되기에 청상아리 역시 부족함이 없습니다. 알려진대로 상어 무리 중에 가장 덩치가 큰 고래상어(18m)플랑크톤을 걸러먹는, 순하고 여린 물고기예요. 그 다음으로 덩치가 쓴 돌묵상어(12m)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통념상의 상어에 더 비슷하게 생겼지만, 식성은 고래상어와 같아요. 무지막지한 이빨과 턱으로 피와 살점이 튀는 살육을 하는 ‘조스’ 류 중에 청상아리보다 덩치가 큰 놈이라곤 기껏해야 백상아리·뱀상어·뭉툭코여섯줄아가미상어 정도입니다.

측면에서 근접 촬영한 청상아리의 모습. /NOAA(미 국립해양대기청)

화면에 포착된 청상아리는 대략 3.7m정도 되어보인다고 몬터레이 베이 워치 측은 설명합니다. 다 자란 청상아리의 몸길이가 7m까지 이르는만큼 아직 어린 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역대급 몸뚱아리에 살기 어린 눈매를 가진 청상아리의 주식은 바다사자와 마찬가지로 주로 물고기입니다. 다랑어와 새치 등 한성질머리 하는 바다의 육식어들도 이들앞에선 한 입거리죠. 그렇지만 생선 뿐 아니라 바다사자나 돌고래처럼 육고기 사냥도 종종 합니다. 그렇다고 청상아리가 천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보다 몸뚱이가 큰 백상아리나 범고래에겐 꼼짝없이 몸뚱이의 피와 살을 헌납하고 나머지 찌꺼기는 산산이 부서져 플랑크톤을 살찌울겁니다. 크고 강한자가 모든 걸 가져가는 냉혹한 바다입니다.

청상아리가 사냥한 바다사자의 몸뚱이를 포식하는 동안 사냥감이 된 바다사자의 동료로 보이는 다른 바다사자가 주위를 맴돌고 있다. /Monterey Bay Whale Watch Facebook 캡처

청상아리·백상아리 등 ‘죠스파 상어’들이 무서운 까닭은 단지 무시무시한 이빨과 턱, 포악한 성질 때문만은 아닙니다. 몸뚱아리 전체가 극도로 진화한 생물 살상병기거든요. 이들 족속에는 뛰어난 은폐 기능이 있습니다. 등지느러미 부분은 푸르스름한 색깔이고 배지느러미 부분은 흰색인데 이렇게 되면 아래에서 올려다봤을 때는 햇빛에 가려지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컴컴한 바다 바닥에 가려지는 효과가 있어요. 먹잇감 입장에선 좀처럼 알아채기가 쉽지 않죠. 유유히 오징어와 문어를 사냥하면서 해저를 헤엄치던 바다사자 앞에 별안간 매직아이를 응시하던 두 눈앞에 툭튀어나오듯 상어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도 공포영화가 아닌 실제 상황에서 말입니다.

어린 청상아리의 모습. /Project Kolika

죠스 무리는 은폐기능만 탁월한게 아닙니다. 물고기 중에서도 정말 드물게 더운 피가 흐릅니다. 척추동물 5대 천왕중 젖먹이짐승과 새는 더운피가 흐르는 항온동물, 파충류와 물뭍동물·물고기는 찬피가 흐르는 변온동물이라는 교과서적 통념을 벗어난 것이죠. 그러니 여느 물고기들처럼 주변 물온도에 영향을 받아서 신진대사가 급속하게 속도가 떨어지는 현상에서 자유롭습니다. 수온이 높은 열대바다 뿐 아니라 차가운 지역에서도 출몰하며 먹이사냥이 가능한 까닭입니다. 몸에 더운 피가 흘러서일까요? 청상아리의 번식 과정을 보면 일개 물고기 차원을 넘어서 매우 고등하고 진화한 느낌을 줍니다. 수명은 30년까지 사는데 암컷의 경우 열아홉살, 수컷은 여덟살은 돼야 비로소 성적으로 성숙합니다.

지난 5월 31일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강사리 앞바다에 쳐놓은 정치망 그물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된 청상아리.(독자 제공)2023.7.10/뉴스1

그러니 흘레붙는 청상아리는 열이면 아홉은 암컷이 수컷보다 나이가 많은 연상연하 커플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예요. 암컷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알을 분사하고, 옆에서 수컷이 몸을 부르르 떨며 방정을 하는, 여느 물고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번식방법을 택했어요. 마치 젖먹이짐승처럼 몸속에서 많게는 서른마리까지의 새끼들을 키웁니다. 임신기간은 18개월로 사람을 능가합니다. 어미 뱃속에서 고이 자라서 태어난 새끼 청상아리들의 몸뚱이는 60㎝로 어지간한 생선들보다 훌쩍 큽니다. 그만큼 잡아먹힐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지는 것이지요. 오늘도 대양 어디에선가 청상아리 한마리가 먹잇감의 눈앞에서 출몰해 단숨에 동강내고 조각내 이빨로 짓이기는 무참한 살육을 거침없이 실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주변을 선홍색 피로 물들이면서요. 이 순간을 날로 진화하는 최첨단 촬영기기가 또 포착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처참한 도륙의 현장도 결국은 종족을 번식시키켜 대를 잇기 위한 수단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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