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 권보람(가운데)씨와 남편, 두 아이가 지난달 30일 경기도 김포시 권씨의 웹툰 굿즈 숍 앞에 모였다. 권씨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이 낳으면 돈 주겠다는 대책보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의 울림’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그의 웹툰이 올라오면 온라인 공간의 수많은 ‘육아 동지’들이 댓글 창으로 모여든다. 누군가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고충을 토로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맞춤한 조언과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저출생 해법은 ‘아이 낳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려면 아이를 앞으로 낳을 혹은 이미 낳은 이들이 외롭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 낳는 게 행복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야 하니까요.” 두 아이 엄마이자 ‘썬비의 그림일기’를 연재 중인 작가 권보람(42)씨가 말했다. 썬비는 ‘썬데이(일요일) 브런치’의 줄임말이다.

권씨가 그림일기를 처음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은 직장에 다니던 2015년이다. 아이를 가진 후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답답함을 나눌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IT 회사에 들어갔는데 동료가 대부분 20~30대 초반이었어요. 임신이나 출산을 경험한 사람이 없다 보니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곳이 없었죠. 일상에서 느낀 고충을 흰 종이에 하나 둘 그리기 시작했어요.”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그는 그렇게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에서 경험한 갖가지 감정을 그림일기로 표현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혼자만의 넋두리일 줄 알았는데, 권씨의 그림일기는 같은 고민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임신의 느낌을 ‘뱃속에 물풍선이 든 모습’으로 표현하고, 태아가 커갈수록 골반이 무너질 듯 아픈 모습을 그리자 ‘육아 동지’들이 공감과 위로를 댓글로 보냈다. 그는 “임신과 출산으로 호르몬 수치가 높아 감정이 쉽게 흔들렸는데, ‘그럴 수 있어요’라고 담담하게 남겨준 댓글이 큰 위로가 됐다”고 했다.

현재 7살 아들과 4살 딸을 키우는 권씨는 아이들을 키우며 겪는 일상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려 올리고 있다. 보통 2~3일에 한 편씩 작품을 만든다. 생활 속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웹툰 소재를 메모해뒀다가 ‘육퇴’(육아 퇴근) 후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의 웹툰 독자 중에는 30~40대가 여성이 특히 많다. “둘째 낳고 첫 출산과 어떤 점이 달랐는지 다뤘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남편에게 서운했던 점, 분만실 풍경 등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하고 싶었어요. ‘좋아요’가 2만 개 넘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권씨는 “고된 육아를 당신 혼자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 서로 응원하고 힘이 돼 주자는 것이 이 웹툰이 전하고 싶은 가장 큰 메시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고된 육아는 재미있는 그림 소재가 된다. 엄마들은 그의 웹툰을 보고 미소 지으며 육아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달랜다. 그가 영화 ‘범죄 도시’의 주인공 장첸을 패러디한 그림이 대표적이다. “주인공이 다크써클 짙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두 시간 넘게 흔들었는데, 왜 아이 자니?’라고 말하고, 아기에게 이유식을 먹이며 ‘두 시간 넘게 만들었는데, 왜 아이 먹니?’라고 말하는 그림이 있는데, 반응이 참 좋았어요. 육아하면서 두세 시간 쪽잠을 자고, 몇 시간씩 만든 이유식을 안 먹는 아이를 보며 속에서 열불이 난 엄마들이 많아서가 아닐까요.”

그는 “심각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아이 낳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 낳으면 돈 주겠다는 식의 대책 말고, 아이 키우는데 필요한 복지를 정부가 발벗고 나서 발굴하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걱정보다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의 울림’을 주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한숨을 쏟아내면, 미래에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들이 출산 결심에서 한 걸음씩 멀어지게 돼요.”

권씨는 “언젠가 아이들이 커서 자기가 웹툰 속 주인공임을 알게 될 때쯤 육아가 아닌 다른 그림을 그리게 될 것 같다”며 “그때가 오면 평소 하고 싶었던 드로잉 작업이나 함께 나이 들어가는 반려자와의 이야기, 갱년기를 맞이할 나의 마음 같은 것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전까진 육아가 주는 커다란 기쁨을 그림에 담아내고 싶어요. 아이가 주는 행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니까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조선일보가 공동 기획합니다. 위원회 유튜브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선물한 행복을 공유하고 싶은 분들은 위원회(betterfuture@korea.kr)로 사연을 보내주세요.